[Opinion] 미술관 옆 동물원 [영화]

이정향 감독 - <미술관 옆 동물원>
글 입력 2021.08.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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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마지막 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애인인 다혜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이사를 했고, 그 집에는 춘희가 살고 있다. 절박한 철수는 다혜와 연락하기 위해 춘희의 집에 눌러앉는다.

 

뒤늦게 철수는 다혜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다혜에게 버림받았음을 인정하고 집을 떠나야 했지만, 그녀와의 기억 때문에 춘희의 집을 떠나지 못한다.

 

춘희는 무례하게 집에 눌러앉은 그가 싫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안쓰러워한다. 그녀도 인공을 짝사랑하며 가슴 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춘희가 너무도 다르기에, 이성적으로 느껴질 일은 없다는 철수의 말에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1


 

철수가 춘희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둘은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철수에게 사랑은 육체적 관계이며 현실이다. 그는 사랑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단지 본능에 의해 원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갈 뿐이다. 춘희에게 사랑은 기다림이다. 그 사람을 배려하며 한걸음 물러서 곁에 머무는 것을 사랑이라 믿는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지만, 사랑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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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함께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춘희의 사랑을 표상하는 미술관과 철수의 사랑을 표상하는 동물원을 나란히 놓은 ‘미술관 옆 동물원’을 제목으로, 그리고 둘에게 아픔을 주는 대상인 인공과 다혜를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써간다.

 

시나리오 속에서 다혜는 춘희를, 인공은 철수를 투영한다. 동시에 철수는 다혜에게 그리고 춘희는 인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스며들게 한다.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2


 

춘희가 쓰는 글이 다른 장르가 아닌 시나리오라는 점은 흥미롭다.

 

영화를 위해 쓰이므로, 시나리오는 활자에서 이미지로 바뀌는 글이다. 시나리오 작가인 춘희는 다혜와 인공의 모습에서 자신과 철수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유독 춘희만 시나리오의 결말에 대해 고심하는 것은 철수와의 관계가 자신이 쓰는 시나리오를 따라갈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철수는 현실과 허구를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철수에게 시나리오는 현실에서 춘희와 가까워지는 계기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춘희를 서서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시나리오를 통하지 않고 그의 본능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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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철수는 동물원이고 춘희는 미술관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제 자신의 사랑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이는 춘희가 다혜와 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인지 철수에게 묻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서 와주길 기다리기만 하던 춘희는 먼저 둘의 관계에 대해 말을 꺼내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거침없던 철수는 춘희를 배려해 말을 가다듬는다.

 

 

 

#3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쉽사리 같아지는 일은 드물기에, 둘은 같아지기보다 서로를 조금씩 포용하는 쪽을 택한다.

 

이는 영화에 현실성을 더한다. 그 덕에 관객들은 서로 맞춰가며 스며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현실로 옮길 용기를 얻는다. 춘희와 철수의 이야기로 관객들이 용기를 얻듯이 두 사람은 그들이 만든 허구의 인물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시나리오 속 다혜와 인공은 춘희와 철수의 관계를 선행하지만, 이들 관계의 속도는 춘희와 철수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빨리 나아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춘희와 절수가 천천히 따라갈 수 있었다.

 

늘 직접 사랑을 말하던 철수는 춘희 몰래 미술관으로, 사랑을 주저하던 춘희는 주저 없이 동물원으로 달려간다. 다시 미술관과 동물원 사이에 섰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변화된 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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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화는 춘희와 철수의 장면과 시나리오 속 다혜와 인공의 장면이 교차 되며 서사를 이어나간다. 이를 통해 다혜와 인공이 주는 메시지가 춘희와 철수를 거쳐 관객들에게 차례로 전달된다. 춘희와 철수는 그들이 만든 허구의 인물로부터 받은 메시지로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타개할 수 있었다.

 

이제 관객의 차례다. 관계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혹시 이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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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균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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