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름과 첫사랑은 제법 닮아 있다 - 여름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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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용 및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날의 파란 하늘을 담은 체육복.
에어컨은 없고, 낡은 선풍기가 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나무바닥의 교실.
책상 한편에 쌓인 책과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
예쁘지도, 대단치도 않은 것들의 나열일 뿐인데
괜히 마음이 좋아질락 말랑, 가슴 한편이 시큰댈락 말랑.
그래서, '여름'과 '첫사랑'은 제법 닮아 있다.
<여름날 우리>는 지난 2018년 흥행에 성공한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국내 영화 <너의 결혼식>의 리메이크작으로, 아시아를 휩쓴 대만 드라마 <상견니>의 주역인 허광한(許光漢), '첫사랑' 이미지로 인기몰이 중인 장약남(章若楠)이 주연을 맡았다.
서두에 짤막하게 풀어낸 나의 감상을 읽고 공감하거나, 자신의 지난 추억을 더듬어 보게 되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내용은 <너의 결혼식>과 거의 같다. 몇몇 주요 장면들은 원작의 장면 연출과도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내가 원작 영화를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날 우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원작과 같고도 다른 아련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의 결혼식>, <여름날 우리>라는 제목만 보고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스토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고, 청춘 로맨스물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도 제법 보인다. 그러나 나는 가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영화도, 감각을 짜릿하게 자극하는 영화도 아닌 그저 잔잔하고 행복하고, 예쁜 영화가 보고 싶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푸른 여름 바다가 없더라도, 지금 당장 내가 첫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상황에 있지 않더라도 그런 설렘을 느끼고 싶다. 뻔히 알면서도 그 찰나의 순간, 감정의 동요에 홀려 보는 게 로맨스 영화 클리셰의 묘미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를 영화로 만들면 <여름날 우리(너의 결혼식)>이 될 것이다. 열일곱 여름, 새로 전학 온 요우 용츠(장약남)에게 수영부 저우 샤오치(허광한)는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에게 용츠는 15년 동안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마치 운명처럼, 샤오치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던 수영장과 그녀의 이름, '요우 용츠'는 발음이 같다. 그러나 그렇게 이름이 같아서인지, 샤오치와 용츠가 함께 바라봤던 청명한 여름 하늘은 샤오치가 둘 모두를 갖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샤오치는 태풍으로 위험한 용츠를 구하고 부상을 입은 후 수영 챔피언으로 향하는 길을 잃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츠가 떠난 후, 샤오치는 비로소 수영 코치, 체육 선생님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쌓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다. 나는 여름날 첫사랑에 빠진 고등학생이 아닌지라, 용츠만을 바라보는 샤오치의 대담하고 위험한 선택들은 가끔 답답해 보이기도 했고, 스크린으로 들어가 그를 말리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자 그의 무모한 사랑을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용츠를 보기 위해 여학생회에 입부하고, 생일날 우울한 용츠를 위해 홀로 불꽃놀이를 준비하고, 후에 모델로 일하는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는 샤오치의 모습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어리석게만 보이던 그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했다. 충만한 진심의 힘을 굳게 믿고 있던 그가 존경스러웠다.
용츠로 인해 샤오치는 수영 훈련에 최선을 다해 임하게 되었고, 대학 진학의 목표가 생겼으며, '싸움'이라는 위험한 취미에서 벗어나 새 꿈을 꾸게 되었다. 용츠는 샤오치를 변화시켰고 샤오치는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샤오치는 용츠에게 더 큰 것을 일깨워주었다. 온전히 사랑을 믿는 것.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폭력을 일삼던 아버지 때문에 사랑 앞에 벽을 세우던 용츠에게 샤오치는 처음 사랑을 가르쳐 준, 첫사랑 그 자체였다.
첫사랑에는 모순이 가득하다. 첫사랑 후에는 그 시간 속에서 사랑한 상대를 뺀 나머지 것들이 남는다. 사랑의 결과에 연인은 없다. 그러나 유난히 계절이 아름답게 느껴지던 그때의 시간이, 상대로부터, 상대로 인해 배운 수많은 표현이, 처음 느낀 감정이 가슴에 세게 박혀 남은 삶을 위한 성숙의 씨앗이 되어 준다. 용츠가 샤오치와의 15년 인연을 마무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듯이, 샤오치가 용츠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듯이.
그렇기에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운 그때를, 그때의 나를, 우리는 그토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나 보다.
[이건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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