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와 개념의 문제 - 산책하는 침략자

언어와 개념은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글 입력 2021.08.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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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침략은 정반대의 행위다.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 산책은 관찰을 통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침략은 대상이 무엇이냐보다는 침략자 자신의 공격적 자아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침략자는 하염없이 산책한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틀린 것이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산책과 침략의 개념 둘 중 하나는 무대 위에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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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옥상훈

 

 

카세 신지는, 정확히 말하면 카세 신지의 몸을 가진 외계인은 산책하며 모든 것을 관찰하고 흡수한다.

 

인간 세상에 외계에는 없는 고유한 개념들을 수집하러 와서 다른 이들의 개념을 빼앗는다. 이때 반복적으로 외계인들은 ‘그거, 내가 가져갈게.’라고 말한다. 이들은 ‘의’로 대변되는 사적 소유의 개념, ‘언니’로 대변되는 관계의 개념, ‘너와 나’로 대변되는 자아의 개념, 마지막으로 ‘사랑’을 가져간다.

 

이 극에서 사랑은 대변하는 것이 없다. 사랑은 사랑 자체이며 이 극에서 말하기를 인간성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소유의 개념을 잃고 해방감을 맛보지만 어떤 이는 자아의 개념을 잃고 혼란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어떤 개념은 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어떤 개념은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정말 단순하게 그런 걸까?

 

카세 신지의 거죽을 쓴 외계인이 사랑이라는 개념을 나루미로부터 빼앗은 뒤 갑작스레 밀려들어 오는 인간적 감정에 압도되어 ‘이제 잘 모르겠어’라고 되뇌며 극이 끝나는 순간 나는 이 극에서 인간이라는 개념은 다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극 안에서 지속해서 거론된 개념들의 종합이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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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옥상훈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불가해하고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알 수 없는 기형적 감정을 맨 마지막에 위치시킴으로 인해 이 극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된다.

 

인간적 개념들 자체가 불완전하기에 인간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개념을 빼앗아 가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들에 있어서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연극을 보며 이상한 괴리감을 느꼈다.

 

극 중 개념을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의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과일이라는 개념을 잃어버렸을 때 과일과 사과, 귤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 단어를 알고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을 안다. 하지만 그 단어와 자신이 그 단어에 대해 가졌던 느낌, 구체적인 지식을 결부시키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멈칫했다. 그러니까 이 극은 기표와 기의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언어라는 도구와는 별개로 본질적인 개념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이 극은 인간성의 최종 단계, 가장 높은 수준의 영혼의 증거로 사랑을 제시한다. 육체가 일으키는 단순한 화학적/생물학적 반응으로서의 사랑을 넘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이데아적 본질로서 언어로 환원 불가한 ‘사랑’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전제에 동의할 수 없다. 육체가 영혼을, 감각이 정신을 규정하고 만들어낸다는 쪽에 동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관점에 의하면 만약 외계인이 카세 신지의 육체를 가졌다면, 그는 카세 신지이고 카세 신지와 차이가 없어야 한다. 뇌는 자동으로 신지가 나루미와 보냈던 모든 기억을 제공할 것이고 호르몬은 그 모든 기억을 감정적 기억으로 회고하기 시작할 것이다. 카세 신지의 자아는 카세 신지의 몸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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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놓을 수 없는 정신과 육체의 개념처럼, 언어와 개념 또한 불가분하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의해 완벽하게 구조화되어있다. 언어라는 기표는 어느 순간 의미라는 기의보다도 더 중요 해졌다. 언어가 발명된 이래 상징은 개념을 압도했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본질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언어는 한계가 아니라 전부다.

 

그러나 이런 전제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나의 태도조차 하나의 감상법으로 성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예술은 제3의 시각으로 익숙한 풍경을 바라볼 때 익숙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곱씹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극 또한 그렇다. 개념을 수집하는 외계인/제3자의 눈으로 익숙한 지구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와 같은 태도 또한 작품이 던지는 주제에 참여해 외계인과 마찬가지로 제3자로서 또 다른 담론을 생산해낼 수 있다. 어찌 됐건 모든 텍스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담론의 생산성이고, <산책하는 침략자>는 상당한 생산성을 갖춘 작품이다. 연극을 같이 본 친구와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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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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