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편집자의 세계, 숨겨진 또 다른 예술가

편집자가 되기 위한 교과서
글 입력 2021.08.1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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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영화 <지니어스(Genius, 2016)>를 알고 있는가? 주드 로와 콜린 퍼스가 주연인 영화로, 실존 인물인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 1884~1947, 콜린 퍼스)와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쓴 작가 토마스 울프(Thomas Wolfe, 1900~1938, 주드로)의 첫 만남과 첫 작품을 함께 출판하는 영화다. 지니어스의 토마스 울프는 상당히 감정적이고 창작자다운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맥스웰 퍼킨스는 상대적으로 차가우나 그만큼 선명한 열정과 끈기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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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니어스(Genius, 2016)> 중 맥스웰 퍼킨스(콜린 퍼스), 토마스 울프(주드로)

 

 

토마스 울프가 쓴 작품은 <천사여, 고향을 보라>부터 <시간과 강에 대하여>,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 미국 최고의 작가 중 이름을 날린 사람으로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맥스웰 퍼킨스는 누구인가? 그를 말하기 위해선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어스킨 콜드웰, 제임스 보이드 등 여러 작가를 거론하며 시작할 수 있다. 그는 스크리브너스의 편집자로 바로 위에 언급한 위대한 작가들을 발굴한 편집자이자, 세기의 작품을 탄생시킨 숨은 조력자라고 말할 수 있다. 아마 작가 이름만으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 <위대한 개츠비>, <낙원의 이편>, <신이 버린 땅> 등 이 작품들을 쓴 작가의 편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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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 중 젤다 & 스콧 피츠제럴드(알리슨 필, 톰 히들스턴), 어니스트 헤밍웨이(코리 스톨)

 

 

아 영화로 볼 수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캘리 멀리건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13)> 말고도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에서도 어니스트 헤밍웨이(코리 스톨)와 스콧 피츠제럴드(톰 히들스턴)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편집자의 손이 가장 덜 탄 작가라고 하지만, 그만큼 맥스웰 퍼킨스가 그가 스스로 고쳤다고 생각하리만큼 현명한 디렉션을 줬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대로 묻힐뻔한 스콧 피츠제럴드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이가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로, 그의 끈질긴 시도 덕분이라 한다.

 

이렇듯 유명한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맥스웰은 재능있는 날것의 신진 작가를 발굴해 세상에 내놓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은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책에서 말하는 과정을 충분히 납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편집자의 업무는 하나의 주기가 굉장히 길고, 또 역동적이지 않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며 피드백을 하고 원고에 빗금을 그어가며 작가를 설득한다. 혹은 작가의 촉매제가 되어 창작을 불태우게 하거나, 완성된 작품을 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덤으로, 편집자의 세계에 호기심을 느꼈다면, 영화<지니어스(Genius, 2016)>도 추천한다. 극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지만, 인물의 가치관과 직업관에 대해 불태우는 열의를 느낄 수 있다.

 

 

 

활자 매체의 전성기, 20세기 중반의 미국


 

<편집자의 세계>는 당시 미국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15명의 편집자를 한 곳에 모아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로 잡지사와 출판사로, 우리나라 편집자가 아니라 확연히 와닿지는 않지만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유명한 잡지사들의 탄생과 또 미국 고전 소설로 유명한 작품의 이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흥미를 느끼고 완독할 수 있었다. 15명의 편집자는 다음과 같다.

 

맥스웰 퍼킨스(Maxwell Perkins, 스크리브너스의 헤밍웨이 편집자), 아놀드 깅리치 (Arnold Gingrich, <에스콰이어> 창간자 · 편집자), 베넷 세르프 (Bennett Cerf, 랜덤하우스의 설립자이자 모던 라이브러리의 편집자), 드윗 월레스 (DeWitt Wallace, <리더스 다이제스트>창간자 · 편집자), 캐스 캔필드 (Cass Canfield, 하퍼 앤 브라더스 편집자), 해롤드 로스 (Harold Ross, <뉴요커> 창간자 · 편집자), 삭스 코민스 (Saxe Commins, 랜덤하우스의 시니어 에디터), 프랭크 크라우닌셸드 (Frank Crowninshield, <배너티 페어> 편집장), 히람 하이든 (Hiram Hyden, 보브스 메릴의 편집자), 클레이 펠커 (Clay Felker, <뉴욕>의 창간자 ·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 (Pascal Covici, 바이킹 프레스의 존 스타인벡 편집자), 벳시 블랙웰 (Betsy Blackwell, <마드모아젤> 편집장), 윌리엄 타그 (William Steig, 퍼트넘의 편집국장), 휴 M. 헤프너 (Hugh M. Hefne, <플레이보이> 창간자 · 편집자), 헬렌 걸리 브라운 (Helen Gurley Brown, <코스모폴리탄> 편집장)으로 유명 잡지사를 창간한 시점부터 우리는 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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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 세르프는 뛰어난 편집자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재능을 어느 정도 타고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 편집자가 되려면 흥미의 범위가 상당히 넓지 않으면 안 되고, 영어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박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저자가 쓰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협력도 할 수 있다.


 

편집자가 뛰어난 작품을 인정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책을 널리 읽지 않으면 안 되며, 또 대중이 어떤 책을 사줄 것인가 하는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감각이 없으면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책일지라도 수요가 없으면 출판사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세계> 중 84~85쪽, 베넷 세르프

 

 

편집자는 대개 퇴근한 뒤 '자기 시간'에도 원고를 읽는다. 사무실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밤에, 주말에, 또는 쉬는 날에 읽는다. 이것은 너무나도 시대에 뒤떨어진 혹사당하는 직업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편집은 실제로 이러한 직업이니 어쩔 수가 없다.

 

거의 한시도 쉴 틈이 없는 24시간의 근무, 이것이 지겹다면 편집자라는 직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타그는 말한다.

 

<편집자의 세계> 중 339~340쪽, 윌리엄 타그

 

 

나는 잡지는 자주 접하지 않아 아주 유명한 잡지를 제외하고 들어보지 못한 잡지도 있다. 가끔 그 시절의 잡지 커버를 삽화로 끼워져있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실제 저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편집자들의 이름은 창간자가 아니라면 낯설 테다. 요즘 편집자가 아닌 에디터로 많이 불리지만, 이런 인정과 분위기 또한 국내에서 바로 형성되지 않았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대우는 그만큼 있지 않은 직종으로 알고 있었다.

 

편집자는 무엇일까? 작가도 아니면서 책을 같이 쓴다. 단순히 오탈자를 고쳐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초고를 처음 읽는 사람으로 독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읽는 사람으로 수익성과 트렌드를 판단하여 알맞게 구성한다. 창조하는 아티스트 적인 사고가 아니라 이를 기획하고 판매하는 사고관으로 임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아닐까 싶다. 정제되지도 않은 날것의 문장을 수백 장이나 접해야 하는 그들은 엉덩이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을 텐데, 순전히 일로써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작가가 아니지만, 작가만큼의 애정으로 활자를 보듬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편집자란, 예술과 사업 그 어딘가에 껴있다. 재능을 발굴하고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것, 아티스트의 뮤즈와는 또 다른 역할로, 선구안을 가지고 작품과 세상을 잇는 중대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저자와 똑같은 천부적인 재능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자의 세계>를 읽다 보면 저자 고정기가 잡지사와 출판사를 모두 경험한 편집자로서, 책을 집필하는 입장이 되어 얼마나 큰 노력을 <편집자의 세계>에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각 모든 편집자의 일대기와 그들의 회고록을 참고했고, 발간지의 역사를 팩트로 다루며 이를 책으로 편찬한다는 것은 여간하게 할 수 없는 규모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어느 외국인이 언제 태어나, 언제 생을 마감했는지, 잘못된 정보와 오탈자 하나 없이 외국 잡지의 역사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으로 출판한다는 중압감이 얼마나 컸을지 내 경험으로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편집자는 대개 저자가 독차지하기 쉬운 영광이나 명예의 그늘에 가려, 화려한 명성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존재이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다시없을 보람 있고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긍지를 갖고 신들린 사람처럼 편집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내가 편집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편집자의 세계> 중 6쪽, 머리말, 저자 고정기

 


그는 한국 출판의 1세대 편집자로 <여원>, <월간중앙>, <여성중앙>, <주부생활>에서 잡지 편집자로 활약했으며 후에는 을유문화사 편집주간과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당시만 해도 편집자라는 직업은 얼마 되지 않은 신직업과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모아 활자로 기록된 문화를 위한 하나의 교과서이자 편집자의 경험이 담긴 책을 썼다. 책을 시작하기 전, 그는 서두에서 위와 같이 밝힌다.

 

그는 편집자로 입장을 밝히며 자신이 생각하는 편집자 상과 책에 소개된 인물들이 생각하는 편집 관에 대해서도 말한다. 놀라운 건 그가 밝힌 그 시절의 편집자와 현재 21세기의 편집자의 일과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편집자의 세계>를 읽다 보면 그의 입장과 모든 편집자의 상이 일관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중심으로 저자 고정기는 그들의 노력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목적과 그를 통해 에디터, 즉 편집자의 노고를 정당히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책을 마친다. <편집자의 세계>는 1986년 처음 보성사에서 나왔다.

 

 

편집자는 활자 매체의 중매자이자 연출자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15명의 편집자는 모두 고학력자가 아니다. 우리와 다를 것 없이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혹여 더 불우한 사람도 있다. 단지, 그들은 '편집'에 매료되어 문화를 선도하는 작업에 미쳤을 뿐이다. 단순히 사업성이 아니라, 20세기 중반 미국의 문화 발전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기며, 한 소설의 출판을 위해 법정까지 출두하는 그들을 두고 나는 또 다른 예술가라 생각한다. 편집자는 여러 예술을 마주한다. 고유 개성을 가진 여러 작품 속에서도 자신의 선을 지키고 편견 없이 작품을 대한다. 유명 작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지며 그들의 책을 수년간 출판하고, 그들의 작품이 끊기지 않는 페이스 메이커로 같이 달린다.

 

저자 고정기는 편집자의 역할을 '중매자'라고 정의한다. 작가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영향을 미쳐야 하며, 고유한 작품관을 훼손하지 않고 이를 누구보다 매력적으로 정제해 완성한다. 그리고 이를 모두에게 알린다. 모든 편집자가 말한다. 편집자는 활자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촉매로서 작용해야 하며, 이 중매자 역할을 빼고는 편집자론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대한 작가들 뒤에 숨어있는 편집자들이 없었다면, 세계의 모든 문학은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졌을 수도 있다. <편집자의 세계>는 비록 우리에게 동떨어진 시대를 다루며, 출판과 잡지의 황금기를 살아온 시대를 말하지만, 그들의 일과와 현재 편집자의 일과가 다른 것이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현대의 편집자가 배울만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다음, 196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에덴의 동쪽 등)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존 스타인벡은 그의 편집자 파스칼 코비치를 두고 말한다.

 

 

파스칼 코비치는 나에게 있어서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나의 편집자였다. 명편집자는 작가에게 있어서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교사이자 악마 그리고 신이라는 사실은 오직 작가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0년 동안 코비치는 나의 합작자였고, 나의 양심이었다. 그는 나에게 실력 이상의 것을 요구했고, 그 결과 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나를 만들었다.

 

<편집자의 세계> 중 273쪽, 파스칼 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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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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