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의 마음을 빛으로 비춰줄 전시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카게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동심의 힘
글 입력 2021.08.2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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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느지막한 오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도착했다. 유리 벽으로 복작복작한 모습이 비쳤다. 1층은 피카소의 전시를 보러 온 관객들의 줄로 홀 전체가 인산인해였다. 사람 무리를 뚫고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회가 열리는 3층으로 향했다.

 

신비로운 한 소녀가 보였고 선선한 공기와 함께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1층과 대비되는 공기는 이 전시가 어떤 느낌일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한산한 홀을 따라 전시장 입구로 향했다.

 

 

 

동양의 디즈니,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


 

후지시로 세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는 98세라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이번 한국 전시에 올릴 '잠자는 숲'을 특별 제작하기 위해 매일 7시간씩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카게에에 대한 세이지의 열정을 볼 수 있었다.

 

 

빛과 그림자는 인생 그 자체, 우주 그 자체

 

나는 빛과 그림자로 자연의 아름다움, 살아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인생을 그려가고 싶다.

 

- 후지시로 세이지

 

 

전시회에 입장하기 전, 카게에의 존재를 모르던 나는 빛을 비춰서 만든 그림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들을 듣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전시장 입구의 커튼을 걷고 들어갔다. 커튼 한 장 차이로 그곳은 다른 세계였다. 카게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데에 이르자 어두운 내부와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한눈에 담겼다.

 

내적 탄성과 함께 단숨에 그의 작품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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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부_캐로용 (사진: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오려 붙인 셀로판지에 빛을 비춰서 만드는 카게에(그림자 회화)는 처음 느껴보는 아름다움이었다. 동양의 디즈니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환상의 그림들은 동화 속 판타지 세계에 초대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카게에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세이지만의 동화세계가 펼쳐졌다.

 

카게에의 매력적인 점은 작품을 만든 과정이 자세히 살펴보면 보인다는 것이다. 피어오르는 연기나 물방울 같은 것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유심히 살펴보며 작업 과정을 추리하는 재미도 있었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붓 터치로 대상에 느낌을 불어넣듯, 카게에는 조금 삐뚤빼뚤 자른 셀로판지가 그림의 느낌을 대신했다.

 

그리고 깔끔하게 자르지 않은 그 자체로도 동심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가장 많이 되뇐 말.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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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은 고양이 눈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귀여운 일러스트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고양이처럼 큰 눈은 세이지 그림의 트레이드 마크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그림이라도 고양이처럼 큰 눈을 갖고 있다. 작가가 카게에로 만들어내는의 귀여운 그림체는 그 자체로 판타지였다. 순수함과 동심을 담고 있어서 그런가 눈에 담기만 해도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몇 번이나 '귀여워!'를 외쳤는지 모른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눈빛과 몸짓, 그리고 캐릭터들을 한 층 돋보이게 만드는 아름다운 배경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집중하게 만들었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즐기는 한 편의 동화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는 한 편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그림책 같았다.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일정한 그림들이 이어지며 이야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오디오 가이드다.

 

오디오 가이드는 작품에 담겨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알고 보는 그림은 다르다. 마치 비하인드스토리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야기는 작품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생생히 표현된 작품은 이야기를 더욱 재밌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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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내부_양파와아기토끼와 고양이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이 전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제일 귀여웠던 난쟁이의 이야기 <요리 좋아하는 난쟁이>는 흥미로운 전개로 어떻게 이어질지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리고 <양파와 아기토끼와 고양이>이야기에서는 '욕심을 부리면 화를 입는다'라는 교훈과 함께 매 장면마다 귀엽게 묘사된 토끼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전시장 곳곳에 즐비해있다. 그가 그린 만화들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어른이 보아도 흥미로울 만큼 재치 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그 누가 작은 나무가 인간들과 살기 위해 흘 속에 박힌 뿌리를 꺼내고 걷는다고 상상했겠는가. '할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어!'를 외치며 뿌리로 걸어가는 아기 나무의 모습은 치명적으로 귀여웠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했을까 창의성에 감탄하면서 꽤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을 관람했다.

 

아이들과 어른 할 것 없이 같은 장면에서 웃으면서 모두가 같이 보았다.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은 나이가 어떻든 동심을 마음속에 심어주는 신기한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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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의꿈 (사진_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새로운 전시 방식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다. 작품에 물을 사용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수조에 물이 흐르게 하여, 약간의 일렁임과 함께 물에 비친 그림은 카가에와 함께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실제로 물 위에서 보는 것 같았던 작품들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실로 빛과 그림자의 그림, 카게에의 거장이 아닐 수 없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평화로의 유산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원폭의 열기 속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건물이 원폭돔이다. '맨발의 겐'이라는 원폭을 맞은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책을 본 적이 있다. 원자폭탄을 맞은 사람들, 현장을 보면서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의 순간이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평화로의 유산'이라는 원폭 돔을 그린 카게에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원폭돔에 남아있는 기둥 한편에 난쟁이가 앉아있고 돔 주위에는 연꽃이 즐비하게 피어있다. 나무 한 그루와 함께 하늘엔 형형색색의 종이학들이 날아가고 있다. 아이 두 명이 날아가는 종이학을 향해 두 손을 뻗고 있었다.

 

과거의 사건을 알리는 방법에는 적나라한 묘사로 당시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후지시로 세이지는 다른 표현법을 사용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희망을 담은 상황을 그려내었다. 동심의 눈으로 잔혹한 현장을 바라보았기에 슬픔으로 고통스럽기보다는 슬픔을 선선하게 머금을 수 있었다.

 

전쟁의 참상을 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후대에 남겨진 무언의 메시지를 느끼려 오랜 시간 이 작품 앞에 서있었다.

 

 

원폭돔 이야말로 인류가 20만 명의 생명을 희생시켜 미래의 평화를 가져온 것이다. 세계에서 매우 귀중한 하나의 숭고한 유산일 것이다.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오디오 가이드

 

 

작품의 개수도 굉장히 많았고 상영하고 있는 만화영화도 많아서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 관람한 전시였다. 여유롭게 거닐며 영감을 얻고 동심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졌다. 전시 관람 동선 또한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어 방대하게 전시된 작품 속에도 흐름에 맞게 볼 수 있었다.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릴 적 꿈꾸었던 판타지를 경험하고 나온 것 같아 여운이 오래 남았다.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를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아트숍에서 엽서를 사 왔다. 그러나 역시 빛으로 표현된 카가에와 프린트된 엽서는 확연히 달랐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에서 오는 따뜻한 감동은 그의 그림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의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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