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와 함께 달을 보러 가기로 했다

언덕 위에 올라가서
글 입력 2021.08.0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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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동대문역 1번 출구로 나와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왔다. 헉헉거리며 오를 때는 속으로 ‘이놈은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거야?’라며 툴툴댔지만 올라와 보니 경치는 확실히 좋았다. 성곽 내부에 이화벽화마을과 낙산공원이 있고, 성곽 외부 건너편에는 언덕 위에 밀도 높게 조성된 창신동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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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챙겨올걸. 날이 살짝 흐린데 이따가 비 떨어지는 거 아닌가? 그나저나 이 사람은 언제 오는 거야. 근처에 우산을 살만한 편의점이 있나 검색해 보던 중, 저 멀리서 노상원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내가 어제 입은 상의를 입고 왔다. 여름이 되면 자주 볼 수 있는 옷이다. 그윽한 눈빛을 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백인 남자가 프린팅된, 무더운 여름에 입기엔 좀 두꺼운 재질의 분홍색 반소매다. 남자의 눈빛은 자꾸 보다 보면 ‘내가 왜 이런 곳에 붙어 있지?’ 하고 영문을 모르는 듯한 눈빛으로 바뀐다. 자꾸 입는 걸 보니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옷 중에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나마 좀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아이고 안녕하세요! 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온 지 얼마 안 됐는걸요. 반갑습니다. 노상원이라고 합니다.”

 

“네, 반가워요. 저도 노상원이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오셨어요?”

 

“m5107타고 서울백병원에서 내린 후에 거기서부턴 따릉이를 타고 왔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혹시 우산 가져오셨나요?”

 

“아니요. 제가 그런 걸 가지고 다닐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쪽도 안 가져왔겠죠?”

 

“물론이죠. 그렇다면 조금 걷다가 비가 오면 안으로 들어가야겠군요.”

 

“좋습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비가 좀 와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해요. 그래야 달이 더 잘 보일 것 같거든요. 이곳은 해질 때 성곽길을 걸으며 달 뜨는 걸 보면 정말 예뻐요. 애초에 여기서 보자고 한 가장 큰 이유랍니다. 창신동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될 것 같네요. 저번에 왔을 때는 블러드문이었는데..”

 

또 시작하기 전에 어서 화제를 전환해야 한다. 잘못하면 오늘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좋아하는 얘기를 시작하면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고 저 할 말만 해대는 성격 때문에 딴 길로 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행히도 노상원은 티 나게 화제전환을 시도해도 언제나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의 몇 안 되는 장점 중의 하나이다.

 

“달 얘기 전에, 오늘 뭐 하는 날인지는 알고 오셨지요? 오늘은 [Project 당신]이라고, 내가 나를 인터뷰하는 날입니다.”

 

“아, 그럼요. 질문지는 미리 받아 보았습니다.”

 

“읽어보셨나요?”

 

“다 보지는 못하고 오는 길에 버스에서 대충 넘겨 봤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저도 오는 길에 버스에서 질문지를 좀 고쳐 썼거든요. 그런데 질문지를 새로 쓰다보니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당신이 나에 대해, 내가 당신에 이미 아는 것들이 꽤 되더군요. [Project 당신]이라는게 우리 둘만의 대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의미도 있을 텐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흠. 그럼 길이라도 안 가본 길로 가볼까요? 인터뷰가 실패로 돌아가도 산책은 남잖아요.”

  

우리는 원래 가려던 길 말고, 처음 보는 골목길을 통해 벽화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비슷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샛길들과 벽화들이 즐비해 있었다. 골목길은 변주곡이다. 하나의 일관된 테마를 반복해서 연주하는 변주곡처럼 앞으로 나아가며 어떤 것은 조금씩 더해지고 어떤 것은 조금씩 덜어진다. 그 변화를 인지하기는 쉽지 않으나,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도착점이 출발점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요일 오후 5시쯤 내가 가만히 누워서 하는 잡생각들을 공간으로 조성하면 대충 이 골목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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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새로 쓴 질문입니다. 어렸을 때 꽤 오랫동안 만화가를 꿈꿨는데, 만약 실제로 만화가가 되었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만화를 그리고 있을 것 같나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아마 애들도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 만화 취향은 성인용 만화건 애들용 만화건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어쨌든, 저에게 만화책은 어린 시절과 관련된 소재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만화방에서 정말 열심히 빌려 봤었죠. 밤에 누워서 자기 전에 몇 권 씩 봤습니다. 지금은, 특히 대학에 들어와서는 거의 보지 않아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

 

 

지금 저한테 물으시는 건가요?

 

아실 것 같아서요.

 

 

만화책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많아졌나 보죠. 요즘엔 밤에 자기 전에 뭐하시는데요?

 

요즘엔 ‘자기 전 시간’이라는 게 따로 없는 거 같아요. 저녁을 먹고 빈둥대다가 씻고 또 마저 빈둥 대면 열두 시가 넘어가 있는 식이죠. 어렸을 때보다 시간을 잘 못 쓰고 있다는 건 확실하네요. 다시 만화 얘기로 돌아가자면, 애들이 볼 수 있다고 해서 아이들만 등장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아이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른이 되어 봤을 때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을 겁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봤던 그림책이나 만화책들을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책장에서 다시 꺼내 볼 때 ‘아니 이게 이런 얘기를 하는 책이었어?’ 하고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구체적인 소재는 모르겠지만 그런 만화들을 그렸을 거예요. 아니, 그리고자 했을 거예요. 분명히 재능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웹툰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이야기보다 왼쪽에서 오른쪽, 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이야기가 좋아요. 종이의 질감도 중요한 문제고요. 위에서 말했다시피 저에겐 만화책이라는 물건 자체를 빌리거나 다시 꺼내 보는 행위가 중요해요. ‘다시 꺼내 본다’는 건 형체가 있어야 하죠. 웹툰을 다시 정주행하는 행위와 만화책을 몇 년 만에 다시 꺼내 보는 행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어요.

 


만화의 매력은 무엇이죠?

 

만화 얘기 자체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예전의 감각을 좀 되살려 봐야 할 것 같네요. 흠…. 모든 것이 멈춰져 있다는 사실 아닐까요? 일단 영화의 이미지와는 달리 너무 좋은 한 컷이 있으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멈춰서 계속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리고 만화를 볼 때 우리는 그려져 있는 그대로, 정지된 컷 단위로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굳이 컷을 연결시켜서 머릿속에서 동영상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영화 필름의 컷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과 만화책의 컷을 나열한 것은 다르거든요. 그러나 만화 자체가 정적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에요. 연출에 따라 만화는 가장 동적일 수도 있어요.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찍은 영상보다 기차가 달리는 중간에 찍어서 기차의 몸통이 흐려진 사진이 훨씬 더 속도감이 느껴지는 원리와 비슷하죠.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정지되어 있을 때 속도를 제일 잘 이해하는 것 같아요. 말해 놓고 보니 제 만화의 소재는 시간이었을 것 같네요.

 


마침 다음 질문은 시간에 관한 질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10대까지의 시간을 마음껏 컨트롤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어떤 부분은 늘이고 어떤 부분은 줄이는 식으로요.


물론 필요 없는 시간이라는 건 없어요. 전체로 놓고 보면 필요 없음도 필요하거든요. 그런 뻔한 전제는 무시하고 얘기하라는 거겠죠?

 

몇 년에 한 번씩 가족 앨범을 넘기며 어린 시절 모습을 보다 보면 사람은 자기가 어렸을 때 굉장히 행복했다고 착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잘 생각해봐야 해요. 그 느낌을요. 저는 생각해보면 10대 이전에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아요. 기억도 별로 없고, 가물가물하게 있는 기억도 별로 신나지 않거든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다른 곳에 있기를 바랐던 기분이 아직 생생해요.

 

그래서 일단은 걸음마 떼고부터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2년 정도로 확 줄이고 싶어요. 기껏해야 한글과 사칙연산을 배우고 아이돌 이름 외워서 애들 대화에 끼려고 노력하는 시절은 그렇게 안 길어도 되거든요. 특히 초등학교 때는 많이 재미가 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태어나고부터 걸음마 전까지는 그냥 두고 싶어요. 분명 누워서 잠이나 디비 잤을 텐데 전 잠자는 거 너무 좋아하거든요. 기저귀 차고 누워있던 시절이 15세 이전까진 아마 제 인생의 화양연화 아니었을까 싶어요.

 

중학교 때는 터치할 것이 별로 없어서 그냥 둘 거에요. 고등학교 1학년 때를 2 주 정도로 줄이고 고2, 고3 때를 4년 정도로 좀 오래 보내고 싶어요. 고1 때가 2주인 이유는 한 해 동안 좋았던 기억이 딱 몽블랑 트래킹 갔다 온 2주밖에 없어서 그래요. 나머지는 다 최악이었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1학년 때 정말 힘들고 어두웠어요. 불현듯 기저귀 차고 누워있던 시절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워진 걸 수도 있겠네요. 2학년 때부터는 좋았어요. 그때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놀기 좋았거든요. 그래서 재수를 한 거겠지만요.

 


그럼 당신은 다 더하면 열두 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 좋은데요? 9수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럴 거면 시간을 왜 줄여요. ㅡㅡ

 

하하 농담입니다. 9년 동안 세계여행이나 하고 책이나 많이 읽죠. 그렇게 보내고 나면 대학을 안 갈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10대는 아니지만, 작년 한 해도 줄이고 싶어요. 사실 작년 한 해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비즈 공예도 처음으로 해보고, 이전과 가치관도 좀 바뀌고, 더 친해진 친구도 있거든요. 그래도 코로나 자체는 너무 괴로웠어요. 제가 휴학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죠. 잘 아시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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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 겨울에는 또 겨울이 좋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겨울에는 여름이 좋다고 하고 여름에는 겨울이 좋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요? 그건 너무 불행 하잖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게 된 것 같긴해요. 언제나 100을 가져 갈 순 없어요. 1이라도 가져 갈 수 있으면 그 1에 집중하는게 더위도 추위도 견디는 법이죠.

 

 

당신이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 말고, 누군가가 당신을 인터뷰한다고 하면 누가 해주면 좋겠습니까? 가까운 사람이건 유명인이건 상관 없이요.

 

계속 벽에다 대고 탁구 치듯이 지가 묻고 지가 답하니까 좀 외롭죠? 일단 두 명이 떠오르네요. 최근에 그 사람 영화들을 좀 봐서 일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20대의 왕가위요. 그때는 그놈의 선글라스 좀 안 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왕가위는 배우의 실제 이미지에서 캐릭터를 뽑아내는 방식에 있어서 기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상처, 허무, 쓸쓸함 같이 마음의 밑바닥에 있는 감정들에 집중해요. 이거 착취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제 배우의 가장 깊은 그늘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거 같아요. 이제 그런 방식의 예술은 없거든요. 특히 영화에 있어서는. 어떤 배우도 그와 함께 작업하면 그 결과물이 그 배우의 대표작이 되어버리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기형적으로 눈물샘과 땀샘이 커진 배우들을 보고 있는 것 같고 홍콩이라는 공간이 결국 뒤틀린 마음속처럼 보이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그런 괴물 같은 사람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요. 얄팍한 사람일까 나름대로 깊이 있는 사람일까. 쓸쓸한 사람일까. 지겨운 사람일까.

 

인터뷰는 질문선정과 재질문, 내용 정리까지의 전 과정이 인터뷰어가 인터뷰이에 대해 알아가고 나름의 판단을 내리는 것이잖아요. 드라이하게 답만 얻어 간다기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터뷰어의 판단이 스며들게 되어있어요.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위탁한다고 한다면 왕가위 같은 타입의 예술가한테 맡겨 보고 싶어요. 두 번은 말고 딱 한번만. 아마 그렇게 유쾌한 경험은 아닐 테니까요.


또 하나는 고등학교 때 연극 선생님이요. 참 재미있는 분이었는데 그냥 한번 뵙고 싶네요. 그분은 절 잊었겠지만요. 저에 대해서 아직 까지도 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말을 해준 분입니다. 페이스북으로 가끔 보면 아직 연극판에 계셔요.

 

무엇보다 인터뷰는 한 15분하다가 그냥 맥주 마시러 갈 것 같거든요.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요즘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는데 할 만한가요? 또 글쓰기 전반에 대해 요즘 하게 된 생각도 궁금합니다.

 

군대 가기 전에 일종의 챌린지를 해보고 싶어서 지원한 거였어요. 마감을 정해두고 강제성을 부여해서 글 쓰는 운동을 하려고요. 말을 할 때 쓰는 언어와 글을 쓸 때 쓰는 언어는 달라요. 각기 다른 근육을 필요로 하죠. 언젠가부터 글 쓰는 양이 줄고 그걸 다 말로 푸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겠다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래도 재미는 있어요. 이번 주 글감에 대한 고민을 기본으로 깔고 지내다 보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신경을 기울이게 돼요. 인생을 주 단위로 끊어서 살게 된다는 게 좋은 점입니다.

 

글쓰기 전반에 대해서는 요즘 에세이적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에세이 말고 에세이적 글쓰기요. 에세이적 글쓰기라는 것은 모든 분야에 적용 가능 하거든요. 영화나 소설 같은 명확한 대상이 있는 평론의 영역에서도 가능해요. 자기 얘기를 섞거나 영화를 소재로 또 다른 담론을 생산해 낼 수도 있어요. 전문 영화 기자보다는 좋은 글을 쓰시는 일반 블로거들의 포스팅 중에 가끔 그런 사례를 보게 돼요. 형식이나 주제적으로 좀 더 자유로우니까 그런 거겠죠?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사이에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글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문제는 그럼 에세이적 글쓰기가 정확히 무엇이냐 하는 것일 텐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 취향에 맞는, 제가 좋아하는 형태의 에세이적 글쓰기는 알 것 같아요. 단순히 정리하자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적인 감각들을 하나의 아이디어로 느슨하게 묶는 것으로 생각해요. 묶지 않는다면 그건 일요일 오후 5시 즈음에 하는 공상에 지나지 않고, 사적인 감각이 아니라면 그건 애초부터 에세이가 아닌 것이죠. 산재해 있는 나의 감각이나 막연한 공상들을 자연스럽게 봉합하거나 하나로 모으는 건 기술적으로 참 어려워요. 이게 또 애매한 게 하나로 묶는다고 해서 그게 한가지 의미로 귀결되는 것은 또 바라지 않거든요. 그래서 너무 꽉 묶으면 안 돼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에세이적 글쓰기는 굉장히 유능하고 창의적인 회사의 점심시간 같은 거예요. 일단 무척 즐겁고 가벼워야 해요. 또 쉬는 시간이라고 해도 30% 정도의 생산성은 가지고 있는 거죠. 언제 어디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니까요. 느슨하고 여유롭지만 어느 정도의 창의성과 신선함은 베어 있는 상태. 잘은 모르지만 초창기 구글이나 레고 같은 기업의 점심시간에는 그런 공기가 감돌지 않을까 싶어요.

 

야근은 더럽게 하기 싫고 일효율도 떨어지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니까 글쓰기로 치면 학교 과제 정도겠네요.

 

 

글쓰기에 대해 얘기해보니, 이런 식의 글쓰기는 처음이죠?

 

네, 내가 나에 대해 하는 인터뷰라니 황당하죠 사실. 그런데 한 번쯤 이런 글도 써보고 싶긴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에는 작가 자신 또는 작가의 페르소나가 직접 소설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소설은 소설에 대한 소설 또는 소설가에 대한 소설이 되는 거죠.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읽힐 수 있거든요. 영화 제작에 대한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대가들의 작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표피적으로라도 자신이 등장하는 글을 따라 해보는 게 재밌긴 하네요. 저 혼자만 재밌는 거 같긴 하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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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자 before I die..라고 쓰여진 거대한 칠판 같은 벽이 나왔다. ‘죽기 전에 나는..’에 이어 사람들이 써 놓은 소망들로 벽이 가득 차 있었다. 소망들은 서로 겹쳐져서 알아볼 수 없었고, 아무렇게나 그어 댄 커다랗고 의미 없는 낙서처럼 보였다. 멀리서 보면 이게 살려 달라는 비명의 난장인지 미래에 대한 기도의 총합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신이 침묵하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시끄럽고 글씨체가 구려서다.


 

이런 벽을 마주치니 아무리 식상하더라도 안 물어 볼 수가 없네요. 죽기 전에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안 죽고 싶습니다.

 

*


어둠에 무거워진 하늘이 벽화마을 언덕까지 내려와 앉았다. 우리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달을 보기 위해 처음 만났던 성곽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느새 성곽 주변으로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있었다. 여름밤은 무해하다. 무해한 여름밤에 어울리는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여름밤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성곽의 안과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에 두꺼워진 하늘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자지가 언덕을 감싼 것 같았다. 습자지 너머로 달의 형상만을 흐리게 파악하는 것이 전부였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달 보기에 대해 호언장담했던 노상원이 당황한 듯 말했다.

 

“어..이거 보자고 올라온 건데,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요.”

 

“괜찮아요. 이것도 나름 운치 있네요. 신호등 같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이 또한 나라는 사람의 몇 안 되는 장점 중에 하나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한참을 거대한 황색 신호, 신호 변경 예고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폭우가 쏟아졌고 신호등은 꺼졌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


집에 도착해 씻고 잘 준비하던 중에 폰이 울렸다. 달 보자고 그 위까지 올라간 것인데 오늘 달을 제대로 못 보게 되어서 미안하다며 그는 나에게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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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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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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