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철학적인 스릴러 : 퍼스널 쇼퍼 [영화]

카페에서 영화 마시기, 세 번째 잔.
글 입력 2021.08.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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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없는 귀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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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스릴러 또는 호러 영화(통칭하여 이하 공포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러닝 타임 내내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는 타입은 아니다. 하지만 공포 영화는 그것의 치밀한 주제의식으로 관객을 감동시키기보다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랑은 상성이 좋지 않다. 그나마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부산행>은 '희생', '가족 간의 사랑'과 같은 주제 의식을 보여줬지만, 그것 역시 딱히 필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필자와 같은, '귀신 싫고 피 싫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공포 영화가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일까? 다행히도 그런 영화가 존재한다. 귀신(영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 입이 찢어지거나 어디 한 군데가 날아간 귀신이 등장해 인간들을 집어삼키는 ― 보통의 호러영화와는 다른, 신기한 공포 영화가 있다. 2016년 제69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으니 작품성도 나름 인정받은 셈이다. (덤으로 주연 배우의 아름다운 비주얼까지!) 필자는 이 영화를 '철학적인 스릴러'라고 분류하고 싶다.

 

 


영화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



*

경고!! 하단 내용에는

영화 <퍼스널 쇼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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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쇼퍼: 고객의 취향, 나이, 직업, 체형, 경제 수준 따위를 고려하여 고객에게 적합한 물건을 추천해 주는 쇼핑 전문가.


영화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는 먼저 세상을 떠난 쌍둥이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한 여동생의 이야기이다. 파리에서 유명 모델 키라의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모린은 그녀의 쌍둥이 오빠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영혼을 볼 수 있는 영매이다. 선천적인 심장 기형이 있던 남매는 살아생전에 먼저 죽은 사람이 '신호'를 보내기로 약속했고, 그에 따라 모린은 루이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그가 살던 파리에 취직해 그의 신호를 기다린다.

 

그러나 사망 후 90여 일이 지났는데 신호는 오지 않을뿐더러, 키라는 반납해야 할 옷을 소장하겠다며 모린에게 돌려주지 않는 등 제멋대로 군다. 모린은 루이스를 만나기 위해 큰 맘 먹고 옛 집을 방문해보기도 하지만 엉뚱한 영혼이 등장해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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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이 본인의 삶에 점점 지쳐 갈 즈음, 의문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모린을 알고, 또 모린도 자신을 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의문의 인물은 모린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마치 귀신처럼 알아챈다. 모린은 처음에는 이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만 나중에는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속마음을 그에게 드러내고, 키라의 옷을 몰래 입어보는 자신의 은밀한 취미를 밝히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악세사리를 전해 주려 키라의 집을 찾은 모린은 살해된 키라를 발견하게 된다. 키라의 옷을 입으려 그녀의 집을 자주 찾은 것이 화근이 되어 용의자로 몰리지만 다행히 조사 후 모린의 무죄가 밝혀진다.

 

출국금지가 풀리길 기다리던 모린은 살인 사건 당일 키라의 집에 두고 왔던 보석들이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다급하게 휴대 전화를 켠 그녀는 자신이 못 본 사이 의문의 존재가 보낸 수십 통의 메시지들을 하나씩 읽게 되고, 겁에 질린 채 그 존재가 보내 온 호텔 키를 가지고 집을 나선다.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다."



주인공 모린은 몇 백, 몇 천 파운드어치의 옷들을 고르고 배달하는 와중에 그 옷들을 입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꽤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키라의 옷들을 만지작거리거나 자신에게 갖다 대어 보는 등 키라의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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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용주 키라는 모린이 자신의 옷을 입어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디자이너 빈센트와의 대화를 보면 옷을 입어 본 것이 들켜 이미 한 차례 소동을 겪은 듯하다.) 하지만 모린은 여전히 키라의 옷들을 몰래 입어보며 희열에 찬 표정을 짓는다. 나중에는 매장에서 한 번 입어보는 것을 넘어 키라의 집에 몰래 찾아가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침대에서 자는 등 더 위험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키라 흉내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며 부정하지만, 모린은 절대 그 은밀한 취미를 그만두지 않는다. 모린의 취미의 핵심은 '남의 비싼 옷을 입어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멋진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모린은 자신의 고용주인 모델 키라가 화보 촬영지에 늦게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키라의 대역에 지원한다.

 

의문의 존재는 그런 모린에게 '단순히 키라의 옷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키라의 삶 자체를 살아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모린은 그에게 이렇게 답한다.


 

"금기 없이는 욕망도 없지."

(No desire if it’s not forbidden.)

 

 

그러니까 모린이 키라의 옷을 입어보려고 하고, 키라의 대역을 통해 키라의 삶을 대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기라는 것은 점점 확장되기 마련이다. 모린의 경우 이 금기는 처음에 '키라의 옷을 키라보다 먼저 입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집에서 자는 것',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 대신 화보 모델이 되는 것'으로 점차 확장된다. 심지어 영화 중반부에는 모린이 키라의 옷을 입고 키라의 집에서자기 위로 행위를 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이는 금기시되는 행동을 한 후 따라오는 죄책감과 긴장감 그 자체에 흥분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시럽 추가: "아니면 그저 나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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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이 종결된 이후, 모린은 오빠 루이스의 생전 여자친구였던 라라의 집에 머문다. 그런데 이때 모린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라라의 새로운 애인과 대화를 나누던 그녀의 뒤로 어떤 존재가 나타나 컵을 깨트리고 사라진 것이다.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린은 컵이 미끄러졌겠거니 하고 가볍게 넘기지만, 영화 말미에 남자친구 개리를 찾아 간 곳에서 공중에 뜬 채 유유히 움직이다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컵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모린은 이 기이한 현상이 오빠 루이스가 보내는 신호이리라 짐작하고 컵을 떨어트린 존재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그러나 이 존재는 '안식을 찾았냐'는 질문에도 반응하고 '안식을 찾지 못했냐'는 질문에도 반응한다. 이 존재가 루이스가 아님을 직감한 모린은 실망감과 짜증 섞인 표정으로 도대체 누구냐고 중얼거린다. 이윽고 모린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니면 그저 나일 뿐인가?(Or it’s just me?)”라는 질문을 나직이 읊조리는데, 그 존재가 그 말에 응답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화면 캡처 2021-08-01 175124.jpg

 

 

이 결말을 볼 때 필자는 이 존재가 모린에게 줄곧 메시지를 보내오던 의문의 존재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모린 자신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이 의문의 존재처럼 어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및 모든 심리상태를 '남'이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린의 은밀한 취미를 관조하며 비웃었던 것도, 모린을 불안 속에 몰아 넣은 것도 모두 모린 자신이다.

 

다만 이 모린은 '살아 있는 모린'은 아닐 것이다. 이 존재는 형체 없이 메시지 속 주체로만 등장하며, 마치 투명인간처럼 자동문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모린의 주목을 끌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컵'을 깨트린다. 초반에 메시지로만 연락을 주고 받은 것은 신비주의 컨셉이라고 치더라도, 모린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시도하는 장면에서조차 모린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컵을 깨트림'으로써 간접적으로 관심을 끄는 방법을 택한 것을 보면, 이 존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무언가 장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이 존재가 '살아 있는', '형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모린의 앞에 직접 나타날 수가 없는 상황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사후 세계의 또다른 모린인 것일까? 필자의 부족한 식견으로 확언하긴 힘들 듯하지만, 적어도 필자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P.S.

 

사실 이 영화는 줄거리가 난해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아는 영화 중 유일하게 '무섭지 않으면서 스릴이 넘치는' 공포영화이며, 인상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독특한 영화다. 특히 화면이 흐려지는 효과를 적절하게 사용해 영상은 흐릿한데 느낌은 선명해지는 듯한 장면들이 몇 개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공포 영화와 달리 좀 더 철학적인 매력이 있고, 필자의 기준에서 ‘무섭지 않은 긴박감’을 느끼게 해준 공포영화는 본 영화가 처음이었다. 초반에 모린이 루이스의 집에서 영혼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지만, 그 장면 역시 두려움보다는 신비함이 느껴졌다.

 

당신이 필자와 같이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 난해하고 독특한 이야기에 대하여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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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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