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박과 마요네즈 - 낭만은 없지만 있어야만 했다 [영화]

글 입력 2021.07.3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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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작금의 세상을 살기 좋아졌다고 한다. 굶어 죽는 사람이 거의 없고 전장으로 끌려가는 군인도 없으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전란과 기아의 시절에 비교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그저 그 시절과 비교하는 일이 현실을 외면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게 씁쓸하다.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더 나은 것과 비교하여 못난 점을 찾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더 못난 것과 비교하며 더 잘난 것만 찾는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야생을 벗어나 문명인으로서 교양있는 삶을 꾸려가는 이 사회의 깊고 깊은 곳은 야만과 결핍으로 곪아간다.

 

 


21세기; 야만의 시대



도시 문명을 꽃피우다 못해 이제 코스모폴리탄을 추구하는 시대가 왔지만 역설적으로 야만으로 덧칠된 사회를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장래 희망이나 진로 설계 따위를 들먹거리며 제 꿈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우리를 세뇌했다. 덕분에 중고등학교를 벗어나 성인이 되고, 회사나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이제까지 찾아왔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첫 걺을 내디딘다. 그리고 고꾸라진다. 학교가 보여주던 낭만과 희망으로 가득 찬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경쟁과 선택, 도태로 뒤덮인 냉혹하고도 잔혹한 현대 사회라는 동굴과 그 속에 숨어있던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었다. 취업과 재력이라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는 짐승 앞에 선 우리는 걸음조차 제대로 뗄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채 힘없이 쓰러지는 피식자였다.


눈앞의 현실이라는 공포에 질려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짐승의 이름은 돈이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동굴 속에서 걸어 나온 돈이라는 괴물 앞에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마음대로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함부로 꾸었던 꿈은 그 짐승의 송곳니에 물어뜯기던지 발에 밟혀 짓이겨지던지 중에 하나를 선택당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꿈을 꾸었기에 그 짐승의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꿈을 꾸지 않았다면 이 짐승과 조우할 일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동굴 근처를 배회하거나 혹은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고 안전한 곳에 머물렀다면 재미없는 삶을 살아도 안전은 보장할 수 있었다. 꿈을 찾아가는 삶을 누리겠다는 낭만 가득한 우리의 희망찬 시도가 이 짐승을 불러냈고 결국 이런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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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치는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지만 변변찮은 수입조차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했다. 돈이라는 짐승의 송곳니에 찢겨 여자친구인 츠치다에게 빌붙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한다. 돈이라는 짐승의 발에 짓밟혀 역겨운 욕망으로 가득 찬 남자의 손길을 견디고서 벌어온 츠치다의 돈으로 생활을 유지한다는 잔인한 현실에 걷어차인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 한 채 낭만으로 가득 찬 세상이 기다리리라 생각하고 사회로 섣부르게 달려 나간 자의 말로다.

 

신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먼 자들의 말로다. 낭만이라는 것은 돈이라는 짐승을 처참하게 짓이기던지, 그 짐승을 어떻게든 피해 길고도 험한 동굴을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보물이다. 세상에는 오직 야만만이 가득하다.

 

 


21세기; 결핍의 시대



반비례의 시대를 살아간다. 물질적으로 풍족해질수록 심적으로는 결핍되어간다.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치고, 볼 것과 들을 것이 쏟아져나오고,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여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어지간한 것들을 집구석에서 보고 즐길 수 있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것이 미디어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쏟아진다.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세상이며 그 가지 수는 점점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비고 또 비어 결핍된다. 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역설적인 세상을 보며 사회는 더 발전한 세상이라 부르고 점차 나은 곳으로 달려간다며 환호한다. 그 환호성에 마음의 비명이 묻히고 찬란한 만들어진 조명에 병들어가는 어두운 그림자는 가려진다. 솔직하게 헛웃음만 나오는 세상이다.


할 것이 넘치고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데도 우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다. 그 무지는 마음을 천천히 갉아먹으면서 이 끝내 마음을 결핍되게 만든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몰라 막막하다. 막막한 심정이 모든 것을 재미없게 만들어버린다. 뭘 해도 재밌지도 않고 별 감흥도 없다. 그렇게 세상에는 재미없는 것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그 재미없는 것의 홍수에 파묻혀있는 우리는 우울이라는 균에 감염되고 마음의 문을 닫는다. 무기력증이라는 증상이 완화될 기미가 안 보인다. 견디다 못해 좀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면서 살아가고, 욕망에 침식된다. 원초적 자극에 취해 피폐해져 간다. 그 피폐의 끝에 다다르면 이제 외로움이라는 녀석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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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끝에서 만난 외로움은 우리의 처지를 신랄하리만큼 정확하게 짚어낸다. 내가 첫 숨을 내쉰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내뱉기 전까지 못 해도 손가락만큼의 사람을 원하게 될 게 분명하다.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원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역으로 우리를 그토록 원해주는 사람을 찾는 것은 밤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여기서 원한다는 것의 맥락은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받고 싶은 것이지 쾌락과 본능에 이끌리는 원함은 아니다.

 

붉고 푸른 불빛으로 가득 찬 밤거리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면 얼마 안 가서 그런 맥락에서 우리를 원하는 사람은 만날 수 있다. 외로움에 지치고 지쳐 이제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 원초적인 신호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잠시나마 외로움은 사라진다. 세이치와 하기오의 품에 안기지만 그 누구에게도 안기지 못하고 흩날리는 츠치다는 우리의 투영이다. 그 얄팍한 해방감에 취해 정신을 잃고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그제야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는 현실을 직시한다. 결핍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우리를 갉아먹는다.

 

 


21세기; 그런데도 낭만



야만과 결핍으로 찌들어버린 세상이라도 우리는 낭만을 좇으며 살아간다. 이런 세상이라 낭만을 좇을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루 대부분을 다음 날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을 살아남고자 경쟁하는 데 허비하는 세상에서 낭만마저 사라진다면 그 앞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지나치게 뻔하다. 검게 덮이면 좋으련만 회색으로 칠해져 끝을 모르고 채도만 낮아질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에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도망치는 두 다리에 날개를 달아 줄 유일한 희망이 그 낭만이고, 그 낭만이 곧 꿈이기에 먼 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오늘 하루를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발악을 보기라도 좋게 바꾼 것이 그 꿈이라는 놈이다.


꿈을 찾으라는 말은 잔인하면서도 꼭 필요한 말이다. 아직 세상을 알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변명으로 아이들에게 헛된 세상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을 보여준다면 이 자라나는 새싹들은 낭만을 추구하기도 전에 회색의 구렁텅이에 집어삼켜져 헤어 나올 수 없다. 다 자라버린 우리조차 이 뿌리를 끊어내지 못해 하염없이 위로 자라나며 어떻게든 버티는데 그 작고 여린 새싹들이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자라버린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꿈과 낭만이라는 땅에 새로운 뿌리를 내려 뒤이어 자랄 새싹들에게 조금 더 빠르게 이 땅으로 오는 방법을 알려줘야만 한다. 새싹들이 살아남을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라버린 우리가 지치지 않고 나아갈 목적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는 결국 꿈과 낭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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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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