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본질은 부서지는 게 아니야 [도서/문학]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글 입력 2021.07.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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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자주 갔던 대나무 숲. 끝도 모르게 올라있는 대나무들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푸르른 기운에 압도되어 우거진 숲속 난 혼자 우뚝 서 있었다.

 

그건 마치 대나무가 간직해온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지는 기분. 그러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홀려 넋을 놓고 그 사이를 엿보았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의 책에서는 방랑에 대한 동경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방랑과 고향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고향을 떠나야만 방랑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 방랑의 끝에서 헤르만 헤세는 답을 찾았을까?

 

그가 찾은 답은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자신의 안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라고 이야기했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로 나무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무는 그에게 인내와 생명력,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었다.

 

 

 

나무란


 

방랑. 그 속의 철없는 생각들. 너무 짧게 살았기에 할 수 있는 짧은 생각들. 그러나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11쪽)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밤나무, 복숭아 나무 등 책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등장한다. 헤세는 길을 걷다가 이 나무는 깊이가 어떻고 둘레가 어떻고 그리고는 나무가 주는 다양한 느낌들을 시와 에세이로 정리한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나무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걸까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간다. 나는 그 중에서도 '잎 빨간 너도밤나무'가 좋았다. 생소한 이름이기 때문일까 혀가 입천장을 닿는 발음이 좋아서 혼자 중얼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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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아침에 가장 아름다웠고, 저녁때면 태양이 붉은색이 될 때까지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나무만 죽은 듯 고독에 잠겨 우듬지부터 땅바닥까지 검게 보였다. 나무는 떨지도 않았건만 얼어 있었고, 불쾌함과 부끄러움으로 고독해져 체념한 듯 보였다."

 

너도밤나무의 웅장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문구였다. 그렇게 크고 단단한 나무들은 죽지는 않는다. 기다린다. (123쪽)

 

헤세는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한 듯 했다. 특히 지나가는 인연들에. 인간관계란 덧없는 것임을 헤세는 이미 알았던 것 같다. 그에게 친구는 오래된 연필 따위였다. 그래서 나무에 더욱 정을 주었던 것일까.

 

나무란 누군가에게는 열매를 주는 존재이며 방랑자들에게는 항상 같은 곳에 있는 거처가 되어준다.

 


 

본질을 나무에 빗대다



'가지 잘린 떡갈나무'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본질을 나무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내 본질은 부서지는 게 아니야,

나는 만족하고 화해하며,

백 번이나 잘린 가지들에서

참을성 있게 새 잎사귀를 내놓는 거야,

 

그 온갖 아픔에도 나는 그대로 남아

이 미친 세상을 사랑하는 거야.

 

- 123쪽

 

 

헤세의 나무에 대한 찬양은 고귀한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느리지만 단단한 나무의 본성을 닮고 싶었던 헤르만 헤세.

 

나는 그 중에서도 "그 온갖 아픔에도 나는 그대로 남아, 이 미친 세상을 사랑하는 거야"라는 문장이 유독 끌렸다. 나무는 폭풍이 불어와도 한 곳에 그대로 남아 우리에게 끄떡없는 존재를 자랑한다.

 

자연에 끊임없이 뿌리를 내린다. 고난을 겪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성스럽고 존경스럽게만 느껴지는지. 아마도 우리는 그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서지는 것에만 끝나지 않고 날 부서지게 하는 것까지 사랑하는 것.

 

 

 

시골 어딘가를 걷는 기분


 

나는 자연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인간을 관찰하기에도 바빠서 그 옆의 자연은 잘 느끼지 못했다. 저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떤 교배종인지 외래종인지 한국의 것인지 저것이 나무인지 꽃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이 책은 나무를 자세히 보게 만든다. 색깔, 뿌리, 그 주위의 것들, 깊이, 나무의 둘레까지. 단순히 나무를 묘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고급스럽고 따뜻함이 고스란히 담긴 나무 그림들이 글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준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잠시 시골 어딘가에서 느지막한 오후를 보내고 온 기분이 든다. 그 옆엔 강이 있었고 강 옆에는 커다란 너도밤나무가 조용히 존재를 알린다. 나는 나무의 그늘 밑에서 바람을 느끼고 오후 6시 조금은 출출함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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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만 읽었던 나로서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조금은 그와 가까워진 듯 느꼈다. 그의 일상. 그의 생각. 그가 일상에서 하는 생각들. 내가 그 당시 그와 친구였더라면 그는 나에게 이런 것들을 편지로 말해주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헤세는 내게 자연 속에서 인생을 둘러보라며 편지를 마쳤다. 자연 속에서 인간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던 그의 마음이 깊이 퍼졌다.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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