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고통에 대한 시각을 조금 바꿀 수 있다면
글 입력 2021.07.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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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참 덥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상기후가 나타나 보름이 넘어가는 폭염은 매일 기온을 뜨겁게 올리고 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가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피서를 가거나 사람이 꽉 찬 카페에 가기도 쉽지 않다. 여름에 몇 번 틀지 않았던 우리 집 에어컨은 올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지난주의 삶은 한 마디로 늪이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더위에 몸이 지쳤고 무언가를 할 기력이 나지 않았다. 새로운 학기의 시작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취업 준비의 압박감도 함께 몰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말과 남이 하는 말소리에 잡음이 섞여 말의 내용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졌다. 귓속의 작은 소음들은 내가 알아챌 수 없는 방향으로 조금씩 스트레스와 불안을 쌓았다. 어떠한 질병이라도 가볍게 극복해 온 건강한 몸이었기에 며칠의 통원치료로 금방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건강은 우리의 통제권 밖의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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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세상을 경험하는 오감 중 하나인 청각에 이상신호가 생기니, 처음 겪는 일에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과 괴로움이 오갔다. 이성을 잡고 현실에 발을 붙이기보다 순간의 감정과 자기 연민에 매몰된 것이다. 특히 나는 겁쟁이에다가 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가는 현실 앞에 처음으로 택한 방법은 그냥 웃어넘기는 것이었다. 웃긴 코미디 콘텐츠를 보며 정신 못 차릴 때까지 마구 웃었다. 웃고 나면 확실히 기분은 좋아졌다. 웃는 그 시간 동안은 복잡한 생각을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콘텐츠들을 소비하고 현실로 돌아올 때 입가에 남아 있는 미소는 씁쓸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문제와 마주치면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피하는 것은 문제를 잠깐 미루는 것일 뿐, 반드시 더욱 큰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인생의 행복, 자아실현 같은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길은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인정할 때 나타난다. 용기가 필요했다.


어둠이 나를 다 잡아먹기 전에 얼른 마음의 평화를 찾고 긍정의 기운을 마음에 심어야 했다. 내일의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갑작스레 찾아온 지병이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책 속에서 만나고 글로만 적어내려갔던 수많은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는 실천의 기회였다.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미디어를 보고 서적을 찾아보았다. 도서관 책장을 지나는 길에 책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희야! 여기야!' 책장 앞에 멈춰 서서 책을 꺼내 들었다. 『인간이라는 직업』. 한 손에 딱 들어오는 얇고 작은 하얀 책이었다. '고통에 대한 숙고' 라는 소제목까지 마음에 쏙들었다.

 

 

 

인간이라는 직업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이 몸을 지닌 채 살아야 하며, 남들의 시선을 감당해야 합니다.

 

5p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몸을 지니고 태어났다. 몸은 고통이 머무르는 장소이자 쾌락을 공급하는 주체이자 존재의 근거이다. 이 몸 안에서 몸을 길들이며 사는 것은 인간이라는 직업을 살아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니체는 말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철학'이 있기 때문에, 몸은 자아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내가 전력을 다해 주의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다."

 

이 책의 저자 알렉상드로 졸리앵은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지니게 된 장애인이다. 신체의 결함에서 오는 불운, 실패, 난관, 삶을 축적하는 재료가 되는 모든 것들. 그것들은 가차 없이 그가 인생이라는 직업에 도전장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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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약자와 직면해야 했다. 졸리앵은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투하고 고통과 부딪혔다. 뻣뻣한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위해 매일 근육을 당기는 연습해야 했고, 어릴 적부터 부모와 떨어져 요양 시설에서 지내며 '공동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고독과 고립 속에서 그는 매일을 살아남았다. 그것은 안전한 하루를 보내기보다는 무탈한 내일을 맞는 것이었다. 그는 시설에서 확실히 깨달았다. "앞으로 일생 동안 나는 고통, 공허, 위험이 엄습해오는 것에 맞서 기쁨을 쌓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졸리앵은 전투의 뜻밖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는 시설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된다. 그 노인은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쾌활한 사람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점차 그 노인 곁에서 졸리앵은 사람의 정신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그는 제한이 있는 신체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영혼을 찾아다녔다. 닥쳐온 역경은 실존을 만드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졸리앵은 존재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는 몸의 총체적 불안정성을 자극제로 바꾸기 시작했다. 약함이란 개념을 감당하려는 시도를 하자 자유와 기쁨이 되었다. 인생이 어쩔 수 없이 고통과 함께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그는, 남들보다 쉽게 낙담하지 않고 전투의 필연성을 잘 되새기면서, 잔혹한 맞수를 받아들이며 그걸 좀 더 수월하게 피해 가는 법을 터득했다.

 

우리는 실존하기 위해 매일을 투쟁해야 한다. 생체 기관을 가진 존재들이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상태와 끊임없이 투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폐로 차가운 공기를 들이켜며 울기 시작했고,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 2000번 이상은 넘어졌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자격을 갖추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식을 쌓고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각자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것도 투쟁이라면 투쟁이다.

 

 

인간이란 이렇게 생겨먹었다. 날마다 전투를 벌이고, 안 죽고 살아남아,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56p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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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세상을 포용하며,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마법의 문장이다. 상상할 수 없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다. 닥쳐오는 문제들에 부여되는 중요성을 조금 낮추고 편안한 태도를 취하면 반드시 해결할 방법은 나타난다. 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부분 때문에 삶이라는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병원을 다녀왔다. 여전히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래도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두운 생각으로 하루를 채우기보단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다. '절망'이라는 마음의 적에게 지지 않고 기쁨을 찾기 위해 매일 투쟁하고 있다. 또한 작은 것에 대한 감사가 와닿는 매일이다. 내가 자연스레 지니고 있던 것이, 주변 사람들이, 이 사회가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한 것들이었는지. 겸손해지고 감사해하면 행복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고통 앞에서 우리는 자아를 찾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더욱 실존하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고통은 필연적이다." 이 책을 집어 들기 전과 후에도 이 의견에 대한 변화는 없다. 단지 전에는 고통에 대한 비관적인 성격이 짙었다면 이제는 고통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인생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내일의 해는 다시 떠오르고 우리의 삶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니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도 계속 꾸준히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 놀랍게도 인간은 고통 속에서, 비극 속에서 배운 것으로 삶을 풍부하게 만들고 지혜를 얻는다. 일평생을 함께할 이 감정을 다른 측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걸 빨리 알아챘더라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되어간다. 미숙한 정신으로 태어난 우리는 숙고와 철학을 통해 인간이 되어간다. 누구나 실패와 고난의 시기는 찾아온다. 이 시기를 얼마나 지혜롭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다. 가능성이 열린 삶을 절망으로 밀어 넣지 말길 바랄 뿐이다.

 

날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몇 주 뒤면 언제 더웠냐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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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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