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사랑Ⅱ' : 완벽한 K팝의 이면과 결점없는 '사랑' [공연]

글 입력 2021.07.2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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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코로나 시국이 좀 잠잠했던 탓인지, 최근 한 달간 꽤 볼 만한 연극 작품들이 하나둘씩 공연되고 있다. 물론 최근에 다시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다시 주춤하는 상황이다. <변방 연극제>는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외부 공연과 일정이 겹쳐서 관람하지 못했지만, 꽤 볼만했다는 후기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걸 보니, 성황리에 마무리됐나 보다. <페미니즘 연극제> 또한 매번 그랬듯이 빠르게 매진되었고, 신촌 극장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공연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은 언제쯤 마무리될까? 불과 몇 개월 전엔 백신 접종 소식에 '이제 다 끝났다, 좀만 더 이겨내보자.' 했었는데, 지금 매일 1500명의 확진자가 초과되는 상황을 지켜보니 절망스럽기 그지없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걸까? 연극과 극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이제 그런 시기도 이렇게 저무는 걸까? 요즘엔 이런 생각들이 자주 든다.


어찌 됐건 공연을 보러 오랜만에 백성희장민호극장에 찾았다. 전부 매진되어 있어서 예매 대기로 티켓을 정말 힘들게 구했다. 그 이유는 2017년 베를린연극제 희곡상을 거머쥐어 화제가 된 한국계 독일 예술가 '박본'과 국립극단의 첫 작업이기 때문이다. 큰 기대를 품고 한 여름의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뚫으며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들어와서 객석에 앉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낯선 어색함이 느껴졌다. 참 웃기다. 최근에 대학로에서 한창 외부 작품을 하면서 객석을 청소하던 순간이 있었다. 잠시 뒤 이곳에 앉아 공연을 관람할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쾌적하게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쓰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은 누군가가 멀끔하게 '가꿨을' 그 객석에 앉아있다는 것이 낯설고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의자 몇 개만을 놓는다고 객석과 무대가 분리된다는 것, 그리고 무대에서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것과 그것을 객석에서 '지켜보는'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는 것. 이 얼마나 경의스러운 연극의 힘인지. 오늘도 이렇게 느닷없이 연극과 사랑에 빠진다.


사담이 길었다. 본격적으로 연극 <사랑Ⅱ>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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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이다영(필자 본인)


 

<작품 줄거리>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사람. 끝난 줄 알았던 삶이 지구의 핵에서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세 사람은 완벽한 그룹을 위해서 멤버 한 명을 직접 길러내기로 한다. 풀과 꽃이 있고 물이 흐르는 이곳에서.

 

출처 (재)국립극단

 

 

작품을 내 나름대로 한 줄 요약하자면, 한국의 'K 아이돌, K 팝'과 '사랑'이라는 담론을 판타지 연극으로 확장, 연결시킨 작품이었다.

 

작품의 작가이자 연출인 박본은 모 인터뷰에서 밝혔다시피, K 팝에서 '완벽성'을 발견하고 K 팝에 대해 다룬 연극을 만들고 싶어졌다고 한다. 음악적 독창성보다는 하루에 16시간 동안 연습하며 '완벽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예술은 독창적이어야 한다든가 고통스러워야 한다든가 하는 서구적 잣대와 완벽히 다른 새로운 관점을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지점은 작품 전체 줄거리에서도 나타난다. 줄거리에 대해 추가 설명을 보태자면, 아이돌이 되지 못한 연습생 3명(현무, 청룡, 주작)은 자책하며 자살해 생을 마쳤고, 그 이후 지구 내핵(작품의 주 공간이다. 작품의 공간은 이 '지구 내핵' 하나의 공간으로 제한된다.)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지상에서의 삶을 추억하며, 완벽한 아이돌 그룹인 '슈퍼 한(恨)'을 만들어 다시 지상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 번째 멤버인 '이무기'가 필요하다. 1만년을 채우면 용이 돼 승천하는 이무기는 9999년을 키워 이제 1년만 남았다. 이제 이무기를 완벽한 아이돌 가수로 키우기만 하면 된다. 이무기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여러 테스트를 거친다. 작품은 이무기가 완벽한 아이돌이 되기 위해 여러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이 주로 그려진다. 더불어 자신들이 자살한 이유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물러터지고 열심히 하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결점 없는 완벽한 사랑의 감정, 사랑Ⅱ를 추구한다.

 

 

'사랑Ⅱ, 즉, 사랑 그 이후의 이야기'

 

이승도 저승도 아닌 공간에서 아이돌을 꿈꾸는 네 사람이 인간의 가장 흔하고도 다양한 감정의 본질을 노래한다. 완벽해지기 위한 치열함,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 사람 사이의 사랑을 넘어 여러 형태의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완성된 사랑 이면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질문으로 시작한 작품은 창작 단계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답을 찾는 여정을 함께하고자 한다. 잊지 말자. 여느 로맨스 드라마처럼 낭만적이지 않더라도 이건 분명한 사랑 이야기다.

 

출처 (재)국립극단

 


 

관객에게 '불친절'한 작품 ··· 그리고 남는 의문들


 

필자 주변에 지인 중 이 작품을 미리 관람한 분들은 호불호가 있었다. 특히 불호가 많았다. 그 이유는 작품 자체가 '모호하다'라는 것이었다. 필자 또한 공연을 보고 나온 뒤 극장을 나오는 관객에게서 느껴지는 반응은 '물음표'였다.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물음표가 생긴 채로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필자 또한 공연을 보고 이 공연을 도대체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리뷰 글을 작성해야 할지 길게 고민한 끝에 한 자, 한 자 느낀 점들을 남긴다.

 

우선, 가장 먼저 작품의 이야기 구조와 흐름이 관객에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말그대로 '전형적'이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 관객에게 이 작품이 호불호가 나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치밀한 이야기의 구조에 맞춰 설계된 흐름을 관객이 잘 따라오도록 설명하는 여타의 다른 익숙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작품 속 일부 대사는 마치 심연에 잠겨 잠꼬대를 늘어놓는 듯한 대사도 있고, 대사로 듣기보다는 글로 읽어야 그나마 이해가 될 것만 같은 복잡한 비유가 섞인 대사도 있다. 벌어지는 사건들 또한 마찬가지다. 다소 '뜬금없다'. 앞과 뒤의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익숙한 드라마를 가지지 않았다. 이야기는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유머러스했다가, 광기가 흘렀다가, 공포스럽다가, 재앙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에 박본 연출가는 모 인터뷰에서 K 팝뿐만 아니라 K 드라마의 특징도 빌려왔다고 밝혔다. 그가 발견한 K 드라마의 특징은 '여러 장르의 혼합'이라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복수를 하고, 공포스럽다가 액션이었다가 다시 로맨틱으로 돌아오는 장르의 혼합이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즉 의도된 것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커다란 줄기인 각 장의 구분은 K 드라마의 형식을 채택했다고 치자. '장르의 혼합'이라는 K 드라마의 특징도 빌려왔다고 치자.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관객의 시선에 기초해서, 그 의도를 알아챈 관객은 얼마나 될까? 관객이 못 알아채는 것 또한 의도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를 통해 박본 연출가는 관객에게 무슨 의도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박본 연출가가 K 팝과 K 드라마를 관람하며 느꼈던 생경함, 즉, 서양의 문화와는 다른 것에서부터 오는 낯설음을 관객 또한 느끼게끔 의도한 것일까?

 

그 의도가 무엇이 됐건, 관객에게 그 방법이 통했을지는 의문이다. 작품 속의 많은 디테일들을 (심지어 디테일적인 부분이 아니라 표면적인 부분일지라도) 숨겼을지언정, 관객들은 납득이 되지 않고 극은 계속해서 흘러가니, 관객들은 서서히 집중력을 잃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볼 테면 봐라, 연극은 흘러간다'고 얘기하는 '불친절'한 연극이었다. 이러한 불친절함 또한 충분히 매력 있다. 다만 다수의 관객의 취향은 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K 팝, K 드라마에 대해 표면적으로 머문 발견 ··· 다른 이야기 방식은 없었을까?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K 팝과 K 드라마에 대한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상에 대해 작품에서 얼마나 통찰력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K 드라마의 형식 중 박본이 발견한 특징은 '장르의 혼합'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K 드라마의 특징은 아니다. 작품의 토대가 되기도 한 K 팝에서의 '완벽성' 또한, 나름의 K 팝에 대한 신선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다소 표면적인 발견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 더욱 더 완벽한 아이돌을 추구하는 현상은 단순히 한국 연예 산업의 문제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온 한국의 대중이 갖는 집단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박본 연출가가 K 팝에서 발견했던 생경한 것들은 한국인 관객들에게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관객들이 느끼기에 원론적이게 느껴질 수 있다. K 팝과 K 드라마의 특징과 그것들이 가진 문제점까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국 관객들의 일부는 쉽게 지루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의 대중 문화 흐름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패러디'가 주로 사용되는 것이다. 현재 큰 인기를 끌며 부캐 대란을 일으킨 유튜브 <피식대학>의 '한사랑산악회' 모습처럼 가상의 캐릭터를 창조하여 특정 세대를 패러디하는 방식도 있다. 혹은 부캐까지는 아니더라도, K 드라마나 K 영화를 통해 밈처럼 소비되는 패러디를 활용하는 방식도 있다. 유튜브의 <문명특급>에서 진행한 '숨듣명'처럼 90년대 생을 타깃으로 과거에 유행했던 K 팝이 유행하는 추세이므로, 이러한 부분들도 충분히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K 팝의 완벽성에 대해 다루면서도, 한편으론 그 완벽성을 추구하게끔 하는 그 이면의 것, 즉, 그것을 소비하는 대상인 대중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건, 연출자는 한국인 관객의 머리 위에서 놀며, 보다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 방식을 채택하여 관객을 끌어당기고, 관객이 '평소에 익숙했던 한국 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 단면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게끔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독일계 한국인 '박본'의 K 문화를 향한 복잡한 파편 조각들


 

사실 필자는 공연을 관람하며 사랑이니, K 문화니 한 것보다도 독일계 한국인인 '박본' 연출가가 가진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 게 재미있었다. 이게 이 연극이 가진 큰 재미라면 재미겠다. 이 '재미'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올리면서 연출자 박본을 포함한 모든 창작진들이 고민했던 흔적들과,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웠던 부분들에 대한 생략, 그리고 군데군데 작품에 반영된 K 문화에 대한 모습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창작진들이 작품에서 '재미 포인트'라고 삽입한 부분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지는 않았으나, '재미 포인트'라고 삽입했던 창작진들의 '의도'와 '관점'이 재미 포인트였다.

 

작품을 끝까지 매우 집중하여 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그저 작품으로서 관람한 것이 아니라, 연출자 '박본'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관람하며 내내 그(연출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일기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남긴 농담조가 섞인 낙서를 몰래 읽는 느낌이었다. 이런 재미는 지금껏 공연을 관람하며 처음 느껴본 재미였다. 그런 의미에선 꽤 흥미로운 작품이다.

 

박본의 이전 작품 중 독일에 대해 작업한 <도이칠란드>,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르비아에 대해서 작업한 <유고유고슬라비아>에 이은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이 <사랑Ⅱ>이라고 한다.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과 수없이 그려지는 물음표 속에서도 필자가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인간 '박본'이라는 이가 바라 본 K 문화, 그리고 인간과 사랑에 대한 깊고 깊은 생각의 파편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

 

작품이 가진 특징을 좀 더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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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이다영(필자 본인)

 

 

무대 설명이 늦었다. 무대 공간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지구의 내핵'이다. 무대 디자인을 위해 스위스의 무대미술과 율리아 누스바우머(Julia Nussbaumer)가 함께했다. 무대 좌측 위쪽(하수 업쪽)에는 무대 천장까지 닿기 직전인 나무가 있고, 무대 바닥 전체는 이끼 같은 풀로 덮여져 있다. 무대 우측 아래쪽(상수 다운쪽)에는 물을 주기 위한 아담한 분수기가 있다. 무대 천장의 좌측(하수)에는 원통을 잘라놓은 것 같은 형태가 있었는데 이것은 지구의 내핵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이다. (그 장치 안에서는 풍선과 반짝이 가루가 떨어졌고, 조명이 설치된 듯 빛 표현도 이뤄졌던 것 같았다.) 무대 뒷면(하늘막 쪽)에는 원 모양의 통로가 있고 깊이를 둬서 그 안에 마치 기찻길처럼 수레를 끌고 이동할 수 있게끔 해두었다. 이 통로 또한 지구의 내핵과 지상을 잇는 통로이다. 무대는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숲이 떠오르는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판타지성이 공연 중간중간 사용되는 반짝거리는 종이가루들, 무드 등(?) 같은 불빛, 알록달록한 풍선 등으로 극대화된다.

 

이곳에서 살아생전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뒤 자살한 세 사람은 고군분투하며 완벽한 그룹을 만들기 위해 이무기와 테스트를 진행한다. 그러면서 사랑의 후속작, 사랑 그 이후의 것인 사랑2가 무엇일지 찾아나간다. 그들은 지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며, 자연스럽게 대사를 통해 K아이돌에 대한 담론, 사랑에 대한 담론들이 진행된다.

 

 

"인간의 어려운 감정이라는 것을 컵라면처럼 만드는 것이 연예산업인 거야."

 

- 연극 <사랑Ⅱ> 중에서

 

 

사랑이 가질 수 있는 결점이 제거된 것, 즉, 사랑에서 발전된 것이 '사랑Ⅱ'라고 한다. 그리고 인물들은, 그렇다면 사랑Ⅱ는 K 연예산업이 아니냐며 논의한다.

 

사랑은 인간에게 좋은 감정만을 주지는 않는다. 때론 질투와 분노, 슬픔과 절망을 주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사랑의 결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퍼주기만 하는(듯하게 보이는)' 완벽한 K 아이돌들이야말로 사랑Ⅱ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음식이 진정한 사랑Ⅱ라거나, 죽음이 진정한 사랑Ⅱ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동시에 무대 위에서는 K 아이돌을 연상 시킬 만한 군무가 화려하게 펼쳐지기도 하고, 묘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의 K 팝이 연상되는 노래가 다수 등장한다. 작곡가 벤 뢰슬러(Ben Roessler)는 K 팝을 연구하여 극에 사용되는 모든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노래가 재생될 때마다 노래의 가사가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방 자막의 모습으로 무대 뒷면(하늘막 쪽)에 영상으로 투사된다.

 

이 외에도 현대무용가 이경진이 안무를 맡았으며, 노래에는 판소리 창법 등이 사용되고 한복 콘셉트로 의상이 디자인되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기도, 갑작스럽게 분노하기도, 막 기쁘게 웃기도 한다. 진지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사실적인 연기술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정서의 개연성은 없어 보인다. (이 또한 일반 관객이 작품을 낯설게 느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연 팜플렛에 의하면 이들은 모두 한국을 비롯한 동양 설화 및 전설에 대한 리서치 과정을 통해 구축된 캐릭터라고 한다.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1000년을 기다려야 하는 존재로서, <사랑Ⅱ>에서는 완벽한 아이돌로 피어나기 위해 10000년의 수련을 거듭하는 존재로 나온다. 한국 신화 중 사신(四神)으로 이야기되는 현무(북쪽을 관장하는 상상 속 동물), 청룡(동쪽을 관장하는 파란 용), 주작(남쪽을 관장하는 상상 속 붉은 새)이 등장한다. 또한 서천서역은 한국 신화에서 황천수(黃泉水) 건너편에 있는 저승의 한 공간으로서, 작품에서 주요 공간인 '지구의 핵'의 토대가 되었다.

 

 

"그냥 그런 거야. 그게 법칙이야. 하늘은 파랗고 사람들은 슬퍼."

 

- 연극 <사랑Ⅱ> 중에서

 

 

사랑에도 후속편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완벽한 사랑이란 뭘까? 사랑에서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기에, 작품 속 인물들이 왠지 모르게 더 처절해 보였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국의 대중문화가 갖고 있는 특징들은 무엇이 있을까? 등등등.

 

더불어서, 결론적으로, 이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한국계 독일인 박본이 그리는 한국의 연예 산업을 향한 시선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느꼈을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을 남긴 작품을 오랜만에 관람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박본 연출의 한국에서의 후속작이 매우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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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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