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가 주는 울림에 스며들기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글 입력 2021.07.0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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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정확한 체계 속에서 절정을 향해 달리는 장황한 글보다 몇 글자 되지 않는 간결한 시 하나가 큰 울림을 선사한다. 소박하게 놓인 글자들은 노래처럼 다가와 짙은 여운을 남기고 오래오래 기억되어 누군가의 인생이 된다. 이게 우리가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는 나태주 시인이 뽑은 인생 시 125편이 담겨있는 책이다. 교과서에 담겨 국민 시로 불리는 것부터 세월의 그림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희귀 시까지, 한국 시의 빛나는 역작들을 갈무리해 엮어 시를 통해 인생이 귀하다는 것을,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인간의 일생을 ‘유년-청년-장년-노년’으로 나누어 총 125편의 시를 각 단락에 적절하게 배치하였고, 각각의 시마다 나태주 시인의 아름다운 해설이 덧붙여있다. 나태주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왕성한 의욕과 가능성이 살아있는 청년 시절이라 생각하여, 이 책에서는 ‘청년-장년-노년-유년’의 순서로 시들을 배열했다.

 

책 속에는 학창 시절에 만나 낯익은 시보다 처음 마주하는 시가 월등히 많았다. 시만이 주는 울림을 좋아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늘 산문만을 고집해왔던 습관이 책을 읽음으로써 환히 드러났다. 책을 읽으며 한동안 산문에만 익숙해져 있던 시각에 마치 휴가를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랜만에 갖는 시와의 만남은 모든 게 좋았다.

 

교과서에서 봤었던 시인의 이름에 괜한 반가운 마음과 국민 시로 불리는 것들에 대한 끄덕임과 처음 마주하는 글자가 주는 울림의 향연과 시를 읽으며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의 적절한 해설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자세로 읽는 많은 책 중 한 권일 뿐인데, 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산뜻한 공기의 수풀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시는 귀엽기도 했고, 어떤 시는 감탄을 자아냈고, 어떤 시는 과한 몰입으로 인해 슬픔이 동반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었던, 아주 기억에 남았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모래내 종점>

 

늦가을 비 내려 하루가 짧게 저문다.

너무 춥네, 하듯이 가로수들이 헐벗었다

모래내 버스 종점. 막차가 돌아온다

밤하늘이 어둡고 깊다. 바람이 출렁,

뼛속까지 밀려온다. 막일 끝낸 사람들 몇,

막차에서 내린다, 마른 가지 끝이 흔들린다

그에게 세상은 가지 끝 오르기다. 미끄러지기다

세상은 너무 미끄럽다니까

냉기도 뒤집으면 훈기가 된다고?

역 앞 마당이 썰렁하다. 늙은 취객 하나

거위처럼 뒤뚱거리며 사라진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 간 새'

뭐, 새라고? 영화? 좋아하시네 하면서

흐린 불빛에도 으스러지는 건

지난 시간의 반짝이는 모래들, 모래톱들

누가 손을 넣어 그의 가슴을 뜯어내려는 건가

세상에는 물보다 더 맑은 눈물이 있다는 걸

수색(水色)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제 모래 속을 제가 들추어보려는 듯

거기, 모래톱을 안고 사는 모래천변 사람들

지상의 그물 속에 그, 물속에 걸리는 것은 모래뿐이지

물같이 흐르고 싶은 밤, 모래위에 앉아

밤새도록 꾸벅거리는 모래내를, 그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버스 종점 그 끝에 서서.

 

- 천양희

 

 

한 번 읽었을 땐 일상의 묘사가 보였고, 두 번 읽었을 땐 일상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 시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을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제 3자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법한 모습이자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상태를 나타낸 글자들은 예뻤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금 아프기도 했다. 시가 나타낸 풍경에 언젠가 나도 속했던 적이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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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은 시가 나타낸 사람들의 모습에 단순한 동정이 아닌 함께함이 있다고 한다. 어두운 삶이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함께 아파하고 함께 흔들리는 마음 말이다.

 

함께하는 마음, 익숙한 음절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단어는 시를 음미하는 데 있어 잔잔한 울림을 준다. 어둠 속에서도 강인하게 자리 잡은 따뜻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더욱 아름다웠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냉혹함과 대비되어 재미있었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고 한다. 어린이에겐 노래로, 청년에게는 철학으로, 노인에게는 인생으로. 여전히 많이 미성숙한 나는 명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법도,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법도 완전히 알지 못한다. 그래도 언젠가 시만이 줄 수 있는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
 
시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애당초 시는 시인의 삶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하루하루 인생에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시는 시를 쓴 사람의 삶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인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산 시인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느낌이며 생각들을 시라고 하는 아주 짧고도 명료한 문장 형태로 남겼습니다. 후세를 위한 아름다운 선물이지요. 그 시들을 읽으며 후세 사람들은 인생을 배웁니다. 거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느낌을 다스립니다. 스스로 좋은 인생을 꿈꾸고 미래에 대한 암시를 받습니다. 특히 그건 나에게 그러했습니다. 시를 읽기 시작한 소년 시 절 이래, 시에서 배우고 느끼고 빚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는 나의 스승이고 시인은 고마운 동행입니다.
 
우선 인간의 일생을 네 단락으로 나누었습니다. 유소년, 청년, 장년, 노년. 그것은 유교의 사덕(四德-인의예지)과 통하고 불교의 사고(四苦-생로병사)와 통하는 인생의 단계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청년 시절입니다. 가장 왕성 한 의욕과 가능성이 살아있는 시절이지요.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청년→장년→노년→유년의 순으로 시들을 배열했습니다.
 
책을 읽으시며 부디 맑은 마음을 품으셨으면 좋겠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느낌이 살아나고 생각이 싱싱해질뿐더러 인생에서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첫여름
나태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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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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