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걷고 싶은 날 [동물]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것
글 입력 2021.07.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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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이렇게 물으면 넌 뛸 듯이 기뻐해. 작은 발을 동동 구르고 코를 씰룩이며 나를 쳐다봐. 어서 나가자는 신호인 거지.

 

그 눈길을 받아내면서 서둘러 짐을 챙겨. 배변 봉투, 물병, 핸드폰을 가방에 쑤셔 넣고 가슴줄을 꺼내. 이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져. 너와 함께 나가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거든.

 

이런 앞뒤 사정 전혀 모르는 너는 답답한 거야. “멍!”하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해. 더 늦으면 곤란하다는 뜻이야. 그때부터 눈치싸움이지. 네가 목청껏 나에게 야단치기 전에 재빨리 움직이는 수밖에 없어.

 

몇 년을 함께한 산책인데 너는 한결같이 들떠있는 게 느껴져. 너에겐 매번 특별한 경험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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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는 음식만 먹고, 보여주는 세상만 아는 하늘아. 2015년 겨울, 우리 집에 네가 온 날을 생생히 기억해. 친구와 함께 신당동 골목을 거쳐 너를 데려왔지.

 

가정 분양이라고 했는데 사실 네 출신을 정확히 몰라. 적어도 쇼윈도에 갇힌 강아지는 아니었어. 고백하건대 네가 아닌 다른 강아지를 보러 갔다? 부서질까 봐 겁나서 쉽게 만지지도 못했어. 근데 너를 안으니 가만히 숨죽이고 졸더라고.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내게 몸을 맡기다니. 순간 참을 수 없었어. 그렇게 우린 식구가 된 거야.

 

지금 생각하면 무책임한 일이지. 한 생명을 집에 들이면서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으니까. 고작 몇 권의 강아지 관련 책과 전문 블로거의 이야기, 강형욱씨의 강연을 보고 전문가가 된 줄 알았어. 애정 가득한 마음이 유일한 준비물이었지. 철이 없었고, 사랑은 넘쳤거든.

 

내 미숙함이 우리가 인연이 된 계기가 됐어. 지금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텐데.

 

*

 

집에 도착하면 늘 네가 반겨줘. 너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나와. 현관문의 삑-삑 소리는 가족이 돌아왔다는 뜻이거든. 부시시한 털과 충혈된 눈이 가엾고 귀여워. 누군가 자신을 반기는 존재가 집에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야.

 

아빠는 술에 취한 날이면 귀가하고 5분이 넘게 현관에 머물곤 했지. 네가 꼬리를 신나게 흔들고 아양을 떠는 게 좋았나 봐. 우리 집에서 누구도 가족을 요란스럽게 맞이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넌 가족에게 더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했지. 귀갓길이면 너를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에 발길을 재촉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꽉 채운 6년. 늘 우리가 같은 속도로 나란히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너와 내게 주어진 생의 시간이 달라서, 너는 늘 마음이 급한 것 같아. 너와 함께 밖을 다니면 네 작은 다리는 쉼 없이 움직여. 세상이 늘 새롭고 신기한가 봐.

 

네 몸과 나를 잇는 줄을 꽉 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 한 번은 널 영영 잃을 뻔했거든. 점점 네 콧잔등이 휑하게 변하고, 눈 주위의 털이 빠져서 분홍빛 속살이 드러날 때면 콧마루가 시큰해져.

 

네가 내게 주는 사랑을, 과분한 관심을, 무한한 애정을 전부 돌려줄 수 있을까. 오늘도 너와 나란히 걷는 상상을 해.

 

 

[김세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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