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왜 예술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러게요."라고 답할 수밖에 -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글 입력 2021.06.3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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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고 벅찬 감동을 잠재울 틈도 없이 현실에 복귀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좋겠다. 현생이 본인들이라서.”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를 읽던 중이라서 그런지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그 말을 두고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취미를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순진(이라 쓰고 무지)했던 나는 좋아하는 것을 돈 버는 것만큼 완벽한 삶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했다. 할 줄 아는 게 ‘좋아하는 것’밖에 없어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취미를 일로 삼은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예술은 보편적이다.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거나 예술에 관심 없는 이라도 어떻게든 살면서 한 번쯤은 예술을 향유하게 된다. 취미를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말에서 이 ‘취미’가 예술을 가리킬 때가 많다. 취미로서의 예술은 사막처럼 건조한 삶에 물기를 주지만, 직업으로서의 예술은 황폐한 땅에 애써서 삽질해도 겨우 물 몇 모금만 안겨준다.

 

박희아 기자의 인터뷰집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에 기록된 26인의 예술가 역시 오늘도 물 몇 모금을 얻기 위해 쉬지 않고 땅을 파내고 있을 것이다.

 


직업으로서의예술가-열정과통찰_평면표지.jpg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는 대중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박희아 기자가 음악, 소설, 연기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주고받은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많은 예술가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 덕에 책의 분량도 방대해 내용에 따라 ‘고백과 자각’, ‘열정과 통찰’ 두 권으로 나눴다. 내가 읽은 책은 바로 ‘열정과 통찰’이다.

 

처음 이 책의 정보를 접했을 때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라는 글귀에 바로 한숨이 나왔다. 예술가의 길을 걸어본 적 없는 나도 그 길이 험난하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직업은 험난한 세상을 ‘안정적으로’ 살게 해주는 수단이다. 직업으로써 사회에 쓰임을 제공하고 돈을 벌어야 내일도, 모레도 살아남을 수 있다, 예술은 이렇게 안정적이어야 할 직업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불안하다.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필요한가?’와 같은 의문과 매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예술이 없어도 살 수 있다. 내가 특정 예술작품을 접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미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예술작품이 있다. 내 꿈을 가로막은 것도 바로 이러한 생각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작품들이 많은데 나 한 명의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감이 들었다. 책의 첫 번째 인터뷰부터 내가 평소에 품었던 생각이 나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혹시 우리 사회가 예술을 10%밖에 필요로 하지 않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하는 건가?

 

-p. 20

 

 

나와 같은 생각을 공유해준 예술가는 바로 음악가 김목인이었다. 모든 예술이 저마다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취향도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의 예술이 필요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주류로 분류되는 예술은 따로 있고, 비주류의 예술은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만큼 외면받는 현실 속에서 유지하기 힘든 생각이었다.

 

책에 나온 26인의 예술가 중 자신이 하는 일에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뮤지컬 배우 강필석은 20년 넘게 해온 일을 지금도 왕성하게 해내면서 인터뷰어 박희아 기자에게 “제가 언제까지 뮤지컬을 할 수 있을까요?”라도 물었다. 안 그래도 불투명한 예술의 미래가 팬데믹 사태로 더욱 어두워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지 않은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결과가 좋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창작자에겐 ‘얼마나 잘 만드냐’보다 ‘얼마나 오래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기 예능에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음악가 넉살도 밀려드는 스케줄로 음악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는 현재를 걱정하며 언젠가는 꼭 발표해야 할 앨범에 대해 고민한다.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그렇다면 이렇게 불안한 예술을 왜 지속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곧바로 머리를 긁적이며 ‘그러게요’라고 되물을 예술가 26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술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금전적으로 불안정하니까, 언제까지 할지 기약할 수 없으니까, 노동력과 보상이 비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책의 인터뷰이들이 어떤 일이 닥쳐도 언제 어디서든 예술을 계속할 거라고 확신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한다는 것


 

최근 한 작가님으로부터 ‘작가의 길이 힘든 건 맞지만, 그래도 하겠다는 사람을 말리지는 않는다.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사무치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수만 가지 이유로 글을 그만 쓰려고 해도 표현하고 싶은 욕구 하나 때문에 다시 글의 세계로 돌아오곤 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는 ‘사람이 이렇게 다양하구나’를 느끼게 하면서도 ‘사람이 다 비슷하구나’를 느끼게 하는 재밌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예술을 시작하고 다른 원동력으로 예술을 이어나간 예술가들의 각기 다른 모습에서 나 한 사람이 투영되는 신기한 경험을 자주 했다. 모두가 특별한 경험들 속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부족한 재능에 대한 자책, 실력이 향상되는 걸 느낄 때의 희열 등은 모두 내 얘기처럼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인터뷰에 응한 모든 예술가가 이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이 자신의 예술 활동에서 얻는 에너지는 책장 너머에 있는 독자인 나에게도 생생하게 전해질 정도로 강렬했다. 아무도 직업으로서의 예술을 쉽게 이어나가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게, 그렇지만 강렬하게 예술과 동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26인의 예술가에게 왜 예술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그러게요.’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하고 싶으니까요.’라는 답이 이어질 것만 같다.

 

정세랑 작가님의 인터뷰를 읽다가 나를 돌아보게 한 부분이 있었다.

   

 

「Littor 릿터」에서 다른 작가분들의 인터뷰를 맡아서 진행하신 적이 있어요. 작가가 작가에게 궁금한 것은 무엇인가요.

 

한 작가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가 늘 궁금해요. 그게 결국은 작가를 쓰게 만드는 동력인데요. 저 같은 경우는 ‘인간의 폭력성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거든요.

 

-p.108

 

 

이 부분을 읽고 그렇다면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떠오른 질문이 ‘이 부조리한 세상을 우리는 왜 힘겹게 살아가는가?’였다. Lil Nas X의 ‘SUN GOES DOWN’이라는 노래에는 삶이 죽음보다 낫다는 가사가 있는데, 정말 삶이 죽음보다 나은지, 어떻게 나은지 탐구하고 알리는 게 내가 예술을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를 읽는 기간 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 뚜렷한 사건 때문에 고통스러웠다기보다 의욕을 앗아갈 만한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머금은 채 보낸 하루하루였다. 이런 회의감 가득한 일상을 나는 이 독서 덕분에 겨우겨우 버텼다. 어떤 고통이나 불안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들 덕분에 내 삶이 마냥 무채색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술이 인간을 살게 하는 건 아니다. 특정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특정 공연이나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예술은 인간을 살고 싶게 만든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예술 때문에 더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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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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