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그때 주고받았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글 입력 2021.06.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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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처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셀린 시아마의 졸업 작품인 <워터릴리스>. 해당 작품은 2007년에 개봉했으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주인공인 아델 에넬의 아역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나에겐 더욱 기대되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바로 감상평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엔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가슴 한 켠에 묵직한 돌이 자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사랑을 회상할 때, 스스로에게 '그건 뭐였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때 그 애의 행동을, 그때 나의 행동을 떠올리며 과거의 우리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사랑의 의미들을 곱씹어 보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워터 릴리스>를 본 이후의 내가 그랬다. 주인공들의 행동들을 곱씹으며 그때 그 애는 왜 그랬을까? 이 두 사람이, 혹은 세 사람이 나누었던 마음들의 깊은 곳엔 어떤 함의가 존재할까? 이런 식의 생각들을 했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이 나누었던 깊은 마음이 관람자인 나에게도 와닿았다는 의미인 듯 하다.
 
영화는 수영장 그리고 수영장에서 수상 발레 훈련을 받는 여자 아이들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어떤 사람들은 수영장의 분위기와 아이들의 복장의 영향으로 여름내가 난다는 평을 내놓았지만 나는 여름의 쾌청한 냄새보다는 정돈되지 않은 마음의 퀴퀴한 냄새를 먼저 맡았다.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를 떠올려 보자. 오롯한 진심밖에 없어 진심으로 하는 행동들에는 대개 필터가 없다. 따라서 욕망으로부터 오는 퀴퀴함을 걷어내고 필터를 씌워야 곧 '보기 좋은' 마음이 되는데, 보기 좋은 마음은  결국 욕망을 어느정도 숨겨야만 가능한 것이 된다. 찌질하지 않고, 보기 좋은 그런 예쁜 마음들 말이다.

그리고 <워터 릴리스>에서의 주인공들은 그런 예쁜 마음들을 대놓고 무시한다. 그들은 그 무엇도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유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내가 상대를 향해 갖는 마음 또한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화에서는 욕망을 숨길 수 없어 마구 분출해 버리고 마는 순간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곧 '이 여성들의 내면에는 필터가 없습니다' 하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주인공인 마리가 플로리안의 체취가 가득 든 쓰레기 봉투를 냅다 집으로 가져와 버리는 장면이 그랬고, 플로리안이 입으론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몸으로는 마리의 손을 붙잡아 버릴 때가 그랬고, 안나가 오직 첫 키스를 위해 쪽지와 팬던트를 건네고 돌아올 때가 그랬다. 모두 욕망과 진심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들이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는 중간중간 너무 갑작스럽고, 그래서 더 상처받는다 느낄만 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리가 절친한 친구였던 안나에게 너와 함께하는 일이 질린다고 말해 버리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더 마음 아팠던 이유는 두 인물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성으로부터의 강한 끌림을 경험한 뒤, 이전에 관계를 맺고 있었던 사람은 따분해져 버리는 상황, 한편으로는 변한 것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별안간 바람맞아 버린 상황 모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현실적인 마음을 보여 주는 장면에서는 누구든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자신의 인연들을 떠올릴 것이라 확신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나의 마음은 왜 그리도 무거웠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내 내면에는 필터링 가득한 마음들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찌질하고, 욕망뿐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칭칭 감아 버린, 보기에만 예쁜 그런 마음 말이다.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들켜서는 안 될, 일기장 페이지를 찢어 놓고 맘 속에만 간직할 뿐인 그런 이야기들을 들켜 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자신의 필터 없는 마음을 마주하고 싶은 이들 모두에게 추천한다. '일기장의 영상화'를 경험할 수 있는 순간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의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퀴퀴함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시선들, 행동들, 마음들을 숨김 없이 드러냈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어설펐기 때문에 민망하고, 진심뿐이었기 때문에 자꾸만 숨기고 싶었던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일기장에만 꽁꽁 숨겨져 있는 그런 마음들 말이다. 영화 <워터릴리스>는 그런 마음들을 마주하게 해 주고, 그를 통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도 재고해 보게끔 만들어 줄 것이다.
 
 
[박이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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