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이지 않을 때만 비로소 [영화]

눈을 감고
글 입력 2021.06.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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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사춘기는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시작됐다. 그때 나는 언니와 한바탕 크게 싸우고 오평 남짓한 내 방에 거의 살다시피 했는데, 방학이 되자 그런 생활은 더 일상이 됐다. 할 일도, 친구도 없던 커라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꼭 봐야 하는 영화 추천 목록을 다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 그나마 기분이 나아질 것도 같았다. 대부분 보기 싫게 생긴 포스터투성이라 몇몇은 건너뛰었다. 명작이고 뭐고 보기 싫은 영화는 보기 싫었다. 그래도 그중에 꽤 많은 영화를 봤다. 그리고 그때 본 영화가 자양분이 돼서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면, 늘 남는 건 경험임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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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실 거의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영화 <블라인드>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춥고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고 배경도 한겨울이었기에 감독은 최선을 다해 먹먹한 분위기를 스크린에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 여름 방학이었는데 그래서 마냥 덥지가 않았다.


그 차디찬 장면 중에서도 나는 아직까지 마지막 장면이 또렷하다. 시각장애인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 여성이 못생겼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훗날 눈 수술 후 그녀를 찾아가지만 자신의 외모를 보고 실망할까 봐 여성은 떠나가고 영화는 주인공이 긴 고드름을 두 눈에 찌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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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나는 무언가를 더 깊이 느끼고 싶을 때 눈을 감는다. 그러면 그것들이 내 안에 들어와 아무 말 없이 머물다 간다.

 

어떤 것들은 금방 떠나지만, 어떤 것들은 영원히 기어코 내 옆에 있어 준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때때로 모든 것이 추악해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의 진심은 누군가의 사랑은 누군가의 마음은 늘 쉽게 오염된다.


세상에 둥둥 떠다니는 추악함 속에 오로지 빛나는 것들을 담고 싶을 때, 그래서 나는 눈을 감는다. 그러면 가난한 내 마음은 조금은 나아지고 더 밝아지고 더 풍족해진다. 영화 <블라인드>의 결말에서 남자 주인공은 환하게 웃어 보이는데, 그의 마음도 조금은 풍족해졌지 않을까, 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하게 된다.

 

더운 여름이 되니 몹시 추운 영화가 생각난다. 과거 긴 사춘기가 남긴 영화 <블라인드>를 떠올리면, 그래서 남자 주인공의 환한 미소가 생각나면 나 역시 눈을 감고 싶어진다. 그러면 가난한 내 안에 무언가가 들어올 것만도 같다.

 

 

[신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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