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화려한 K-pop, 그 뒤에 숨겨진 창작자의 눈물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6.0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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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K팝 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관한 내용을 방영했다.

 

일명 ‘K팝의 유령들 - 그 히트송은 누가 만들었는가’는 K팝을 대표하는 수많은 히트곡의 이면에 숨겨진 ‘고스트 라이터’의 행태를 추적했다. 그동안 업계에서만 쉬쉬하던 일이 수면 위로 올라와 세상에 밝혀지긴 했지만, 전파를 탄 사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의 출현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는 사전적으로 대필 작가를 뜻하며 주로 출판업계에서 타인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대신 써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이는 음악 업계에까지 범위가 넓혀지면서 기존과는 조금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현 음악 업계에서 고스트 라이터는 타인의 창작물을 갈취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고스트 라이터의 출현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난 3월, 한 SNS에 ‘익명의 케이팝 작사가 대리인’이라는 계정이 작사학원의 부조리한 관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서 고스트 라이터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에는 큰 이슈 거리가 되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DJ DOC의 이하늘이 라이브 방송에서 자신의 동생 이현배가 김창렬, 이재용의 고스트 라이터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SNS의 글이 재조명되었고, 고스트 라이터의 만행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작사가 지망생과 작사학원의 관계


  

고스트 라이터의 만행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작사가 지망생과 작사학원의 유착 관계에 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작사가 지망생과 작사학원, 이 둘은 필수 불가결한 관계로 연결돼있다. 아니, 정확히는 작사가 지망생에게 작사학원은 필수 불가결한 관계이자 절대적인 존재이다. 모든 것은 작사가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작사학원을 무조건 다녀야 하는 시스템에서부터 비롯된다.

 

작사가로 데뷔하기 위한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작사학원에 다니면서 학원으로 의뢰가 들어온 데모 곡을 받아 데뷔하는 것, 두 번째는 음악 업계에서의 인맥을 활용하여 데뷔하는 것, 세 번째는 작사가 공모전으로 데뷔하는 것이다. 사실상 첫 번째 방법을 제외한 두 가지는 작사가를 꿈꾸는 평범한 지망생들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작사학원의 수강비와 행태에 상관없이 학원을 다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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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계정은 비싼 수강료를 매달 낼 수밖에 없는 환경하에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박탈당하는 수강생들의 현실을 고발했다. 윗글의 관점에서 작사학원의 행태를 평가하자면 이른바 ‘갑질’과 다름없었다.

 

이 글이 여기저기 퍼져 나가자 대부분의 작사학원에서는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발표했지만, 이 중 한 곳에서 일부를 사실로 인정하며 사과했다. 이들이 인정했던 사실에는 해당 학원의 대표인 김 원장(가명)의 만행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김 원장은 약 400여 개의 K팝 곡을 작사한 히트곡 메이커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곡을 재생할 때마다 작사/작곡가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 나에게 그의 이름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유명 아이돌의 곡을 작사한 학원 수강생인 제보자는 자신이 곡의 테마와 95%의 가사를 썼지만, 자신의 지분은 2.5%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에 김 원장은 기부 음원인 탓에 없는 지분을 자신 덕분에 그 정도라도 챙긴 거라며 생색을 냈다. 의문을 품은 제보자가 기획사 측에 직접 알아본 결과 고작 몇 단어 수정한 김 원장의 지분은 8%에 달했다. 정작 김 원장은 자신이 어느 부분의 가사를 어떻게 바꿨는지 기억도 못 하는데 말이다.

 

한 곡에 공동 작사/작곡으로 구성될 때는 해당 곡의 기여도순으로 이름이 나열된다. 곡의 테마나 글자 수, 마디 수에 따라 수익 배분과 크레딧의 순서가 결정되는 것이 업계의 보편적인 룰이다. 자신의 기여도가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3배에 달하는 지분을 챙긴 김 원장의 만행은 작사가 란에 김 원장의 이름, 제보자의 이름순으로 나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가 훔친 것은 저작권료만이 아닌 수강생의 이름과 시간, 노력 전부이다.

 

 

 

화려한 K-pop, 그 뒤에 숨겨진 창작자의 눈물


  

이후 김 원장의 학원 자체에 대한 의문과 제보가 쏟아졌다. 수강생들의 동의 없이 공동 작사가로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 저작권 지분율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나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한 것, 전체 가사 수익 지분의 절반을 떼가고 남은 절반에서 자신과 수강생을 8:2 비율로 분배한다는 것, 학원 학생들에게 데모곡을 꾸준히 공급해주는 대신 가사가 채택될 때마다 수수료 명목으로 학생에게 20%만 가져가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제보와 더불어 제보자들이 공통으로 의문을 품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실재한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정체 모를 한 작사가 A 씨의 존재였다. A 씨가 작사한 노래에는 늘 김 원장의 이름이 함께 있었고 해당 곡들은 전부 한 대형 기획사의 유명 아이돌 노래뿐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 원장과 대형 기획사의 A&R팀 책임자 B 씨와 유착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혔으나 김 원장은 이를 부인했고, 자신이 함께 작사한 A 씨가 대형 기획사의 A&R팀 책임자인 B 씨의 아내라고 설명했다. 즉, B 씨는 아내인 A 씨의 예명을 자신이 담당하는 유명 아이돌 노래에 등록해 거액의 저작권료를 취하고 있었다.

 

실제로 A 씨가 작사한 곡들은 엄청난 인기를 모는 아이돌의 곡들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들도 많았으며 데이터상으로 그가 작사한 이력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기획사 측에서 해당 직원에 대한 중징계를 내렸지만, 이들이 이제껏 거짓으로 누려온 것들을 도로 뱉어낼 순 없는 현실이었다.

 

 

 

알아도 말할 수 없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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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는 이미 작곡 업계에도 널리 분포되어있었다. 실제로 한 음악 감독은 작곡가들의 창작물을 취해 자신의 이름만 기록하여 그들을 유령 작곡가로 만들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취재 과정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의혹들을 발견했지만 50명의 제보자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공통된 말을 했다. ‘이 사실을 내가 말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저는 업계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없습니다.’ 부조리한 관행이 순환되는 시스템을 제 입으로 발설하는 순간 다시는 업계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현실이 그들의 입을 막았다.

 

김 원장의 이야기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수면 밑에 숨어있는 크고 작은 어두운 이야기들은 여전히 만연하다. 이 이야기가 전파를 탄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유령 작사가는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흔들리는 심지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게 된다면 다시금 이전의 악습이 재반복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타인의 창작물을 훔치고,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과 시간을 눈앞에서 허무하게 빼앗기고, 누군가는 자신의 잘못을 외면한 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

 

사실 이 글을 쓸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방송이 방영된 지도 약 한 달이 지났기 때문에 너무 시의성과 동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어 선뜻 작성하지 못했다. 조금은 늦었지만, 글의 마침표와 가까워지는 지금 드는 생각은 ‘쓰기 잘했다.’이다. 글을 쓰기 위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공부할수록 창작자의 권리를 빼앗는 악습이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현실이 선명하기 보였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발달 덕분에 이전보다 부조리에 관한 추적이 매우 쉬워지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꼬리가 밟힌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꼭꼭 숨어버린다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도 바로잡을 수도 없다. 현재 음악 업계에서 쉬쉬하고 있는 이 모든 일이 잠자코 앉아만 있다면 더 이상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비단 음악계뿐만 아니라 모든 업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밝혀야 하는 진실을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다는 것은 돌아올 부메랑이 자신을 움직일 수 없게 할 정도의 힘을 지녔다는 말과 같다. 돌아올 부메랑을 혼자 짊어진다는 압박에서 오는 두려움은 모두가 같기 때문에 섣불리 타인에게 옳은 행동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힘들지라도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누군가가 스타트를 끊어준다면 그때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소리쳐주지 않을까. 짊어질 짐도 여럿이 나누면 가벼워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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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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