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안에 40억년이 있다 -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40억 년이 걸렸다
글 입력 2021.06.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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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뜨거운 물에 샤워하는 것이 좋았다. 그럴 때마다 종종 생각에 잠기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11살정도 되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샤워기를 틀고 한참을 몽상에 빠졌다. 그러다가 '나는 왜 나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많고 많은 존재들중에, 왜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가장 경이롭고 놀라웠던 점은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간, 더 나아가 생각을 하는 자신을 '인식'하고 '의식'하며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과학은 '싫지 않은 것'이 되었다.  과학은 나의 이러한 호기심을 풀어줄 수 있는 꽤나 고맙고 흥미로운 열쇠기 때문이다. 뼛속부터 문과인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유독 생명과학과 지구과학을 좋아했다. 이수단위도 2밖에 없는, 소위 문과 중에서는 비중없는 과목이었지만 나는 진지하게 공부한 기억이 진하게 남아있다. 선생님이 "수학공부는 안 하고 왜 생명과학에 매달리냐"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였다.

 

졸업 후 과학을 잊고 살던 중에 대학 교양 강의에서 '빅뱅에서 문명까지'라는 과목으로 수업을 들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강의였다. 전체적인 역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보다 아주 빠르게 훑고가는 느낌이 강했다. 또다시 과학을 잊고 살던 중에, 아트인사이트를 통하여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생물과 인간, 그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를 거의 백과사전만큼 방대하게 기록했다. 50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나가기에는 마냥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15부와 66장으로 이어지는 전개 덕분에,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생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찾아나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현재까지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과학적 지식을 알아감으로써 새롭게 생기는 호기심이 퐁퐁 튀어나왔다. 그래서 앞뒤로 다시 찾아가 궁금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그 발자취를 따라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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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40억 년이 걸렸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유는 무수히 아득한 시간 속의 변화에서 근원한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생물 단세포에서 의식과 감정의 뇌 진화까지' 거쳐왔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약 137억 년 전 우주가 탄생했고, 최초의 은하가 100억 년 전에 나타났으며, 46억 년쯤 전에는 태양과 지구를 비롯하여 태양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38억 년 전, 지구에서는 생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서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저자는 이를 위해 지구의 역사로 시간 여행을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먼저 RNA, DNA, 단백질이 원시 지구의 바다에서 원세포를 만들었고, 현존하는 모든 생명의 조상인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of life)'가 출현했으며, 원핵생물과 진핵생물, 다세포 생물, 그리고 더 머나먼 시간을 지나 동물과 유인원, 그리고 인류가 등장했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생물의 삶부터 성의 혁명, 뉴런과 신경계의 발생, 후생동물이 바다에 뿌린 흔적들, 척추동물의 도래까지 거침없이 되돌아가 많은 생명체의 발생과 생존 원리를 조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인간, 인류가 지니게 된 대표적인 능력인 뇌에서 비롯한 '인지'와 '주관성', '기억', '의식', '감정' 등의 키워드를 꺼내어 풀어낸다.

 

자연계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일까? 생명체 종들이 등장한 순서대로 읊으면 마치 인류가 진화의 최정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끄럽지만 나도 과학이라는 학문에 발을 담그기 전까지는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오해였다. 인간은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그저 '고유한 종'일 뿐이다. 생명체는 공통 조상에서 시작해 각기 다른 분기도로 나눠지는 계를 지닌다. 저자에 따르면 '분기도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해소하기에 딱 알맞은 도구다.' 예를 들어 인간과 쥐는 둘 다 포유류로서 체모라든가 어린 개체를 보살피는 공통된 특징을 지니지만, 우리가 과거에 쥐였던 적은 없다.

 

우주와 지구, 그리고 긴 생명의 역사가 흐르는 뒤 인류가 출현하였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지닌 공통된 특성과 더불어 인간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발판은 제시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오래 전부터 호기심을 품어왔던 인간의 주요 능력에 대해 주목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생물학적 역사와 연계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협동의 기원은 세포에 있었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서 떠난다는 말이 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공감할 내용이다. 하지만 삶에 100% 통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절대 '혼자서만은'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이든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 종들의 개체는 '협동'한다. 협동은 때때로, 아니 많은 경우 1+1>2의 결과를 낳는다.

 

놀랍게도, 이러한 협동의 근원이 '세포'에서 시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진핵생물의 유성생식, 즉 정자에 의해 수정된 난자가 양 부모의 특성을 모두 가지는 다세포 유기체가 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생각해보면 참 쉽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는 모든 과정은 몸 속 안에 있는 작디 작은 세포없이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혈액은 여러 신체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고, 그 세포들 각각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생성하며, 산소는 폐 조직 세포에 의해 여과된 공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 중에 어느 한 곳이라도 '협동'에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질병에 걸리거나, 심각하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에 의존하게 된다. 집락에서는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잠재적으로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반면, 진정한 다세포 유기체에서는 기능이 유전체 안에 프로그램되어 있다. 따라서 다세포 유기체에서는 이탈자가 생길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모든 세포가 서로를 의지해야 하며,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다세포 유기체가 적합도 위임에 성공한 것은 생식 세포와 비생식세포 사이의 지속적인 노동 분업에 의해서였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문구는 마지막 인용문이다. 다시 말해,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세포가 서로를 의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협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 또한 '노동 분업'이라는 키워드도 눈에 띈다. 분업은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 단위에서도, 유기체 자체인 생명의 개체 단위에서도(예컨대 사람과 사람 사이) 이뤄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분업을 통해 더욱 효율적인 공동체와 사회 건설을 도모하고, 개체의 생산성과 전체의 균형을 맞춰나갈 수 있는 것은 매우 놀라운 메커니즘이다. 즉 협동은 '자연법칙'과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한때 즐겨 읽었던 자기계발서 중에는 스티븐 코비 박사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도서가 있다. 그 도서에서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성공한' 사람이란 의존성에서 벗어나 독립성으로, 나아가 상호의존성에 입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승-승 아니면 무거래라는 선택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자가 결국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가 이야기하는 적합도 위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기억과 의식, 그리고 자기의식 속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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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억'을 하는 존재다. 나는 종종 남들에 비해 '누가', '언제', '어디서','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기준을 들어 사건 자체를 통째로 더 잘 기억한다. 또한 사건에서 느꼈던 감정의 생생함을 꽤 오랫동안 지니고 있다. 진실로, 같은 사건을 경험한 다른 사람과 이야기했을 때 나한테서 그 디테일이 최고조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줄곧 으쓱한 적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나 혼자서만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것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나에게 기억이라함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기억에 대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접하게 되면서, 디테일한 기억을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체 중에서도 인간으로서 얻은 풍부한 축복임을 알 수 있었다.

 

기억에 관해서라면 체계적인 분류를 논할 수 있는데, 장기기억에는 의식적 접근이 가능한 의미 기억과 일화 기억이 있다. 반대로 의식적 접근이 불가능한 암묵(비서술)기억도 있다. 우선 의미 기억은 특정 대상을 반복해서 경험함으로써 그 대상에 대한 추상적 표상을 형성한 것이다. 예를 들어 '토마토'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직접 보고 만지지 않아도 토마토의 색깔과 크기, 다른 채소와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서 의미 기억은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저장된 내적 표상을 바탕으로 사실을 인식하는 '주지 능력'이 근원한다.

 

반대로 일화 기억은 경험하는 주체인 '자기 자신'을 그 경험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으로서, '자기주지 능력'에서 비롯한다. 예컨대 '언제-어디서-무엇을'이라는 표상들의 합성물로 정의되곤 한다. 따라서 일화기억은 그 경험을 겪은 사람이 포함되므로 '개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툴빙에 따르면, 자기주지적 의식의 주요 특징은 '정신적 시간여행'이다. 즉, 우리는 단순한 미래가 아니라 나 자신의 개인적인 미래에 대해 상상하고, 그와 마찬가지 메커니즘으로 과거와 현재를 여행한다.


 

감정 능력으로 인해 원시 생존 회로에서의 활동은 자기 인식으로 통합되고 의미 기억, 개념 기억, 일화 기억이란 형태로 표현될 수 있었으며, 각 개인이 가진 자아스키마와 감정 스키마의 형태로 해석되고 바로 지금의 행동을 이끌고 미래의 감정 경험을 계획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 그 결과 감정은 인간 두뇌에서 정신적 무게 중심이 되었고, 이야기나 설화의 원천이 되었으며, 문화,종교,예술,문학, 그리고 타인과 우리 세계와의 관계, 그 밖에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간주되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감정 능력이 기억이란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인간을 둘러싸는 세계를 만들었다고 일컬었다. 나는 이에 대해 다시금 인간만이 지닌 두뇌의 능력에 감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기억과 감정을 더 생생하게 자아낼수록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무언가를, 나아가 유기체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전두 피질로 수렴하는 지각-기억의 경로 등과 같이 복잡한 뇌 회로없이는 불가능하다. 문화 애호가들이 모인 이곳 아트인사이트의 구성원들도 결국 각자의 깊은 감정에서부터 '자기 인식'을 하고 그 기억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와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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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을 느끼고, 기억을 하는 능력이 과연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담대하게 '감정은 인간만의 특화 기능'이라는 주장을 펼쳐나갔다. 예컨대 동물에게 의식적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동물이 하는 의식적 경험은 우리의 것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영장류 동물과 비영장류 포유동물이 가진 뇌의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종류의 의식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은 훨씬 최근에 발달했다는 논리다.

 

 

생존 행동이 깊은 역사를 통해 흐르는 강이라면, 감정적인 의식은 얕은 개울이다. 인간 뇌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최근에 출현한 것이라고 해서 다른 동물들의 지위가 원시적인 반사 기계로 격하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식을 갖췄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조차도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동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정교한 비의식적 인지, 행동 능력을 사용해 헤쳐나간다.

 

 

인간 종 또한 생명의 역사의 한 부분으로서 생존 회로 및 행동에 의해 구현되는 보편적 생존 전략을 가진다. 즉 신경계를 가진 수많은 유기체의 생존 역사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40억년의 역사가 인간의 DNA에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존 회로의 깊은 역사와 별개로, 감정 및 의식적 상태의 역사는 이와 분리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이 하등한 존재라거나, 패배자라는 것이 아님을 저자는 강조한다. 자기의식을 갖춘 인간도 삶 속에서 상당한 시간을 다른 생명체와 같은 비의식적 인지, 행동 능력을 통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유한 종이며 따라서 특별하다.'

 

나는 특히 인간의 기억과 의식,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 인간의 공통점 및 차이점에 주목하면서 반려동물과 주인이 나누는 교감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비슷하면서도 분명 다른 특성을 지닌 뇌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감정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동물이 우리에게 느끼는 의식적 경험이 과연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감정을 동반하는지는 <우리 인간의 깊은 역사>에 따르면 의문인 셈이다. 하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한 교훈은 종들은 모두 고유하며, 그래서 인간도 다른 종들도 각자 특별하다는 것이다. 인간 중심적인 이기심과 교만을 버리고 이 세계에, 다른 생명체들에게 '존중'을 왜 가져야 하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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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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