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선은 나, 그리고 너 [도서]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
글 입력 2021.06.02 13:3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7.jpg

 

 

“각하,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911이라는 미증유의 참사를 경험한 미국, 그 당일 유치원 수업에 참가 중이던 부시가 받은 보고다. 가장 발달된 형태의 자본과 경제력이 가시화된 공간이자 미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쌍둥이 빌딩이 30분 간격으로 무너졌다. “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는 911테러로부터 얻게 된 트라우마가 소통의 장애물이 되어 충격과 공포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인물들을 소개한다. 또한, 다양한 소통의 방법을 제시하며 자신만의 애도의 방식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시된 소통의 수단 중 언어적 “편지”와 비언어적 “사진”에 초점을 맞추어 각각의 역할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소통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편지


 

[크기변환]8.jpg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언어적 수단으로서 편지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책 속의 3명의 화자 중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911 이전에 드레스덴 폭격 사건으로 인한 생긴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인물이기에 살아가는 고통이 오스카보다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하고 과거가 없는 삶은 존재할 수가 없기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도가 필요했다.

 

그 방법으로 구체적인 독자를 지칭하는 편지의 형식을 빌려 재현할 수 없었던 과거를 자신의 목소리로 재현해 나가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장 (MY FEELINGS) 과 할아버지의 장 (WHY I’M NOT WHERE YOU ARE) 은 모두 아들, 오스카라는 구체적인 수신인을 가정한 편지의 형식으로 쓰였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과거를 가장 전하고 싶은 사람을 향해 꺼냄으로써 솔직한 이야기와 구체적인 감정을 담겨있다.

 

또한, 이 역할은 William Balck의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쓰기 시작했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삶을 지속해야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면 William의 아버지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갖춘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슬픈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 했지만 하고 싶지 않았던 일에 대해 적으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정반대의 두려움을 가진 인물이지만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편지를 이용해 과거를 현재와 연결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오스카의 편지


 

[크기변환]1111.jpg


 

털어놓을 친구나 주변인이 없었던 오스카는 스티븐 호킹, 제인 구달, 링고 스타 등의 유명인들에게 자신의 희망과 꿈에 대해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세계관을 유지한다. 이들은 오스카의 상상 속 친구라고도 볼 수 있는데 허구는 현실을 대체할 수 없고 한계에 도달하게 되듯이 오스카는 제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대한 “거절”의 메시지가 담긴 답변을 받는다. 그러나 오스카는 그 답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며 편지들을 코팅까지 해서 벽에 붙여놓는다. 비록 거절의 내용이 담긴 편지이지만 오스카에게 기쁨의 감정을 자아낸다.

 

더하여 소설 후반부에 오스카가 받은 스티븐 호킹의 편지는 삶과 세계에 대한 오스카의 가치관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비록 스티븐 호킹은 이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위대한 과학자이지만 그는 오스카에게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삶을 이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감성적,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기를 권한다. 이 편지를 받은 오스카는 소설 초반부에 “Nothing is beautiful and true”라고 말하며 이성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던 모습에서 벗어난다.

 

마지막 장인 Beautiful and True에서 아버지의 빈 관을 파내어 자신의 애도의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관에 편지를 채워 넣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기다려주는 감성적인 태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집에 돌아와 엄마와 이야기를 난 후에 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지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은 엄마의 아들이라는 ‘관계‘에 집중하며 외부로 연결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사진 속 숨겨진 인물의 시각


 

[크기변환]9.jpg

 

 

비언어적 수단으로서 사진은 독자가 인물의 숨겨진 시각을 취해보도록 도움을 준다. 오스카의 “Stuff That Happened to Me”는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한 감정을 사진을 통해 표현한 스크랩북으로 자신과의 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이 스크랩북은 소설 속에서 미리 제시한 힌트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오스카의 심리적, 정신적 구조를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911 전날 밤에 아버지와 나누었던 6번째 구 이야기와 관련하여 센트럴파크가 사라진 6번째 구의 사진,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덮고 있던 신문에서 본 테니스 선수의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함께 나누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은 사진들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더 이상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슬픔을 느끼는 오스카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더하여, 911 이후에 엄마가 자신을 경찰서에 데려가서 지문을 찍게 했다는 내용과 관련된 지문 사진, Frazer and Sons 가게에서 Walt가 보여준 열쇠가 잔뜩 걸려있는 열쇠걸이 사진이 있다. 이 사진들처럼 한 줄의 묘사로 넘어갔던 장면을 스크랩에 포함시켜 오스카에게 해당 장면들이 실제로는 사진으로 남길 만큼의 의미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지문을 찍은 경험이 근사했다고 말하는 오스카의 대사에서 자신을 향한 엄마의 애정을 느낄 수 있어 기뻐하는 아이의 심리를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아버지가 남긴 열쇠의 단서를 찾으러 간 Frazer and Sons의 사진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자물쇠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오스카의 설렘이 느껴진다. 이처럼 사진은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선까지 독자들에게 전한다.

 

 

 

Falling Man


 

[크기변환]4.jpg

 

 

사진은 재현을 통한 회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911은 인류 역사상 가장 시각적으로 기록된 사건으로 911을 떠올린다면 빌딩에 충돌하는 비행기, 떨어지는 사람들, 무너지는 빌딩 등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또한, 그 누구도 함부로 재현할 수 없었던 911은 ‘Falling Man’이라는 사진으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Jonathan Safran Foer는 한 인터뷰에서 “911은 사람들에게 이미지로 남아있고 사람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솔직해지고 싶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뜻을 소설에 적용하여 911을 언어로 묘사하기보다는 다양한 사진을 이용하여 재현하고 있다.

 

 

[크기변환]플립북.jpg


 

포르투갈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Falling Man’의 영상을 찾게 된 오스카는 언어적인 장벽이 있음에도 사진을 통하여 재현된 아버지의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떨어지는 남자의 영상을 사진으로 찍은 후 순서를 거꾸로 바꿔 플립북의 형태로 ‘Flying Man’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911사건의 순서를 거꾸로 배치하여 모두가 안전하다는 오스카의 상상은 단순히 어린아이의 희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상상이기에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슬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성숙한 수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에 더하여, 상승의 이미지는 아버지의 관을 끌어올리는 데에서도 나타나는데 아버지의 관을 올려서 여는 행동을 통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할 수 있었다는 맥락에서 ‘Flying Man’와 아버지를 동일하게 볼 수 있다.

 

 

 

우선은 나, 그리고 너



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는 편지와 사진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연결, 숨겨진 감정 이해. 감성의 확장, 재현을 통해 회복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바람직한 소통은 ‘우선은 나, 그리고 너’라는 순서를 따라 나타나는 ‘퍼짐’이다. 우선 소통은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는 연결 혹은 내적 소통이 첫 번째 단계이다. 극적인 상황에서는 감성이 이성을 압도할 수 있기에 원인을 찾으려 한다면 첫 번째 단계부터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감성적인 측면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숨겨진 감정의 존재 자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감성의 확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후에는 타인(너)에게 자신이 인정한 감정을 재현하려는 지속적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발화, 편지, 사진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재현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야기에는 진통 효과가 있기에 과거의 아픔을 돌볼 수 있으며 재현만이 온전하게 자신을 수용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앞으로 살아간 힘을 회복하게 된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인지하고 재현을 기다리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번에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줄 대상이 되어 재현을 도와준다면 소통의 ‘퍼짐’에 기여하는 것이며 바람직한 소통의 마지막 단계를 완수하는 것이다.

 

 

 

박세윤.jpg

 

 

[박세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