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모두 달의 아이였다 - 문스토리

글 입력 2021.05.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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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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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멜리아스. <달세계 여행(1902)>

 

 

‘달’에는 예나 지금이나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특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100년도 훨씬 전인 1902년 오늘날의 SF 및 우주 영화의 원조 격으로 알려진 조르주 멜리아스 감독의 영화 <달세계 여행(1902)>의 탄생 이래로 달, 또는 그곳에 사는 상상속의 생명체들을 소재로 한 인류의 수많은 창작물들이 탄생했다.


달에 닿으려는 인류의 노력이 비단 문학이나 영화 같은 허구적인 영역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태양계에서 지구와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행성인 달에 인류는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했고, 결국 1969년 지구 최초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달의 표면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은 우리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품어온 달에 대한 호기심은 시대, 국가, 그리고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그리고 이 중에는 우리나라의 전래 설화와 같이, 달에서 절굿공이로 떡을 찧는 토끼와 같은 꽤나 귀여운 전설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잘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 두려움,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이 불러온 부정적인 이미지로까지 이어졌다. 태양과 대치되는 것으로서의 달이 주는 이미지는 음산함, 어두움, 그리고 불길함에 가깝다. 실제로 라틴어로 달을 뜻하는 단어인 ‘Luna'에서 비롯되어, 미치광이 또는 정신병자, 즉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를 일컫는 ’Lunatic'이라는 영어단어가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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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뮤지컬 <문스토리> 역시 ‘달 이야기’ 라는 어딘지 낭만적인 분위기의 제목과 무대 분위기를 뒤로하고, 그 시작부터 ‘나이헌’이라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과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인물을 내세운다. 2021년, 불야성의 도시 서울. 이곳에서 요즘 말로 철저한 ‘아싸’로 살아가던 택시기사 나이헌의 집에, 돌연 ‘용’과 ‘린’이라는, 역시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인물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구인이 만든 달의 그림자


 

'달에 사는 토끼'로 대표되는 환상과 순수함 또는 '미치광이'로 대표되는 비정상과 광기.

 

달하면 떠오르는, 얼핏 보면 서로 그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이는 위와 같은 두 가지 축의 이미지는 예상치 못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 즉 ‘주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저 멀리 달나라에서 열심히 떡을 찧는 토끼의 전설은 어린이들에게나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었을 뿐, 이미 어른이 된 이들에게는 더 이상 조금의 화젯거리도 되지 못한다.

 

물론 어른들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또다시 달 토끼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이 누군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허구이고 거짓임을. 달 토끼의 전설을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이들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

 

한편 미치광이들은 단 한 순간도 타인으로부터의 이해를 기대할 수 없다. 이들은 자주 자신을 가두고, 또는 타인에 의해 갇혀지며,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평생을 고립 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달 토끼의 전설을 믿는 사람이든, 남들과 다른 생각과 외양을 가지고 있는 비정상인이든, 결국 모두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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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토리>의 달에는 달 토끼가 아닌, 달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황과 린, 그리고 용.

 

모두가 지구로 떠나버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동안에도 꿋꿋이 이곳을 지키고 있던 세 사람의 행복은, 어느 날 황마저 지구로 떠나버리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이들은 그 자신 이미 달의 아이들이었고, 지금까지 지구와는 중력과 자전 속도가 너무나 다른 곳에서 살아왔던 터라 쉽사리 이곳의 기준에서의 정상인이 될 수 없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속도로 살아가지 않는 이들이 곧잘 비정상이 되어버리는 이 곳 지구. 달의 아이들의 이러한 지구행은 어쩌면 예정된 비극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연'이라는 지구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이 이야기의 끝맺음을 기존에 달이 주는 이미지가 그러했듯, 파멸 또는 비극으로 매듭짓지 않으려 한다. 다소 진부하지만, 여기에도 연대의 힘이 작용한다. 이헌, 또는 황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이는 다름 아닌 지구인인 ‘수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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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알이 달린 안경과 벙한 옷을 입고 현 시점에서 이미 잊혀진지 오래인 작가인 이헌에게 다짜고짜 열혈한 팬임을 고백하는 수연.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이 다른 것들에 골몰해 있을 때, 자신만큼은 이헌의 만화를 열심히 구독하다 지금에 이르렀다는 수연은, 여러 모로 여느 지구인들과는 다르다.

 

달 토끼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이 지나면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화’를 어른이 된 지금까지 동경해 온 것도, 심지어 처음에는 이전에 달의 아이였던 이헌(황)조차 부정했던 용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어준 것도 그렇다. 이처럼 그 자신조차 지구에서는 이방인의 자리에 가까웠던 그녀는, 그러나 모두가 미치광이 취급을 했던 달의 아이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고, 세상으로 나가는 빗장을 닫아버린 이헌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을 주는 다리가 된다.


결국 이로부터 비롯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달과 지구의 존재들의 연대는 남은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해피엔딩을 맞게 하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된다. 달과 지구, 그리고 두 별을 이어주는 수연과 같은 존재. 오늘 이 시간에도 린과 같이 스러져가는 수많은 달의 아이들이, 다시 서서히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 나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이유다.

 

 

 

지구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제 소원은요, 철들지 않는 거예요."



내가 평소 좋아하는 한 배우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참여한 극 중에서 나오는 질문이기도 한,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소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답이었겠지만, 이는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큰 울림을 줬다. 나 역시 평소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무게들에 벌써부터 짓눌린다고 느낄 때가 많았고, ‘어른스러움’이라는 말에 묻혀 나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나름대로 항상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한국식 나이로 계산해 다른 국가들에서보다 많은 나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23세를 벌써부터 20대 중반이라 칭하는가 하면, 25세를 굳이 ‘반 오십’이라 부르며 푸념을 하기도 한다. 단순 우스갯소리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한편 우리나라에서 한 살 한 살의 나이와 이에 따라 밟아나가야 하는 삶의 기준이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해당 나이에 사회적으로 으레 기대되는 것들을 수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곧잘 비정상이 되어버리며, 뒤쳐진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거대한 사회에 맞서는 개인은 많은 경우 패배한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수연’과 같은 지구 속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름의 소심한 반항(?)을 택했다. 스물다섯, 지금의 나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으로 여전히 캐릭터 인형과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고, 이런 나를 나는 공공연히 자칭 ‘키덜트’라고 부르곤 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에서다.

 

더불어 아직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달과 지구의 그 어디쯤에 있는 사람으로서 황과 같이 길을 잃어버린 이의 어깨를 흔들어주고, 각자 다른 삶의 무게와 자전속도를 일깨워 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달의 아이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 꽤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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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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