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PMA, CHAPTER THREE'에서 만난 나의 영감들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4.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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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여신들을 위해 Museion(뮤제이옹)이란 신전을 세웠다. 이 이름은 후대에 이르러 Museum(뮤지엄)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아있다. 신에게 봉헌하는 의도에서 멀어져 대중을 위한 장소가 되었지만, 뮤지엄은 여전히 수많은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좋아하는 미술관 중 '영감' 하면 떠오르는 곳이 하나 있다. 처음 발을 디뎠던 순간부터 나의 취향을 골라 담은 거대한 별천지 같았던 곳. 특히 이곳의 소장품전을 좋아하는데 마침 현대미술 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APMA)의 ≪APMA, CHAPTER THREE≫이다.




APMA, CHAPTER THREE



APMA에 처음 방문했던 것은 2018년 재개관을 앞두고 열렸던 PRE-OPENING EXHIBITION ≪APMA, THE BEGINNING≫이었다.


전시는 고미술부터 현대미술, 한국미술부터 세계미술까지 방대한 소장품을 소개했는데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콜라주 작품 같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작품들이 구분 없이 모여 있었지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감하고도 독특한 구성이었다. 시공간을 넘어 존재하는 예술이라는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바다엔 끊임없이 반짝이는 물결이 몰아쳤고 나는 저항 없이 빠져들었다.


APMA는 각 작품이 가지는 장악력을 활용하는 것에도 탁월하다. 작품이 자신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지하층으로 내려가며 소리로 먼저 만나는 전시의 분위기(주로 사운드가 있는 미디어 작품이 계단 사이에 배치되어 있었다.)부터 화장실을 가는 순간까지 적절하게 놓여있는 작품들은 물론이고 큰 규모의 작품에는 그만한 여지를 남겨준다.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각 작품에 부여된 공간과 다음 작품 사이와의 여백이 매력적이었다. 전시의 메인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미술관의 세심한 고려일 것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작품들이 내 취향이었다는 것이다. 취향이라는 말은 상당히 모호해서 언어로 정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미술관은 나와 주파수가 잘 맞았던 것 같다.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작품마다 짜릿함을 느꼈고 보여주는 방식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특정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보이는 것이나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있는 것을 보며 컬렉터의 취향을 엿볼 수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렇게 좋아하고 싶은 작품만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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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APMA, CHAPTER THREE≫는 세 번째 챕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정식 개관 후 세 번째로 열리는 소장품 특별전이다. 현대미술 소장품으로는 두 번째 전시인데 1960년대부터 2020년대 사이의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5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총 7관에 걸쳐 회화, 공예, 설치, 미디어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그중 많은 영감을 받았던 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인간의 욕망에서 태어난 기계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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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람, '울티마 머드폭스', 2002

 

 

'울티마 머드폭스는 2003년도 지하철 공사장에서 우연히 촬영된 이후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단단한 진흙 속을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물고기를 닮은 듯한 기이한 생명체가 작게 호흡하며 공기를 유영한다. 느릿느릿하지만 유려하게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이 생명체의 이름은 '울티마 머드폭스(학명 : Anmoropral Delphinus Delphis Uram)'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도심의 지하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만여 종 이상의 무기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인간이 만든 미세 로봇이 버려진 기계와 지상에 떠도는 정보를 조합해 스스로 진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울티마 머드폭스는 그중 하나이다.


최우람 작가는 정교한 기술을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기계생명체로 탄생시킨다. 그가 숨을 불어넣은 키네틱 조각은 인공적이지만 동시에 자연스럽다. 느긋해서 우아하기까지 한 움직임은 금속의 재료임에도 생명체 특유의 연약함을 느끼게 한다. 기계의 유기적인 동작은 그만큼 미학적이고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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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들을 존재할 법하게 만들기 위해 학명을 붙이고 학술적인 설명을 첨부한다. 통신 전파나 가로등의 전기, 인간의 욕망을 에너지로 섭취하고, 고층 건물에 서식한다는 등 기계생명체들에 대한 상상은 공상소설 같으면서도 구체적이다. 우리는 이 생명체들을 보며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들이 어딘가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롭지만 끔찍하기도 하다.


작가는 기계엔 언제나 인간의 욕망이 심어진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발달된 기술은 생명을 창조하는 신을 능가하려는 도전이다. 동시에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삶에 기생하여 살아가게 된 기계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반성이기도 할 것이다.


 

 

실패한 유토피아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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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크러쉬', 2000, 크리스털 구슬, 유리구슬, 니켈 크롬 철사

 

 

투명한 크리스털과 유리는 빛을 머금었다 뱉으며 화려하게 반짝인다. 반사된 그림자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체인 오브제는 엉기성기 얽힌 철사일 뿐이다. 이 모습은 화려한 빛의 산란에 둘러싸여 있기에 더욱 불안정해 보인다.


이불의 ‘크러쉬’는 사회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의 몸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는 작가의 작품세계의 기반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에 가해져 온 편견과 억압을 부수는 것은 이불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중요하게 다뤄졌다.


‘크러쉬’에는 아름답지만 기이하고, 절박하리만치 형체를 유지하려 애쓰는 불안정함이 공존하고 있다. 완전이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과 그렇지 못한 현실의 좌절과 불안은 같이 전시되고 있는 이불의 다른 작품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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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스턴바우 No. 29', 2010, 크리스털, 유리, 아크릴, 니켈 크롬 철사,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골조 ©APMA

 

 

나선형으로 하늘에 닿을 듯 굽이쳐 올라가는 구조의 이 작품은 '스턴바우 No. 29'이다. 독일의 건축가였던 브루노 타우트의 제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브루노 타우트가 활동했던 때의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과 독일제국의 붕괴,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겪으며 혼란한 시기였다. 그는 이 혼란을 건축을 통해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건축으로 공동체가 연대할 수 있다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며 알프스 지역에 크리스털과 유리(투명하고 깨끗한 물성을 갖는 재료들)로 된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불은 브루노 타우트의 제안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실패한 유토피아적 상상에 흥미를 느꼈다. 인류의 유토피아에는 언제나 실패할 것을 알아도 꿈을 꿔보려는 인간의 속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루노 타우트 역시 자신의 제안이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스턴바우는 별자리라는 뜻이면서, 유리 건물들이 햇빛을 반사시키는 모습을 뜻한다. 화려한 샹들리에 같은 모습은 너무도 장식적이기에 더욱 허무해 보이지만 박제된 유토피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인류가 많은 유토피아에 대해서 허무한 실패의 아름다움을 딛고 자랐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정체성, 구성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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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펜들턴, '나의 구성요소들', 2019, 마일라 필름에 실크스크린

 

 

거대한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흑백 실크스크린 작품은 아담 펜들턴의 블랙 다다(Black Dada) 작업인 '나의 구성요소들'이다.


블랙 다다란 아담 펜들턴의 작품의 중심이 되는 개념으로, 흑인 정체성을 중심으로 예술과 사회를 다루려는 시도들이다. 참고로 다다란 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사회와 예술에 대항하려 했던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이었다. 작가는 본인 스스로 블랙 다다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질문으로서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블랙이라는 단어에는 흑인을 넘어선 다양한 정체성 역시 포함될 수 있다.


총 45개의 패널의 나열로 이루어진 작품은 패널과 패널 사이의 여백을 통해 해석의 여지를 관객의 몫으로 남긴다. 이미지의 연속은 주관적인 편견과 해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맥락 없이 던져진 'BUT NOW I AM', 'BUT NOT THEM', 'HERE I AM NOW', 'BUT NOW WE'와 같은 텍스트들은 뒤에 이어질 문장을 상상하게 만든다. 중간중간 교차하는 아프리카 조각과 마스크의 이미지 등을 통해 느슨한 구체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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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듯 불규칙한 흑백의 리듬감은 이미지와 기하학적 도형, 텍스트라는 형태의 변주에서 온다. 작가는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미지나 책의 페이지를 삽입하며 콜라주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투명한 필름을 이용해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


반사되는 투명한 필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현실과 작품 사이의 교차점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관객들은 작품 앞에 섰을 때 얼핏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필름은 작품과 현실의 경계이자 우리를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 투영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아담 펜들턴은 '나의' 구성요소라고 작품을 정의했지만 이는 관객의 참여로 인해 '우리 모두'의 구성요소이자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 작품에서 어떤 것을 발견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어떤 것을 놓쳐왔을까? 아담 펜들턴이 전하고자 하는 블랙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

 

상상과 꿈, 현실을 담은 작품들은 예술가 개인의 관심사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인류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고 있고, 보지 못하고, 보려고 하지 않는 것들을 종종 작품을 통해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서 받은 영감으로 혹은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영감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며 확장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종종 옆을 둘러보는 일을 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미술관에 간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처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이 빌려준 조그만 시선의 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정도로도 쉽게 삶은 풍요로워진다.

 

아홉 명의 여신이 찾아와 영감을 불어넣고 간다는 것이 옛날 사람들의 귀여운 상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조심스럽게 그런 일을 꿈꾼다. 주파수가 딱 맞는 작품이 나에게 거대한 의미로 다가와 흔들어 놓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주의 깊게 바라볼 수 있기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또 영감의 조각들을 줍기 위해 미술관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나의 뮤즈를 위해 반짝이는 물결에 몸을 던진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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