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보다 먼저 태어난 당신 [문화전반]

글 입력 2021.04.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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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先生)님이라는 단어의 한자 풀이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다. ‘더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 곧 가르침의 원천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가치관이 담겨있는 단어다.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보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에게 구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는 매체 중에 가장 접근하기 쉽고, 가장 전달력 높은 매체가 사람이었을 때.

 

어른은 여전히 가르침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옛날과 같은 식은 아니다. 삶의 모든 것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구할 대상이던 어른은 이제 없다. 젊은이는 더 이상 어른에게 질문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을 찾는(search)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살며 축적해온 정보는 더 이상 그의 신체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터넷에 축적된다. 그가 배운 것뿐 아니라 ‘그’라는 사람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보화되어 인터넷에 축적된다.

 

잘만 찾으면 ‘내 주변 어떤 어른’의 정보가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의 정보가 내 것이 된다. 그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체는 날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쉬운 형태로 발전하며, 언제나, 모든 곳에서,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꼭 사람으로부터 배워야만 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같은 것도 사람보다 쉽게 가르쳐주는 매체가 늘어난다. 인터넷은 사람처럼 사귀지 않아도 가진 모든 것을 이용자에게 알려주며, 이용자와관계가 소원해진다고 사라지는 일도 없이 언제나 늘 부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가르쳐준다고 생색을 내는 법도 없고, 이용자 역시 인터넷에게 배움에 대한 감사를 표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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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과거에는 어른에게 물어야만 할 수 있던 것들을 이제는 묻지 않아도 할 수 있게 된다. 어른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은 점점 줄어들고, 어른에 대한 경외감도 따라 줄어든다. [젊은이 vs 어른]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 vs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람 vs 사람]에 가까워진다.

 

때로는 신체 건강한 노인이 연약한 어린이보다 약자의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는 법을 금세 익히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새로운 매체를 배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말이 어른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게 아예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백날 발전해봤자, 음식물을 씹어 넘기는 법이나 걷는 법, 용변을 처리하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애와 정을 주고받는 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어른에 한정된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것이지만, 특히나 한 사람의 어린 시절 동안 그의 곁에 있는, 그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아직 말을 하지 못할 때 나의 웃음에 따라 웃는 사람, 내가 울부짖을 때마다 내게 손 뻗어주는 사람의 역할 말이다.

 

먼저 태어난 이가 나중에 태어난 이를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의 역할이 사라졌다는 게 아니라, 그가 가진 역할의 일부가 인터넷과 매체에 넘어갔으며, 덕분에 젊은이와 어른의 관계가 예전과는 무언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상은 “요즘 한국의 세대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단지 내가 ‘요즘 한국 젊은이’ 중 한 명이기 때문일 뿐일까?” 고민하던 시기에, 어느 날 빨래를 하려다 들었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하늘거리는 옷을 노려보며 ‘과연 이 녀석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려도 온전한 상태로 나에게 되돌아올 수 있을까?’ 의심하던 내가, 엄마에게 전화해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그러다 ‘인터넷과 미디어 덕분에 어른에게 도움을 구해야만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많은 요소와 함께) 이 역시 세대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지 추측해 보았다. ‘어른에게 묻는 게 당연하던 젊은이’와 ‘가르침을 주는 게 당연하던 어른’의 관계성이 허물어져 가는 것, 그 허물어짐에 익숙한 젊은이와, 여전히 기존의 관계성에 익숙한 어른이 같이 살아가다 보니 이 모양이 된 걸까?

 

이러한 변화가 연령에 따른 위계를 허물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변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불평등을 부추기는 원인인지, 혹은 이를 세대 간 갈등의 원인으로 진단 내려도 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나는 확신이 없다. 수많은 어른과 인터넷에 둘러싸여 있어봤자, 답을 알 수 없는 게 여전히 너무 많다는 사실만 증명하고, 허무하게 이 글을 마친다.


 

[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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