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노트 Sigak] 10. 미술에 존재하는 무수한 '틈'에 대한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미술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하여
글 입력 2021.04.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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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되었든, 저는 그저 일부이자 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미술에 대해 글을 쓰거나 무엇인가를 말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었다. 고민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그는 늘 지니려는 태도에 대한 것을 대답한 것 같았다. 그다음에 이어진 말도 미술에 대한 이야기라기엔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에 관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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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연한 거예요. 저는 한 사람일 뿐이잖아요. 물론 더 많은 것을 살피며 더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 사람은 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걸 완벽하게 알 수 없는 한 사람, 모든 걸 느끼거나 감각하기에는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거예요. 이런 표현으로 저를 상정하는 건,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기억하려는 것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고민 끝에 현대미술은 어처구니없는 거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 결론은 언젠가 바뀔 수도 있겠죠. 한편으론 어떻게든 미술을 이해해 보려는 제 관점에서는 잘 떠올릴 수 없는 또 다른 결론이 그를 통해 나타난 것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표현하니 너무 느슨하고 건조한 사고방식처럼 보일까요. 하지만 거대한 것을 마주하기 전에 한 사람이라는 작은 단위에 집중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그들이 만나 비로소 일어나는 보다 넓은 범위의 일들을 살펴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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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취향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한데 모여 미술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던 적이 있었어요. 어쩌다 잭슨 폴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분이 그의 작품이 왜 감탄하면서 보아야 할 명작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왜 유명해졌는지 정말 궁금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시기까지 했데요. 그러곤 결국 몇몇 평론가들의 말에 힘입어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어요. 모두 맞는 내용이었어요. 자신의 모더니스트 회화 이론을 구축하던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잭슨 폴록의 작품이 모더니스트 회화를 대표하는 훌륭한 작품이라 말했고, 그 발언은 잭슨 폴록이 주목받는 데 큰 역할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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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 Number 1(Lavernder Mist), 1950

 

 

저 역시 개인적인 감상으론 잭슨 폴록을 위시한 미국의 모더니스트 그림들이 왠지 공허하게 느껴졌기에 그분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린버그의 이론으로 따진다면 인간의 일면이 담겼다기에는, 정말 그저 회화가 회화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한 사조라고 바라볼 수 있거든요. 깊이 들어가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까 잭슨 폴록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줄일게요.


물론 저와 그분의 생각과는 또 다른 관점도 있겠죠. 누군가는 그 헤아릴 수 없는 흩날림이 점철된 장면 앞에서 혹은 ‘액션 페인팅’이라 하여 캔버스 위에서 몸을 움직였을 작가를 상상하며 역동성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비단 개인적인 감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그의 그림에 접근할 때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들도 분명 있을 거고요.


다시 돌아와서, 제겐 그런 말이 오가던 순간이 꽤 인상 깊었어요. “명작이 명작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며 마치 반기(?)를 드는 듯한 생각의 발언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미술을 깊이 바라보다가 마주하게 된 미술이 지닌 ‘틈’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던 순간이라 느껴졌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이 ‘틈’들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것이야말로 미술을 말하며 잊어선 안되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어떻게 표현하고 설명하든지 간에 미술은 항상 그 이상의, 혹은 그것에는 포함되지 않는 예외로서의 틈을 지니고 또 드러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무리 견고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품을 수 없는 개개인의 감상의 틈이 존재하고, 한 사람의 자유로운 감상이라 하더라도 지식에 기반한 해석을 할 수 있는 틈이 존재하죠. 한 사람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다른 사람 내면에서는 또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고요. 이런저런 미술을 말하는 언어들이 저마다 어떤 덩어리로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한데 모이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서로 다르니까 결국 완전히 맞물리지 못해 늘 남겨지는 틈이 있을 거예요.


이 틈은 다양한 것이 될 수 있어요. 새로운 내용이나 해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될 수 있고, 작품이 시간을 거치며 지니게 될 가치를 생각하노라면 가능성이 될 수 있고, 작품 자체가 무수한 감상이 들어찰 수 있는 여백으로 존재할 수도 있죠. 그런 틈은 감상자 개개인이 오롯이 채울 수 있는 하나의 자리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는 “미술은 정말 무엇인가?”와 같은 꽤 거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어요. 이처럼 미술은 얼마든지 변주될 수 있는 틈을 지니고 존재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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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정말 멋진 것이라고 생각하던 적이 있어요. 미술사를 따라가노라면 만날 수 있는 내용들, 시대를 앞서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고, 잊힌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내는 이야기들이 정말 멋졌거든요. 그런데 충분히 알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충분히 말할 수 없다고까지 생각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더 많이 알고 공부해야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그런 마음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해하고 싶어서 미술사를 살피고 또 살폈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외로운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야말로 제가 스스로 미술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버리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요). 다만 오히려 찾아가고 알아갈수록 정말 미술은 무엇인가 싶어서 주기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오는 요즘이에요. 미술은 정말 뭘까, 이걸 마주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라고 하면서요. 어려운 질문이라 답답하긴 한데, 한편으론 이런 질문이 참 미술 다운 질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미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이 존재하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여전히 이 질문을 가지고 미술은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고요.


최근 그런 말을 들었어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미술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곧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미술도 결국 예술의 하나일 뿐이다”라는 말이었어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단번에 읽히지 않아 잘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도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서 일련의 시간 동안 그 문장을 계속 생각해 보았어요.


제가 생각하기론, 미술도 결국 세상의 일부라는 의미로 다가왔어요. 미술이 아무리 다채롭다 하더라도, 그 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함께하며 더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을지라도, 표현하자면 그것이 그렇다고 어떤 신 같은 존재가 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거죠. 가만 돌아보면 저도 가끔 착각하곤 했던 것 같아요. 미술은 모든 걸 포괄할 수 있는 언어라고, 나는 그것을 통해 보다 포괄적인 관점을 지니려 하는 관객이자 한 사람이라고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미술이 완전히 모든 걸 품어낸다고, 저는 모든 걸 그대로 바라보려 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거죠. 조금 복잡한 내용인데, 늘 미술이란 것을 따라오는 문장이 이 내용을 조금 더 쉽게 완결시키는 것 같아요. "미술에는 완전히 정해진 정답이란 것이 없다" 이 역시 미술이 지닌 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미술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존재가 이런 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존재를 쉽게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는 미술에선 이 틈이 조금 더 자유롭게 존재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 존재 방식도, 인식되는 방식도, 읽히고 이야기되는 방식까지 조금 더 많은 것들이요. 그런 틈이 있고, 그렇게 틈에 관한 것이 소통되기 때문에 누구나 저마다의 사유와 함께하며 자신만의 위치에서 미술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논리는 어떻게든 생겨날 수밖에 없는 틈을 모두 살피기보다는, 아직은 '보편적인 것'을 더 확고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미술은 오히려 완전히 고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언어죠. 그래서 더 많은 것이 언어로 선택될 수 있고, 주제로서 그 중심에 놓일 수 있고, 그 주변에 일어나는 말들 역시 정답으로 정해지지 않은 채 함께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살펴볼 때, 미술은 틈에 관한 보다 많은 것이 소통되는 현장인 것 같아요. 한 개인의 이야기부터 허투루 다룰 수 없는 시대의 거대한 문제까지요.


그래서 미술은 난해하기도 하죠. 다만 그런 정해질 수 없는 무수한 틈 위에, 서로 사이에 놓이는 어떤 거리에, 이해 불가능에 대한 불만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목소리를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여지를 두는 이유는 바로 그것의 가치를 함부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 명의 예술가가, 한 명의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 언어로 발화하기까지 축적해왔을 한 사람의 삶과 사유, 시행착오와 실험, 거기에 걸쳐진 무수한 노력과 시간까지. 결국 하나하나 감히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과정’이란 내용이 담겨있는 것이 작품이니까요. 더불어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모여 존재하는 것이 바로 미술이고요. 비단 미술뿐일까요. 사람의 목소리가 모이는 모든 곳이 그러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쩌면 그래서 미술은 한 뼘의 소통을 위해 일상적인 순간보다 더 긴, 그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예술일지도 몰라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답답한 일일 수도 있어요. 그 의미와 목적을 바로 정리해서 알려주면 좋은데 미술은 더 읽어보고 들여다보라고, 그러면서 당신의 생각을 하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오히려 여유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서 좋을 때가 있어요. 처음부터 모든 의미를 일일이 따지고 기억하는 것으로 사고방식이 고정되기 이전에, 아직은 막연한 작품 앞에서 무엇인가를 떠올려보고 자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요. 서로 다름을 마주하며 자신의 것을 조심스레 꺼내 보면서, 그 순간에 잠시 머물며 이해하고 감상하려는 과정이 그 여유에서 일어나고요. 그 어떠한 것도 단언할 수 없으나, 그럼으로써 오히려 더 가능성을 품게 되는 것이 미술, 예술이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서로에게 소통되는 것으로서 미술이 존재하는 방식은 그런 것 같아요. 미술이 꼭 예술가들의 완성된 작품들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실 그에 얽힌 더 많은 이야기와 소통으로 존재하는 게 미술이라 생각해요. 예술가, 작품, 전문가, 이론, 미술사, 관객 등등 모두가 그렇게 존재하며 미술이란 영역 안에서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직접 보는 작품이나 전시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서 미술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전문적인 영역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는 영역에서요. 엄격하기보다는 느슨한 것으로.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 글쎄요, 생각보다 별거 없는 것 같아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한다면 미술도 그저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는 어느 언어의 세계, 예술의 세계라는 것.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함께 존재하듯 다채로운 미술도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 사람과 미술은 아마 그렇게 함께하고 있을 거란 것. 그리고 미술을 그렇게 바라보려는 제 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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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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