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난 명화도 다시 보자 : 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

우리는 모두 속고 있었을지도!
글 입력 2021.03.2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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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배웠던 엄마. 책장 구석 깊은 곳에는 명화집 몇 권, 베란다 창고에는 오래된 유화 기름과 캔버스들.

 

어렸을 때, 두께는 사전만 하고 크기는 가족 앨범만 한 명화집을 바닥에 펼쳐 두고 자주 구경했었다. 정말 '읽는다' 혹은 '감상한다'가 아니라 '구경한다'가 더 어울릴 법한 향유 방식이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시녀들>의 마르가리타 공주를 보며 예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종종 혼자 즐겼던 자화상 맞추기 게임도 제법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접하는 순간, 보자마자 엄마 생각이 났다. 명화를 좋아하고, 책은 없어서 못 읽는 우리 엄마. '에디터 활동하는 딸내미 덕 좀 보라고 해야겠다'하는 생각에 향유하게 되었다. 엄마가 먼저 읽고, 뒤이어 내가 읽고. 그렇게 모녀가 이 책을 읽는 한 주 사이 집은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가끔 기분 좋은 버킷리스트를 세운다. 세계 여행을 많이 다녀봐야지. 유럽 여행도 가 봐야지. 유럽에 가면 유명한 미술관들을 가 봐야지. 가면 꼭 가이드 음성을 듣고 다녀야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미있는 상상이다.

 

사실 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관광지나 유적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보다는 근처의 맛있는 식당이나 디저트 카페 혹은 가만히 앉아 멍때리기 좋은 동네 공원이나 언덕이 더 중요한 편. 그런데 옛날부터 꼭 명성 높은 미술관에 가서 가이드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어린 시절 명화와 함께한 기억이 즐거웠고, 매체에서 들려 오는 명화의 뒷이야기들이 제법 흥미로웠나 보다. 어쨌든, 이 책은 내 버킷리스트를 더 확고하게 만들어 줬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장르, 화가, 설정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반전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장에 이렇게 많은 반전이라니! 한 편의 '진실 혹은 거짓'이 따로 없다. 작가는 명화 속에 숨겨진 반전을 내 귀에 속삭이고는 훌쩍 떠나 버린다.

 

한 작품에 대한 설명은 보통 1~2페이지뿐이다. 그 뒷배경이나 작가의 사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하루 5분 투자하기에 딱 좋은 정도. 더불어 그림 화질이 저하되거나 뭉개진 부분 없이 깔끔하고 큼지막하게 프린팅된 매끄러운 종이는 페이지를 경쾌하게 넘기게 해 주었다.

 

사실 요즘 특히나 사진 보정에 재미를 붙이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사진에 빗대어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 아무래도 미술사에 전문 배경지식이 없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겠지. 그래도 이 또한 내가 명화를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몇 가지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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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1503~1505년경, 패널에 유채

77X53cm,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파리)

 

 

다빈치는 이 작품에서 '스푸마토 기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스푸마토'란 연기와 같다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윤곽선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게 번지듯 표현하는 명암법.

 

가끔 유난히 부드러운 감성의 이미지들이 있다. 이전에는 모나리자의 미소에만 집중했었는데, 어쩌면 그 부드러움과 따뜻한 감성의 근원은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게 어우러지는 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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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부인의 초상> 폴 세잔

1890년, 캔버스에 유채

81X65cm, 오랑주리 미술관, 프랑스(파리)

 

 

일단 이 그림의 반전은, 세잔 부부는 완벽한 쇼윈도 부부였다는 사실. 부인의 그림을 많이 남긴 세잔을 떠올리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모델의 움직임에 극도로 예민했던 세잔을 감당할 수 있는 모델은 인내심 많은 세잔 부인뿐이었단다.

 

세잔은 사람들이 작품 주제에 주목하지 않기를 바랐다. '화가가 이 인물과 풍경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잔은 자신의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 부분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그림 외에도 대부분의 문화예술을 감상할 때 그 내면, 혹은 이면에 담긴 메시지를 읽고자 노력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형식에 집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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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러(가을의 세 그루 나무)> 클로드 모네

1891년, 캔버스에 유채

92X73cm, 필라델피아 미술관, 미국(필라델피아)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모네. 포플러 연작에 등장하는 포플러 나무 중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잎사귀 색도 등장한다고 한다.

 

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잎사귀의 색에 집중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인상파에는 유난히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어떤 시간에, 어떤 각도로, 어떤 거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피사체가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대한 그 순간 그대로 닮아보려 후보정을 시도하다 보면, 당시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순간의 감정까지 와르르 밀려오곤 한다.

 

*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명화 이야기. 단편적인 추측만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자신도 모르게 속고 있었다면, 지금이 바로 '진짜' 답을 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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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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