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정과 사랑을 통해 바라본 행복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03.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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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간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고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에게는 명예, 부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될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봉사와 같은 윤리적 가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답변들은 모두 개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행복’이라는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따르면 행복이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요, 인간 존재의 총체적 목표이자 끝이다. 즉,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사랑’과 ‘우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

 

이러한 가치관을 통해 “사랑은 육체의 반쪽을, 우정은 정신의 반쪽을 찾아가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사랑’과 ‘우정’을 정의하고자 한다. 이에 더하여, 인간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요구되는 이상적인 사랑과 우정의 형태에 대해 서술해 보고자 한다.

 

 

 

행복의 첫 번째 필수 조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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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랑은 육체의 반쪽을, 우정은 정신의 반쪽을 찾아가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바라본다면, ‘사랑’은 인간의 본성적 욕구를, ‘우정’은 이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복이라고 정의가 가능하다.

 

플라톤의 ‘향연’에 의하면 사랑은 인간의 본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인류에게는 ‘남녀 양성’이라는 세 번째 종류의 성이 있었다. 남녀 양성은 힘과 능력이 엄청나고, 야망이고 매우 컸기 때문에 번번이 신을 공격했다.

 

신은 인간을 존속시키면서도 남녀 양성의 힘을 약화시켜 더 이상 오만방자하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남녀 양성을 둘로 잘랐다. 본성이 둘로 나누어진 남녀 양성의 각 반쪽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결국 죽어버렸다.

 

이를 측은하게 여긴 신이 각 반쪽의 생식기를 몸의 앞 쪽으로 옮겨 주었고 각 반쪽은 종족보존과 하나가 되는 과정 속에서 최소한의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와 같이 본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만족감이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원초적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둘을 하나로 만들어 인간의 본성을 치유하며 행복을 충족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행복의 두 번째 필수 조건,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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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정’은 공동체 속에서의 교류를 통해 지적이고 이성적인 욕구를 충족하며 형성된다고 본다.

 

여기서 이성적인 욕구란 이익, 이성적 쾌락, 덕과같이 인간의 이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요구하게 되는 요소이다. 우정의 범위는 단순히 동성 간의 친구뿐만 아니라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관계, 군주와 신하와의 관계와 같이 공동체 속에서 형성될 수 있는 모든 관계를 포함한다.

 

이러한 관계 속의 교류를 통해서 형성되는 정신적, 이성적 쾌락은 일시적인 육체적 쾌락과는 달리 영구성을 갖기 때문에 완전한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완전한 행복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본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랑뿐만 아니라 이성적 쾌락을 통해 형성되는 우정이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통한 육체의 반쪽과 우정을 통한 정신이 반쪽이 함께 어우러져 완전하고 견고한 행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랑과 우정이 모두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상적인 사랑 또는 이상적인 우정의 형태를 완전히 분리하지 말고 연결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사랑이나 우정 중에 한 쪽만 충족된다면 궁극적 목표인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결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우정이란 우정을 통해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정이며 이상적인 사랑이란 우정을 통하여 신중하게 형성된 사랑이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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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우정과 사랑의 예시로는 한결같이 사이가 좋은 부부를 들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남녀의 만남을 보면 두 사람은 공동체 속에서 만나 교류하게 되며 서로의 이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호감을 갖게 된다.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된다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그 이후에 종족 번식과 육체적 쾌락과 같은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부부가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느껴진 사랑이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와 같이 정신적이고 이성적인 욕구를 충족한 우정에 가깝다. 이와 같이 우정이 먼저 형성되고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면 더욱 견고한 우정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반대로 사랑이 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자의 경우보다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만남은 성적 방종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행복이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생성된 우정에서 이어진 신중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상위에 있는 본성은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본성적 측면을 충족시키고 형성되는 사랑과 이성적 측면을 충족시키고 형성되는 우정이 모두 만족되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사랑과 우정은 사회적 교류를 통해 형성된 우정이 사랑으로 이루어져 더욱 견고한 우정을 쌓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순서로 우정과 사랑이 충족된다면 인류는 완전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사랑과 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개인적 노력이 요구된다.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단순히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사랑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우정을 통한 사랑을 권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본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성적 방종으로 이어지는 가벼운 사랑이 이뤄지지 않도록 성찰하고 공동체 속의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속적인 사회와 개인의 노력이 이루어 진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을 성취할 수 있으며 더욱 높은 질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세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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