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이 향할 곳 - 정말 먼 곳

글 입력 2021.03.1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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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예고편, 쉽게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표정을 담은 포스터의 주인공인 2021년 봄의 기대작, '정말 먼 곳'을 감상하고 온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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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정말 먼 곳'을 본 직후의 감상을 간략히 서술해 보자면, '불친절하지만 친절하다'였습니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그래서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요. 이 영화는 그러한 궁금증에서 그만둘 것이 아니라 궁금증이 인다면 꼭 보아야 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설명 없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묵묵히 전달하고, 관객이 결말과 함께 제목을 다시금 곱씹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정말 먼 곳'은 진우(강길우)와 현민(홍경)의 관계가 주변에 의해 변화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진우와 설(김시하), 중만(기주봉)의 가족이 함께 지내던 목장에 현민이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남들의 눈길을 피해 연인 관계를 이어온 진우와 현민의 관계뿐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시선 변화도 함께 담고 있어요.

 

양들과 뛰노는 설의 모습과 화목하게 식사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평화롭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현민이 찾아오고, 둘의 관계를 관객과 인물들이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점점 평화로운 일상에 위화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영화의 네 가지 키워드 'DEATH, PARADISE, VISIT, MISSING'이 영화의 핵심 전개 키워드이자 진우의 이곳 목장에서의 평화가 깨어지는 요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남들의 시선이 버거워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도망치듯 '정말 먼 곳'으로 온 진우도 이곳에서의 평화가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견디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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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키워드 'DEATH'는 도입부에서 보여준 '할멍양'의 죽음과 명순(최금순)의 죽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할멍양의 죽음 당시 설이 '할멍양이 죽었어, 할머니'라는 대사를 해요. 이후에 할멍양과 명순을 겹쳐 보이게 하는 장면들이 있어 저는 도입부의 할멍양의 죽음이 앞으로 진우의 목장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명순의 죽음을 암시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세 번째 키워드 'VISIT'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명순의 장례식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크게 바꾸는 장면이 됩니다. 진우의 쌍둥이 은영(이상희)이 진우와 현민의 관계를 마을 사람들 앞에서 폭로하기 때문이죠.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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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키워드 'PARADISE'는 현민의 방문 이후, 진우와 현민이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모습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보상받듯이 둘은 서로를 껴안고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죠.

 

하지만 후에 진우는 현민에게 '네가 왔을 때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어'라는 말을 합니다. 진우는 현민의 탓이 아님을 알면서도 곁에 있는 연인과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 원인이며 현민이 오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에게 들킬 일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었고, 둘의 연인 관계에 금이 가는 장면이었어요.

 

 

   

VI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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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키워드 'VISIT'은 현민의 방문과 은영의 방문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반부에 현민이 찾아오면서 생기는 변화와 설의 친엄마인 은영의 방문으로 인한 변화 모두 진우가 도망쳐서 누리던 '평화'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일어나는 변화였어요.

 

두 번의 방문은 결국 설을 데리고 가고자 했던 은영이 진우와 현민의 관계를 폭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진우의 목장에서의 평화는 깨지게 되었습니다.

 

 

 

MI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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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워드 'MISSING'은 다소 다양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명순의 실종과 설의 실종, 그리고 현민이 자취를 감춘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요. 나아가 더는 목장에 머물 수 없어진 진우의 처지도 그 의미에 담을 수 있습니다.

 

 

 

정말 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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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위 구절들은 영화에서 인용되었던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저는 이 구절들이 진우와 현민의 처지를, 더 나아가 이 영화의 중심 내용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어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듯한 진우의 목장생활에서 느껴지는 거리감과 인물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일상적인 모습이 '정말 먼 곳'을 바라보지만 '가까운 곳'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우는 현민과 함께 있을 때도 홀로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요. 껴안는 장면도 주로 현민이 뒤에서 안고, 진우는 앞을 바라보죠. 이러한 장면을 보면진우는 여전히 현민과의 관계를 들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정말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민이 찾아온 것과 예기치 못한 은영의 방문으로 조급해지고 불안해진 진우는 본인이 서 있는 '정말 가까운 곳'이 차츰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정말 먼 곳'만 계속 상상하고 있던 것이죠.

 

 

 

그들이 향할 곳


 

연인이 자취를 감추고 목장에서도 떠나게 된 진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떠나기 직전 은영, 설과 함께 새끼 양이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우와 은영이 목장을 떠나는 장면이 아닌, 힘겹게 태어난 새끼 양이 다리를 부들거리며 일어서면서 영화는 막을 내려요.

 

저는 이 결말이 인물들이 이제 막 일어선 새끼 양처럼 한 단계 성장하여 다시 일어서게 됨을 의미한다고 믿고 싶어요. 현민이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지, 영화가 막을 내린 후 진우가 다시 어딘가로 도망을 쳤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향할 어느 곳이든지 그들에게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기에 이곳의 시선을 이유로 '정말 먼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어 그들이 너무 먼 곳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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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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