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로 되돌아보는 이 시대의 '인간다움' [미술/전시]

전시 《멀고도 먼 Fathomless》
글 입력 2021.03.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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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공간 - 《멀고도 먼 Fathomless》


 

최근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모창 AI가 실제 가수와 대결을 펼쳤다. 가수의 발음이나 습관은 물론이고 호흡까지 모방한 AI의 노랫소리에 모든 출연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개발자는 이 기술을 고인이 된 가수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머지않아 AI가 음반을 발매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우리 삶의 한계를 점차 지워나가고 있다. 최근 아이를 원했지만 결혼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한 연예인은 정자은행과 인공수정을 통해 남편 없이 아들을 출산했다. 이런 특정인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온택트 시대에 완전히 적응했다. 수십 년 전이었다면 상상치도 못했을 것들이 일상이 되어 버린 오늘날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모든 것의 정답이 될 수 있을까? 모창 AI는 실제 가수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으며, 인공수정과 정자은행은 토론대에 늘상 소환되는 주제다. 또한 아무리 온라인 플랫폼이 우리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매개한다고 한들, 눈을 마주치고 손과 손을 맞잡는 대면 소통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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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온수공간에서 지난 1월 30일부터 3월 3일까지 개최된 전시 《멀고도 먼 Fathomless》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탈경계의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오류와 미인식의 현장을 ‘어둠’으로 상정하고, 그곳을 새로운 가능성의 장소로 바라본다.
 

“인류는 더 많은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몸과 정신의 일부는 언제든 여기를 떠나 탈물리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무형의 경계를 뛰어넘은 몸은 완전히 소멸되거나 새로운 지대에 안착하지 못한다.”

“이 전시는 신체가 어둠의 알레고리를 감각하는 비선형적인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전시 《멀고도 먼 Fathomless》은 어둠을 일종의 동시대적 오류나 미인식, 예기치 않은 충돌의 징후로서 간주하고 이로부터 야기되는 시차와 이탈, 만약의 사건과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보고자 한다.”

- 박지형, 《멀고도 먼 Fathomless》 서문 中

  

이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지원을 통해 제작되었다. 박지형 큐레이터가 기획하였으며 구나, 이민지, 이소의, 차미혜 등 네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실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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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나, 낮잠 그릇 Nap Plate, 2021, 혼합매체, 가변크기
 
 
전시실의 1층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물이 고여 반짝거리는 거대한 접시 하나다. 그 옆에는 과일 껍질이 흩어진 작은 접시가 놓여 있는데, 여기서 의아스러운 것은 두 접시가 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끈은 2층의 계단으로 이어져 궁금증을 자아낸다. 끈의 행방을 뒤쫓다 보면 핏줄 선 흰 종아리 모양의 조각과 과일 껍질이 담긴 접시를 또 한 번 마주하게 된다. 이 사물들은 구나 작가의 <낮잠 그릇>(2021)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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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구나, 화이트화이트블루스본 WhiteWhiteBluesBone, 2021, 캔버스에 유채, 210*180cm
/ 오렌지살구햇빛주름 OrangeApricotSunlightWrinkle, 2021, 캔버스에 유채, 170*170cm

 

 
그 맞은편에는 두 점의 대형 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한눈에는 어떤 형상인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멀찍이 서서 가만히 바라보면 주름 가득한 사람의 얼굴임을 알 수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데, 전시 설명문에 따르면 이 소리는 '주름의 틈에서 새어 나온 울음' 소리다.
 
"빛의 눈을 마주한 얼굴 화면은
옅은 주름들이 패여 어둠 사이로 빛이 흐른다.
낮잠을 입을 시간이다.
낮잠은 까마득한 하얀 빛으로 눈을 멀게 한다."

 

이 문장은 <낮잠 그릇>과 함께 제공된 글의 일부로, 작품을 구성하는 사물과 그 주제 사이의 관계는 달리 명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몽롱함이 다양한 심상을 남긴다. 이 전시가 탈물리적 공간에서 맞닥뜨리는 오류를 어둠에 빗댄다는 점에서, 작품의 주제인 '낮잠'을 '선택적 어둠'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이 청해야 하는 밤잠은 무력한 어둠을 부르지만,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낮잠은 희망적인 어둠을 부른다. 이 전시에서 어둠이란 새로운 감각을 가능케 하는 촉진제이기에, 낮잠 역시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는 시간으로 읽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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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의, 탄생석 Birthstone, 2021,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3'17"
 
 
다시 1층으로 돌아와 작은 방에 들어서면 이소의 작가의 <탄생석>(2021)을 마주하게 된다. 영상의 시작은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할머니의 사진첩이다. 작가는 사진첩에 붙어 있는 하트 모양의 스티커가 별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스티커들은 작품 안에서 천체를 이루는 별로 재탄생되고, 관람자는 그 우주를 탐험하게 된다. 점점 거대해지는 별들은 빠른 속도로 공전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
 
작가가 만든 우주는 할머니가 사진첩을 가지고 있었던 오래전의 언젠가, 그리고 작가의 현재를 낭만적으로 연결한다. 끊임없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그곳은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하기에, 결코 만날 수 없을 과거와 현재라는 양극단마저도 맞닿게 한다. 이 상상은 더없이 문학적이고, 그래서 더러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과학기술을 동원해도 불가능한 만남을 예술적 실천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그려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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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의, 낭독하는 이름, Recite the Name, 2019, 3채널 비디오, 사운드, 8'48"
 
 
<탄생석>에서 나타난 ‘만남’이라는 소재는 2층에 전시된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낭독하는 이름>(2019)에서 다시 소환된다. 세로형 모니터 세 대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친 인물들의 이야기를 낭독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이때 눈길을 끄는 것은 공간과 캐릭터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퍼포머는 넷이지만 그들이 모습을 비출 수 있는 프레임은 셋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각 퍼포머는 각각의 이야기가 끝나면 화면으로부터 빠져나가거나 다른 화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때 그들은 매 이야기마다 다른 캐릭터를 맡아 연기한다.
 
만일 이 작품의 목적이 그저 내러티브를 생생히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퍼포머들은 세 개의 분절된 화면이 아닌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시선을 주고받으며 연기했을 것이다. 각자의 배역에 맞는 의상을 입었을 것이며, 대본을 읽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퍼포머들은 특징 없는 옷을 입고 정자세로 서서 딱딱한 어투로 대본을 읽을 뿐이다. 이들의 모습은 흑백 화면으로 한 번 더 여과되어 더욱 밋밋하다.
 
이는 얼핏 형식적인, 혹은 성의 없는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비현실적이지만 자유로운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그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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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미혜, 공중 조각 Still Moving Fragments, 2021, 3채널 비디오 설치, 무음, 8'40", 12'30", 10'(각)
 
 
이렇게 이소의 작가가 감상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면, 차미혜 작가는 우리를 직접 그 현장으로 이끈다. 암흑으로 가득한 1층의 전시실 한 칸에는 각기 다른 높이로 걸린 스크린에서 세 편의 무빙 이미지가 상영된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 신체, 회색조의 풍경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미 모를 질문들이 한데 뒤섞이고 뭉개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은 방에서는 여러 대의 스피커를 통해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 동시에 속살댄다. 문장 같기도, 단어 같기도 한 소리들은 툭툭 끊어져 분절되지만 이와 동시에 다중적으로 겹쳐진다.
 
그리고 어둠과 혼란 속에서 감상자는 생각의 갈피를 잃게 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일상에서는 마주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경험한다. 다음을 예상할 수 없는 낯선 상황에 놓인 채 생소한 사고의 흐름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아주 짧은 순간의 경험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은 전시의 주제인 ‘신체가 어둠을 감각하는 방식’과 가장 강력히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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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지, 터널링 Tunneling, 2021,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18'40"
 
 
반면 3층에 전시된 이민지 작가의 <터널링>(2021)은 실재하는 대상을 온전히 표상할 수 없는 디지털 환경의 한계에 주목한다. 무언가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했던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데이터의 실체와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화자는 K라는 인물이 거쳐간 장소를 차례차례 추적하려 한다. 그러나 K가 보냈던 링크는 이미 소실된 탓에, 화자는 구글 어스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가 지나갔던 곳을 추정해 탐색한다. 하지만 실제 장소가 화면상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공백과 왜곡이 발생한 나머지, 탐사는 수월하지 않다. 실물을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끔 개발된 위성기술이 도리어 사물의 본질을 흐리는 상황이다.
 
*
 
이렇게 전시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전시의 주제는 '과학기술의 맹점'이 아니다. 기술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고 있지만 이는 '어둠'에 주목하고 그 잠재력을 실험하기 위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남게 되는 결론은 신체의 감각과 그에 수반되는 인간다운 감성은 우리 존재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신체적인 접촉 즉 인간적인 만남이 더없이 그리워지는 요즘, 그 어떤 직관적인 메시지보다도 간절히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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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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