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류의 역사에 깃든 사과 -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공연]

글 입력 2021.02.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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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가 베어먹은 최초의 사과로부터 시작해 2021년 내 손에 들려있는 애플의 휴대폰까지, 인류 역사에 사과는 늘 빼먹을 수 없는 중요 요소 중 하나였다. 최초의 인류가 사과를 베어 묾으로써 얻게 되는 징벌로 우리는 차츰 상대성에 기인해 서로를 멀리하고 '다름'이라는 장벽 앞에 가로막혀 '다름'을 '틀림'으로 인지하게 되는 오류로 접어들어, 결국 눈앞의 전자기기에 내 모든 걸 맡기게 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YJK댄스프로젝트의 신작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인류의 발자취에 빼먹을 수 없는 사과에 초점을 맞추어 사과로 시작해 지금까지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몸짓으로 표현한다. 뱀의 유혹으로 사과를 베어 무는 아담과 이브,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스마트폰을 폰에 붙든 채 무심코 서로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현대인, 스마트폰을 빼앗기자 나사 빠진 부품마냥 힘을 잃은 사람들.

 

그저 금지된 과일로 분류된 사과를 베어 물었던 인류 최초의 과오를 토대로, 아니러니하게도 그들의 후예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린 이제는 오히려 사과의 힘에 짓눌려 이리저리 이끌려다니는 것 같다. 생각의 흐름으로 문명을 개척해가는 게 아니라, 문명이 우리 생각의 흐름을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된 시놉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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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ArkoCreate / ⓒSang Hoon Ok

 

 

극은 사과에 얽힌 인류사를 짚어보며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거대한 나무 아래로 아담과 이브는 몸을 얽히고설키다 죄악의 사과를 베어 물어 그 대가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그 후예인 우리는 과학을 발전시키며 점차 신에게서 멀어졌다. 인간 수명을 연장해주거나 현실적인 삶을 나아지게 하지 못하는 신의 존재에 무기력해진 인간들은 점차 눈에 보이고 증명되는 것들만 믿게 되어 알고리즘의 지배가 곧 생각의 지배까지 이어지는 인터넷 세상으로까지의 도래를 초래했고, 직접적인 유희과 자극 없이 이뤄지는 사색에 흥미를 잃어 대화와 소통의 단절에 익숙한 현대 세태를 과감히 꼬집는다.

 

결국 인간은 세상으로 비유되는 흰 천에 자신들을 스스로 가두며 서로를 옭아매고, 그들은 가로막힌 세계가 자신들 세계의 전부인 양 받아들이며 흰 천으로 자신들의 몸을 두른다. 흰 천이 자신에 몸에 꼭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에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 세계에 안일함을 느끼게 되는 무뎌진 인간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느껴졌다.

 

이어서 음산한 분위기 아래서 시작되는 세 무용수의 움직임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최초의 인류가 사과를 삼켜버린 것을 조롱하듯 머리카락을 파고든 여섯 개의 손바닥은 날카로운 이빨처럼 표현되어 끊임없이 손바닥을 맞물렸고, 그들의 선택이 인류사를 어떻게 바뀌게 할 지 예고하는 것과도 같아 보였다.

 

뒤이어 그 결과를 보여준다. 인간이 축적한 지식과 과학 문명의 발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된 AI는 어떤 질문에든 척척 대답할 수 있지만, 그 대답의 깊이를 파악하자면 이는 실로 실망스럽다.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계산된 대답만을 뱉어낼 수 있으며, 고차원의 사색을 필요로 하는 질문에는 '부족한 질문'이라며 대화 자체를 종결시켜버리는 기만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비단 AI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디어로 세상을 인식하고,  미디어로 여과된 짤막한 콘텐츠를 전체로 파악하며, 활자보다 시청각적 자극에 발달하여 그에 맞먹는 자극이 아니면 쉽게 대상을 외면해버리는 현재.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알고리즘의 리드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현대인에게 안타까움을 표하다, 결국 스마트폰 없이도 행복해질 수 있는 과감한 용기를 갖고 서로의 눈과 눈을 맞추며 진정한 소통을 도전한다. 질문, 대화, 눈 맞춤. 이 극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들은 이 세 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객관적인, 이성적인, 합리적인 정보만을 쫓다 자칫 촉촉한 감성과 주관을 잃기 쉬운 시대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먼저 나서주며, 서로의 눈을 보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우리 표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이야기의 끝, 한 여성 무용수가 등장한다. 공연장을 메우는 우렁찬 목소리가 어린아이를 연상시킨다. 동그란 사과를 베어문 아이는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점차 성장해 어엿한 성인의 모습을, 곧이어 노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사과를 꼭 붙들고 장내를 휘젓던 노인은 객석에 앉은 새로운 인류를 발견한다. 그리고 넌지시 사과를 건넨다. 도로 가져가기도 한다. 우리 눈에 비친 사과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왜 그렇게 사과를 애지중지하는지, 이 사과를 베어뭄으로써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분명 한 시간 동안 지켜봤음에도 우리는 그 사과를, 그 사과를 움켜쥔 노인을 관심 범주에 집어넣는다. 노인은 선택을 강요하진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그랬듯이, 모두의 손에 들려있던 스마트폰이 그랬듯이, 다시 또 사과를 있는 힘껏 베어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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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실어 쭉쭉 뻗어 나가는 무용수들의 손짓, 근육 하나까지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기민한 움직임, 그에 따라 무게를 달리하는 음악과 조명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합을 맞추는 광경을 보자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긴장된 텐션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 극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활용된 아기자기한 손 그림은 긴장된 공연장의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했으며, 관객이 저절로 숨을 끊어 쉴 수 있도록 포인트를 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유자재로 분위기를 바꾸며 관객의 태도를 시시각각 변화시킬 수 있는 노련함을 보여준 팀이었다.

 

이 공연에서 던진 질문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질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필수 불가결하기에 일부러 회피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눈앞의 것을 쫓기 바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는 우리의 질문과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핵심만 뽑아 무용으로 녹여냈다. 이 극을 이루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랬던 것처럼, 이 공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떤 허용 범위도 두지 않는다. 자유롭게 생각에 접속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그 질문에 정리를 할 수 있도록 매개를 자처할 뿐이다. 이 공연과 이 글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그 정도의 접속만 이뤄낸다면 더 큰 차원의 가치 공유는 서서히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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