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키이 칸나가 그려낸 여름 바다의 사랑 - 해변의 에트랑제

글 입력 2021.02.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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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의 서브 컬처 장르로 여겨지던 BL(Boy's Love)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퀴어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 유연해졌음은 물론 각종 드라마에서 브로맨스 코드는 젊은 층의 인기를 끄는 설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 굉장히 장르적 특성이 강한 분야이나 그렇다고 헤테로 기반의 플롯과 엄청난 차이는 없다. 단지 로맨스의 주체가 동성이라는 것 뿐,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고 관계가 깊어지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 BL은 남성 퀴어물과는 약간 다르게 여겨진다. 그저 일컫는 이름이 다른 것일 수도 있지만 콘텐츠가 제작되는 방식과 소비되는 방식은 문명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퀴어 영화나 드라마 등은 현실에 기반을 둔 경향이 강하며 콘텐츠 소비층 역시 폭넓기에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는다. 여기서 현실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은 실제 배우가 등장한다는 의미보다는, 사회적 배경과 사람 간 관계를 현실적으로 묘사해 동성애자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담아낸다는 것에 가깝다. 현실이 이야기로 발화한다.

 

반면 BL은 독자들에게 소비되기 위해 만들어진 잘 짜인 이야기에 가깝다. 특정 팬층이 소비하고 덕질하기 위해 강한 장르적 특성이 형성된다. 현대물이라고 하더라도 허구의 상상이 더해져 판타지 같은 특성을 내포하며, 한결 캐주얼한 만화나 소설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작가의 전개 방식에 따라 위에서 설명한 BL과 남성 퀴어물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는 콘텐츠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장르를 완전히 같은 것으로 묶기 어려운 이유는, 게이나 레즈비언인 커플분들을 BL, GL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는 자칫 무례한 말이 될 수 있다.

 

서두가 길었다. 이런 장르적 특성을 구구절절 설명한 이유는 위와 같은 배경에 의해 BL에서 다루는 이야기와 표현 방식이 무척 다채롭다는 점을 짚기 위해서다. 오랜 기간 덕질로 단련된 독자층의 입맛을 사로잡고자 스토리와 캐릭터 구축은 물론 작화, 연출 등에 다방면으로 신경 써 퀄리티를 높여 왔다. 때로는 소비되기 위한 지나친 자극적 설정으로 비판받을 때도 있지만 이마저도 이 장르의 한 경향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해변의 에트랑제>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애니메이션으로, 장르 특성에도 불구하고 부담 없이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다. 일반 영화나 디즈니 류의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고 간다면 스토리 전개에 당황할 수 있으나 원작 만화책에 기반한 것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안할 만하며,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듯한 감각적인 작화와 연출력이 인상적이다.

 

 

 

키이 칸나, 순수의 세계와 현실을 넘나드는 감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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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여린, 가볍고 산뜻한 느낌을 주는 선을 그려내면서도 모든 구도가 안정적인 <해변의 에트랑제> 포스터. 어쩐지 작화가 시선 끝에 친숙하게 감겨들더랬다. 알고 보니 <해변의 에트랑제>는 키이 칸나 작가가 작업한 동명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두고 있었다.

 

키이 칸나 작가의 선화와 컬러 구성,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은 장르 내에서도 독보적이다. 이전에 읽어봤던 작가의 다른 작품 <눈 밑의 퀄리아>에서 확실히 느꼈다. 캐릭터의 이미지 역시 부드럽고 산뜻하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귀여운 느낌이지만 깔끔한 인체 표현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작화의 섬세한 느낌을 이어가듯 스토리와 인물 간 관계성 역시 잔잔하게 흘러가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동화를 연상시키는 감성적인 연출과는 반대로 캐릭터 설정과 사건 전개 방식은 때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 예상과 달리 마냥 순진무구하고 로맨틱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눈 밑의 퀄리아>에 등장하는 주인공 우미는 마음의 결핍을 몸으로 해결하기 위해 일회적인 관계를 이어오던 사람이었고, 우미와 이어지게 되는 아키오는 초반에 혐관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영화 <해변의 에트랑제> 역시 이 순수의 세계와 현실을 넘나드는 스토리텔링이 부각된다. 소설 지망생이었던 슌과 가족을 잃고 쓸쓸하게 지내던 미오는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사랑을 싹틔운다. 먼저 다가간 것은 슌이었으나 관계를 완성한 것은 미오였다. 슌은 자신의 성 지향성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멀어진 상태였기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조십스럽다. 하지만 미오는 저돌적으로 슌에게 다가가 그의 마음을 연다. 하지만 잔잔하고 순수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으며, 숨겨진 가족사, 옛 연인 등으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순진무구하게 보이던 두 사람이 성적으로도 저돌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사고였지만) 미오가 슌의 전 여자친구와 입 맞추는 등 작가 특유의 미묘한 표현법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작가는 살짝 언모럴한 설정을 표현할 뿐 아니라 대사 처리 방식이나 인물의 말투 역시 건조하고 직설적으로 이끌어가는 편인데, 반대로 섬세한 작화 때문인지 인물 간 관계와 감정선은 상당히 부드럽고 순수하게 전개되는 느낌이라 독특한 괴리감을 빚는다. 바로 이 점이 키이 칸나 작가만의 매력이다. 사실 좀 취향타는 전개 방식임에는 분명하다.

 



장단이 분명한 다양한 주제, 속도감 있는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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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변의 에트랑제>는 별도의 원작 만화책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봐야 관람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영화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영화와 다른 단조롭고 빠른 전개로 인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두 주인공의 만남과 관계 형성, 각 인물의 개인사까지 다루기에는 굉장히 빠듯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다루며 빠른 속도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것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 각 주제가 지나치게 플랫하게 전개되는 경향이 있었다.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다보니 관람객이 두 인물이 나누는 감정선과 관계를 이해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흘러가버리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감정이 왜 싹텄는지 알 길이 없이 갑자기 운명적인 사랑처럼 피어난다. 미약한 원인에 갑작스러운 결과가 나열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만화책의 컷을 하나씩 붙여나가듯 진행돼 서사가 없이 장면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만화책에서의 호흡과 애니메이션에서의 호흡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는 원작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애니화 했을 때의 장점을 살리는 것에는 다소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만화책의 전체 내용을 다루기보다 몇 장면만을 심화해서 연출하거나, 플롯 전체에 산발적으로 배치된 과거 회상 씬을 적절히 모아 정리했다면 더욱 와 닿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와 작화를 전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장점이 분명한 영화다. 두 사람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일상, 내면의 성장을 고루 다루어 성장 드라마의 면모를 갖췄다. 모든 상황을 깊이 짚어주지는 못하지만 다채로운 방향으로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전개는 관람객을 지루할 틈 없이 결말부로 이끈다. 무엇보다 스토리에서 책임지지 못한 개연성은 아름다운 영상이, 특히 슌과 미오의 얼굴이 이어 받는다. 얼굴이 개연성이다.

 

 

 

마음까지 치유하는 감성적인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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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애니메이션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해변의 에트랑제>의 가장 큰 강점은 비주얼에 있다. 키이 칸나 작가 특유의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작화와 컬러 활용법, 그리고 이를 영상으로 밀도 높게 구현해 구도와 모션의 맛을 살린 영상까지 관람하는 내내 눈앞이 반짝거린다. <암살교실>, <켄간 아슈라> 등을 맡은 스튜디오 히바리가 애니메이션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키이 칸나 작가 역시 원래 애니메이터 출신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탄탄한 제작진의 실력이 뒷받침돼 퀄리티 높은 영상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키이 칸나 작가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만화책으로 봤을 때 그 매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한 번 보면 손이 갈 수밖에 없는 감각적인 표지 작업.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수채화풍의 잔잔한 풍경과, 그 앞으로 맑고 옅은 물을 머금은 듯 자연스럽지만 은은한 빛으로 반짝이는 인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상에서도 그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오키나와 인근의 외딴 섬이라는 배경 특성상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과 바다, 햇빛을 받아 잔잔하게 반짝거리는 꽃과 나무가 극도로 아름답게 묘사된다. 이는 오직 애니메이션으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

 

또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에 슌과 미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부여한 점이 각 장면을 풍부하게 만든다. 어슴푸레했다가 밝았다가,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바다의 풍경으로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도록 한 시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이 밖에 심장을 부여잡게 만드는 서비스 컷이 곳곳에 들어가 있었던 점도 좋다. 집에 머무르는 고양이 커플 역시 귀엽게 꽁냥거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거나 과거 회상에 등장하는 어린 미오의 클로즈업 컷과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부각해 애니메이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운 표현력을 풍부하게 드러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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