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글 입력 2021.02.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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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스페리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리아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를 원작으로 둔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고어함으로 흔히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로 유명하다. 두 편의 <서스페리아>는 약 40년에 달하는 시간 차를 두고 제작되었는데, 두 영화의 확실한 공통점은 영상미와 음악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서스페리아>는 그 40년의 시간을 통해 서브텍스트를 곁들이게 된다. 루카 구아다니노가 시대적인 부름에, ‘여성 서사’라는 화두에 응하고 복무하는 감독은 아니다. 그러나 굉장히 흥미로운 방식으로 여성-역사-오컬트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도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어릴 적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를 보고 자신이 <서스페리아>를 만드는 것을 상상했다고 한다. 루카의 <서스페리아>는 공포 그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하는데. 그 도약이 이 영화를 역사 영화로도 읽을 수 있게 한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역사영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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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역사, 비선형성의 전유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에 비해 부각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이다. 심지어는 정치적이다. 68혁명 이후의 시대적 상황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영화의 말미까지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68혁명은 독일에서 나치 시대를 살았던 세대를 향한 반감과 저항이 두드러지게 된다. 영화는 1977년의 외침으로 시작한다. ‘마인호프를 석방하라.’ 파시즘의 역사에 대한 단죄없이 이행되는 역사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언급되는 마인호프는 울리케 마인호프이다. 그가 안드레아스 바더와 결성했던 ‘바더 마인호프’ 단체는 루프트한자 비행기 납치, 독일 연방검찰총장과 경제인연합회장 암살 등 ‘테러’로 유럽을 흔들었다. 초반부에 정보를 심어두면서 이 영화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상징을 따오고 싶어한단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서스페리아>가 보여주고 있는 시대적인 정서는 나치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서독 정부 및 사회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자신과 밀접한 사람이자 자신의 뿌리인 부모 세대에 대한 경멸이기도 하다. 나치에 부역했던 가해자인 기성세대에 대한 폭발적인 저항인 68혁명에 대해 혹자는 ‘아버지를 살해한 혁명’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뻔하고 흔하고 재미없는 역사적 비유의 도식이다. 아버지를 살해하는 주체는 자연스레 아들이라는 젊은 남성으로 상정될테다. <서스페리아>가 재밌어지는 지점은 이 도식, 계보와 세대를 논하는 도식에서 적극적으로 제외되고 삭제된 이들에게 초자연적 힘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역사의 언어로 담지 않았던 설화들과 역사의 초점을 빗겨간 존재인 마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영화이다.

 

영화는 어렵지 않다. 세대 갈등의 해결이라고 재미없게 설명할 수도 있을 내용이다. 앞선 세대를 징벌하러 온 존재, 혁명으로 안온한 체제를 부수러 온 존재는 젊은 애송이의 얼굴로 찾아왔다. 마르코스를 나치에 비유하고 그 체제 하에서 안락하게 삶을 꾸려올 수 있었던 무용단의 선생들을 그 부역자로 비유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도식에 집중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마르코스 무용단 내부에 한해서는 수지가 기성의 존재들을 처단한다. 그러나 젊은/늙은 세대 간의 이분법은 애초에 완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 영화는 신화적 역사의 비선형성으로 이를 드러낸다. “I am she.” 수지는 자신이 곧 서스피로룸이라 밝힌다. 마르코스는 서스피로룸에게 기름 부움을 받음으로써 자격을 얻었는데,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새롭게 침투해온 수지가 서스피로룸이란 것은 우리가 역사서술을 통해 익혀온 서사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전개이다. 순차적이고 단선적인 서사, 세대를 거치며 하강해오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다. 이것은 비논리이며 환상이고 오컬트적이다. 마녀의 이야기는 ‘역사’의 대립항과 같았다. 역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다는 것인데, <서스페리아>는 이 지점을 전복한다. 이민자 출신 마녀가 비선형적 시간의 신화를 이끌어내며 독일 역사의 분수령인 68혁명 정신을 상징한다는 것이 가지는 강력한 메세지가 이 영화의 주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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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기억, 서스피로룸의 해결

 

이 영화가 역사 영화로 이야기될 지점은 죄책감과 기억에 관한 지점이다. 클렘페러와 마담 블랑 모두가 죄책감을 동력으로 전후의 시대를 살아내는 인물이다. 그러나 둘 다 적극적 저항 주체로 나서지 않는다. 특히 클렘페러 박사는 멜랑콜리의 단계를 살아내며 별장을 찾아가고 일상 곳곳에서 앙케를 떠올린다. 시대의 감각이 죄책감을 남겼을 때, 그 개인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속죄할 수 있을까?

 

수지는 영화의 말미에 박사를 찾아가 말한다. “Wir brauchen Schulden.(우리는 죄책감이 필요해)” 수지는 희생의 기억들을 호명한다. 앙케, 페트리샤, 사라, 수지의 기억들과 언급되지 못한 많은 여자들의 기억을 박사 개인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거대한 폭력을 기억하는 이들을 소모시키지 않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보다 크게 전유하고자 하는 마더 서스피로룸의 방식이다. 이는 역사가들의 고민들과 일치한다. 역사와 기억의 매듭은 거대한 역사가 기억을 침식해들어가지 않는 범위로 맺어져야 한다. 수지가 죄책감을 확장시키며 개인의 무력과 멜랑콜리의 무게를 덜고 공동체 공통의 역사로, 햇살로 녹여내리고자 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두 명의 어머니, 대안적 여성 설화로 모성을 분해하기

 

엔딩에서 마르코스는 수지에게 가짜 어머니를 잊으라고 말한다. 자신이 수지에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명의 어머니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짜 어머니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 두 명의 어머니는 수지에게 전통적 모성애를 베풀지 않는다. 악마의 씨앗을 타고났다는 수지를 낳은 오하이오의 어머니도, 수지의 생명력의 원천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는 마르코스도. 어머니라는 이름에 붙는 많은 수사들과는 전혀 다르다. 이는 앞서 언급되는 ‘아버지를 살해한 혁명’이라는 어구가 다시금 떠오른다.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은 비극적 상징이자 역사적 테제로 오래 회자된다. <서스페리아>에서 딸은 버려짐으로써 어머니를 버린다. 딸은 어머니를 단죄한다. 수지는 마르코스의 딸이자 마르코스의 어머니인 서스피로룸이다. 단순한 살해로 혁명하지 않고 비선형적인 엉킴 그 자체가 단죄의 동력이 되고 권위가 된다.

 

여성 창조신의 신화나 무서운 모성에 관한 설화는 버전을 달리해서 여럿 존재한다. 강력한 힘의 원천이 어머니라는 호명을 통해 등장하고 실제로 무언가를 낳고 생명을 줌으로써 힘을 증명한다. 그러나 <서스페리아>는 어머니라는 호명에 동조할 뿐 그 힘을 어머니됨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막강한 어머니는 막강한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자리는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영화 초반 오하이오의 수지를 비추며 영화는 선언해둔다. 그러나 늘 보던 전통적 모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나지막히 단서를 붙인다. 따라서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로 기능하는 강력한 여성신이 등장하는 신화를 변주하여 대안적인 여성 설화를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설화의 핵심을 건들어 신비로운 오컬트 장르 영화로서 충실히 기능하는 동시에 대안적인 여성신화를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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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서스페리아는 욕망하는 여성, 비이성으로 상정되었던 여성 등을 핵심적으로 다루면서 역사적인 테마를 흥미롭게 장르 내부로 녹여냈다. 장르적인 쾌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지만 탄탄한 서브 텍스트와 상징의 활용이 겹쳐진 뒤 폭발하는 해체적 쾌감은 <서스페리아>의 분명한 강점 중 하나이다.

 

 

[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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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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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다린
    • 와..글이 정말 재밌어서 몰입해서 읽었네요.
      서스페리아를 꼭 봐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었어요.
      정성스런 글 잘 읽었습니 다.
      역사, 여성의 관점에서 해석하신 부분 인상깊었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역사와 기억의 매듭은 거대한 역사가 기억을 침식해들어가지 않는 범위로 맺어져야 한다.”

      “그러나 <서스페리아>는 어머니라는 호명에 동조할 뿐 그 힘을 어머니됨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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