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자매》 사과를 받고 싶은 K-딸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1.02.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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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제와 유교적 가족주의가 오랜 역사를 거쳐 지배해 온 한국 사회에서 가족극은 그 자체로 보편의 정서를 자극한다. 맏이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족에 무조건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받는 맏딸을 이르는 ‘K-장녀’ 등의 유행어나, 두세 명의 자매 혹은 막내아들이 포함된 남매가 등장하는 극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캐릭터나 분위기가 별다른 부연 없이도 웃음을 자아내거나 개개인의 경험을 어렵지 않게 상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가족과 관련하여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공감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가부장제 속에서 독립된 개체이기보다 가족의 안정을 위한 수단적 역할을 맡기를 기대받는 ‘가족에서의 여성’을 드러내는 서사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이장》은 아버지의 묘 이장을 위해 네 자매가 막내아들을 찾으러 가며 일어나는 일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가부장제를 통렬하게 지적했고, 《82년생 김지영》 역시 주인공 김지영의 언니와 남동생을 통해 같은 집안에서도 다른 기대와 대우를 받는 딸과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계비 조 씨’라는 캐릭터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왕실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권력을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받는 시대 불문 ‘K-장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악역임에도 너른 공감을 이끌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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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 역시 이러한 서사의 가족극이자 여성 영화로, 흩어져 살던 세 명의 자매가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계기로 모인다는 줄거리를 중심으로 세 기혼 여성을 둘러싼 가족과 사회의 기대, 그리고 그것과 결부하거나 충돌하며 뻗어 나가는 삶을 조명하며 누구나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K-딸’들의 얼굴을 드러낸다.

 

항상 희생하면서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첫째 희숙, 대외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삶을 다부지게 추구해나가는 둘째 미연, 매일 취해 있는 자유분방한 극작가 셋째 미옥의 삶을 개별적으로 비추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들이 자매로서 모이는 이야기의 구조는 세 자매가 경험하는 공통된 고민이 한 가정의 것으로 일축할 수 없는, 여성 개개인이 일반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 가족극의 특징은 한국의 기독교 가정을 표현하는 데서 비롯한다.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기독교 가정이라는 배경은 세 자매가 속한 가족과 더불어 가장 ‘반듯한’ 생활을 보여주고 있는 둘째 미연이 이끄는 가족에 중첩되어 나타나는데, 영화는 이것이 가족의 ‘정상성’ 개념을 구체화하는 독특한 기제를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집사이자 성가대 지휘자인 미연의 가정은 교수인 남편과 자녀 둘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정상가족’으로 평온하고 화목해 보이는 기독교 가정이다.

 

그러나 남편은 교회 성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미연에게 들키자 폭력을 행사한다.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처리하면서도 바깥에 알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미연의 모습은 부조리를 묵인하면서까지 가족의 안정성과 정상성을 추구하기를 요구받는 ‘가족에서의 여성’이 처한 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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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에게는 폭력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으나 집안에서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로 치부되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을 오로지 견뎌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장로인 아버지처럼 집사가 되어 기독교 가정을 이끄는 미연에게서는 미옥의 말처럼 종종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미연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자녀에게 위압적으로 종교 행위를 강요하고, 나중에 나타난 남동생이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자 남동생을 도리어 몰아세운다. 안정적인 가정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참고 침묵하며 타인을 강제하는 것이 익숙해진 미연이 남편에 의해 또다시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만큼 폭력의 굴레와 상처가 단단하게 지속되어 약자를 괴롭히는 현실을 표상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보호가 아닌 위협이 되었던 환경에서 성장한 세 자매는 또 다른 가정을 꾸리며 다시 엄마이자 아내로서 가정에 헌신할 것을 요구받는다. 희숙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딸을 바라보는 장면, 미연이 자신을 피하는 딸을 보는 장면, 미옥이 아들의 핸드폰에 ‘도라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자신의 번호를 발견하는 장면이 연속되어 비춰지는 부분은 너무도 다른 삶을 사는 세 자매가 그럼에도 가족 안에서의 역할에 대한 공통적인 고민에 처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 해야 할 아빠들은 회피하며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떠넘긴다. 별거 중이면서 생활비만 악착같이 받아 가는 희숙의 남편과 외도에도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폭력을 저지르는 미연의 남편, 그리고 끝까지 사과하지 않는 세 자매의 아버지는 ‘외인’이면서도 가정을 지키고 안정화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는 여성과 달리 쉽게 책임을 피하면서도 가부장의 권위를 누리려고 하는 남성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목사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


 

결국 이 영화는 희숙의 말버릇처럼 한국의 엄마, 아내, 딸들이 관성처럼 가지는 부채감과 미안함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되묻게 한다. 잘못한 사람이 사과하지 않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사과를 하는 풍경이 왜 낯설지 않은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멈춰 서서 생각하게 한다. 가족과 교회 지인들이 모인 아버지의 생일잔치가 남동생의 등장으로 난장판이 되고 모두의 상처가 불거지자, 미연은 아버지에게 목사님에게 체면을 치를 것이 아닌 자녀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아버지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지만 미연은 이제 안다.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잘못한 것도 없이 두려움에 사과했던 자신의 딸 역시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세 자매 중 차녀인 나는 영화에 특히 공감했다. 교회와 기독교 가정, 세 자매를 묘사하는 리얼리티는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이라는 단단한 집합 속에서 끊임없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요구받으면서도 미안해해야 하는 ‘외인’인 엄마, 아내, 딸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이야기이다. 애써 잊어 온 상처가 떠올려지는 만큼 불편하고, 보기 힘들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것만으로도 나아지는 상처가 있다. 우리는 그 상처가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더욱 나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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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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