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왜 아동의 눈물은 '징징거림'이 될까

글 입력 2021.01.15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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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포화 상태에 가까운 트로트 예능에 대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미스트롯 2>는 또 '흥했다.' 특이하게도 어린 ‘트로트 신동’들의 활약이 프로그램의 간판 홍보 요소가 될 정도로 두드러지는데, 초등부와 중고등부 참가자가 인기투표 1위를 점하거나 경연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시청자의 관심도 역시 이에 필적해 보인다. 최연소 참가자들의 방송 노출도와 주목도가 이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월 7일 방영된 <내일은 미스트롯 2> 4회에서는 9세부터 13세까지의 아동으로 구성된 초등부의 경연 무대와 연습 과정, 그리고 합격 여부를 가리는 장면이 송출되었다. 특히 참가자들이 연습 과정에서 의견을 주고받다가 갈등이 빚어지는 장면과 경연 이후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장면은 다른 팀에 비해 길고 자세히 비춰졌는데, 여기서 이들이 보인 감정 표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너무 냉담해서 어떤 것은 폭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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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연습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다퉜고, 화해한 후 무사히 무대를 마쳤으며, 경연의 결과가 발표되자 합격 여부에 무관하게 거세게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에 대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성인도 힘들어하는 경연의 중압감에 아동을 노출시키고 그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그대로 방송에 드러내는 것 자체가 학대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동의 ‘징징거림’에 불편함을 표하는 반응이었다. 아동의 거침없는 감정 표현에 기인한 심리적 불편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것의 맥락을 이해하고 소비하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양상의 비판이 이어진 것이다.


전자의 비판은 합리적이나 후자의 비판은 다분히 문제적이고 폭력적이다. 성인 참가자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다툼과 눈물이 아동들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로 ‘징징거림’이라는 표현으로 가치 절하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성인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아동의 솔직한 표현에 대한 생경함과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아동의 감정 표현과 언어 및 행동이 성인에 비해 능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나 양보의 영역도 아닌 그저 필연적이고 자명한 사실이며, 당연히 어떤 노력으로도 바뀔 수 없고 누구도 회피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명제이다. 아동의 감정 자체를 폄하하고 편의를 위해 ‘일반적인’ 성인의 의사소통 방식에 아동이 맞출 것을 일방적으로 요하는 것은 그래서 모순적이고 성립 불가능한 비판이며, ‘노 키즈 존’처럼 무언가가 지워지고 왜곡된 세계에 대한 허구적 선망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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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을 하면 안도와 기쁨으로, 불합격을 하면 슬픔과 아쉬움으로 흘리는 아이들의 눈물은 당연하다. 심리적 압박을 동반하는 경쟁과 방송 녹화라는 중첩된 환경 속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는 아이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웃고, 귀엽고 씩씩한 ‘아이다운’ 모습만을 보이길 원한다. 사실은 아이의 감정 표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고정적인 프레임 속 아이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아이는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주기적으로 아동을 서당에 보내며 가상적인 규범 아래 간략화된 훈육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말 잘 듣는 ‘이상적인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 대리만족감을 제공하듯이, ‘보기 편하게’ 편집된 아이의 모습은 아동을 둘러싼 사회의 복잡한 맥락과 동떨어져 있어 쉽게 소비할 수 있으며 간편한 오락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미디어 속 아동의 모습이 ‘보기 편한’ 이미지로 강화되는 동안 이상적인 아동의 범주에서 배제되는 현실의 아동이 있다. 예쁘게 가공되지 않은 현실 속 아동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래서 생경하다.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며, ‘보기 싫은’ 것이 되어버린다.


미디어를 통해 학습하고 강화한 아동의 이미지, 그리고 이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과 소비는 이와 같은 기제를 거쳐 아동의 눈물을 ‘징징거림’으로, 주장을 ‘생떼’로 만든다. 경연에서 탈락하자 주저앉아 울고 격렬하게 다투는 초등학생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의 원인을 과도한 경쟁 스트레스에 이들을 노출시키고 아동의 캐릭터와 사건을 자극적으로 재구성하는 매체의 무책임함이 아닌 자신이 요구하는 역할을 마땅히 수행하지 않은 아동에게서 찾게 한다. 전자는 매체를 소비하는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고 반성해야 하지만 후자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우는 아이가 아닌 울게 한 어른을 지적해야 하는, 수고롭지만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은 그렇게 도외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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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고길동의 집에 살며 짓궂은 장난을 치는 둘리를 ‘기생충’ 취급하는 세태를 향해 김수정 작가는 ‘그야말로 안 간 곳이 없고, 못한 일이 없고, 우주로, 과거로, 종횡무진 활약을 했던 캐릭터’라며 둘리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작가의 말 앞에 ‘그렇기 때문에’라는 어구가 생략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둘리가 짓궂고 서툴며 어른이 바라는 정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토록 용기 있는 모험에 나설 수 있었으리라는 유추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동은 ‘보기 편한’ 대상이 아니며 다양한 위치와 모습을 취하거나 경험할 권리와 함께 큰 가능성을 품는 존재이다. 다양한 아동의 모습을 건강하게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과 함께, 소비자로서 아동을 바라보는 관성적인 시선이 어떤 세계를 왜곡하거나 배제하고 있는지에 대한 세심한 성찰이 필요하다.

 

 

참고 기사


견민정, '아이들이 상품화하고 있다'

위근우, '아이들 육아·훈육마저 이벤트화...비뚤어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이영주, '방송사의 아동(청소년) 방송출연 가이드라인 규정 방안'

유튜브 채널 PRAN(프란), '"둘리가 진짜 기생충 아닌가요?"에 대한 둘리 아빠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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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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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
    • 칼럼 잘 읽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깔린 아동혐오를 잘 짚어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근래 방송이든 다른 매체든 자극적인 것이 참 많습니다. 아동혐오뿐만 아니라 여성혐오, 자기비하 등을 기반으로 한 예능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요. 혐오의 홍수에 빠져 숨이 막히던 차에 에디터님의 여러 글들을 만났습니다. 대다수가 인지하지 못하거나 암묵적으로 묻어버리는 문제점들에 대해 발화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저도 에디터님도 더한 혐오와 마주하겠지만 다양한 혐오, 특히 여성혐오에 대해 분명하고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됩니다. 부담으로 작용할까 염려되긴 하나 감히 개인적 욕심을 부려보자면 앞으로도 에디터님의 좋은 글을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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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먼저 댓글다신 분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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