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손 안의 미술관 -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도서]

예술작품이 거쳐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기
글 입력 2021.01.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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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회화와 조각 등, 우리가 시각적 지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비교적 창작시기가 가까운 현대미술 작품들은 작가에 의해 만들진 직후 갤러리스트나 큐레이터들을 통하는 경로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작가의 사회적 지위나 예술을 하는 환경 자체가 지금같지 않았던 때의 작품들은 어땠을지 상상해보자. 큐레이터나 갤러리의 개념이 없던 고대나 중세시대의 작품들은 과연 어떻게 보존되어 지금까지 흘러왔고, 그 과정에서 소실된 작품들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미술범죄와 미술품에 대한 연구를 하는 '노아 차니' 작가가 저술한 <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는 긴 서양미술사의 시대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우리가 더 이상 최초의 온전한 상태로 감상하기 어려워진 작품들의 내막에 담긴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한다.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미술품과 문화재가 지금은 닿지 않은 곳에 있다. 자연재해와 전쟁, 테러, 도난을 비롯한 온갖 것이 미술품을 삼키거나 할퀴었다. …(중략) 이제는 볼 수 없는 미술품을 떠올리는 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잃어버린 미술품을 그러모은다면 오늘날 존재하는 박물관보다 몇배나 더 많은 박물관을 새로 지어도 모자랄 것이다. 남아 있고 보이는 것은 존재했던 것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사라진 미술품과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앞에 결과로서 주어진 것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를 상기하게 한다. 그리고 미술품이 제작되고 보존되고 복원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미술품을 둘러싸고 이념과 종교가 얼마나 커다란 역할을 했는지를 의식하게 만든다.

 

- 서문 중, 옮긴이의 말

 

 

책은 이 책을 옮긴 이연식 번역가의 서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걸 잊어버림으로써 오늘을 견디는 건지도 모른다.'라는 맺음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작품의 소실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에 의한다.

 

저자는 '도난, 전쟁, 사고, 성상파괴와 반달리즘, 신의 손길, 일시적인 작품, 소유자가 파괴한 작품, 매몰과 발굴, 사라졌거나 존재하지 않았거나'라는 총 9개의 이유로 작품들이 파괴되고, 사라지고, 복원되거나 그대로 잊혀지게 되었다고 정리한다. 이 책은 그 모든 이유로 인해 '잃어버린 작품들을 모아둔 미술관'을 책이라는 손 안에 쥘 수 있는 매개체를 인해 활자와 사진으로서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가장 먼저 비하인드 스토리를 갖고있는 작품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작품들이 이렇게 알려지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을 타며 오랜 시간과 사건사고를 거쳐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술사가 발전함에 따라 타자에 의해 변형되거나 옮겨지길 반복했던 작품들이 현대미술에 접어들며 작가에 의해 파괴되거나, 관람자나 사회 전체의 영향으로 인해 사라진 경우도 생긴 것이다.

 

 

 

1. 외부적 요인에 의해 파괴된 작품들


 

 

1734년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은 알카사르 궁전. …(중략) 불이 너무나 뜨거워서 은과 금으로 만든 물건들이 녹아내렸다. 궁전 사람들은 왕실 예배달의 창문으로 보석과 미술품을 밖으로 내던지면서 할 수 있는 한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벨라스케스의 <라스메니나스>와 같은 걸작들은 크고 무거워서 옮기기 어려웠고, 많은 미술품이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불길이 더욱 가까워졌다.

 

- 본문 중 <사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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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go Velazquez , 316×276cm, 1656

 

 

친숙한 이 작품을 그린 벨라스케스가 본격적으로 경력을 시작한 작품인 <모리스코인들의 추방>을 비롯해 다수의 작품이 그 당시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 라스메니나스는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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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중인 숭례문의 모습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 중에는 녹아내린 황금 궁전도 있었고, 마피아가 연루되었던 작품이나 미술품 전문 도둑이 있다. 박물관에서 값이 뛰어난 예술품을 훔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도둑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흘러내리는 거대한 예술 문화재의 모습이 남아있는 사진만으로는 잘 상상이 가지 않더라.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이런 '역사 속의 꿈같은 일'이라고 느껴지는 문화재나 예술작품의 소실과정을 직접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바로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당시, 불타는 숭례문의 모습이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그 앞에서 많은 서울 시민들이 안타까워하거나 눈물짓던 모습이 담기던 것이 떠올랐다. 불타서 떨어져 나간 부분들을 오늘날의 복원 기술로 최대한 재현해내어도, 그 겉모습 뒤에 사라진 원형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책에서는 이렇게 사건사고에 휘말려 사라진 작품들부터, 크게는 폼페이 엘도라도,아틸란티스처럼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작품이나 문화재까지 다루고 있다.

 

 

 

2. 작가 스스로에 의해 사라진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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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 Duchamp, [Fountain], 1917

 

 

작가 본인이 작품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대표적인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기술자의 서명을 남겨 작가성을 부정하고, 사물을 예술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오브제와 레디메이드 개념을 만들었던 뒤샹의 <샘>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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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Rauschenberg, [Erased de Kooning Drawing], 1953

 

 

저자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윌렘 드 쿠닝의 사례를 들어 '한 예술가가 또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파괴한 사례'에 대해 소개한다. 라우센버그는 드 쿠닝의 동의를 얻어 예술적인 행위로서 작품을 지워내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함께 소개된 재미있는 일화는, 연필로 드로잉해 지우개로 쉽게 지울만한 작품을 줄 생각이 없던 드 쿠닝이 잉크와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내주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이 <드 쿠닝 지우기>라는 작품을 접했을 땐 가벼운 드로잉을 지운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깨끗이 지우는 데만 자그마치 한 달이 걸렸고, 드 쿠닝은 만만찮은 작품을 주었고, 라우센버그는 그것을 기어코 해냈다는 것까지 묘하게 웃음이 났다.

 

무언가를 파괴하는 행위는 때때로 의미를 가지고 때론 기묘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3. 사회와 관람자에 의해 사라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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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Serra, [tilted arc], 3.65×36.5m, 1981

당시 미국 뉴욕 연방청사 광장에 설치되었으나 철거되었다.

 

 

본문 중 등장하는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사건은 평소 '작가와 작품,사회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야기이기에 그다지 유쾌한 사건은 아니지만 인상깊게 생각하고 즐겨 논하는 주제이다.

 

주로 철판을 이용한 개념미술 설치작업을 즐겨하던 리처드 세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광장에 <기울어진 호>라는 이름의 거대한 철판 구조물을 작품으로 설치했다. 이 철판은 정말 거대해서 성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고, 광장 중앙을 크게 가로질러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통행에도 큰 방해가 되었다. 게다가 철판의 물성 상 산화와 물에 의해 녹스는 과정을 거치며 심미적으로도 보기 흉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 참을 수 없던 시민들이 세라의 작품을 철거하길 요구하게 된다. 리처드 세라가 자신의 작품의 당위성과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강력하게 항의했기에, 결국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이 작품은 철거된다. 이 사건은 예술 작품 중 장소의 영향을 주는 작품을 대할 때 작가가 고려해야하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주며, 특히 '공공미술'처럼 관람자와 상호작용이 필요한 경우엔 작품에 사회와 관람자의 비중이 크게 개입된다는 것을 알려준 중요한 사례이다.

 

*

 

이처럼 작품 뒤에 수많은 비하인드 에피소드들이 얽혀있고, 저자는 간단하고도 깔끔한 설명과 최대한 정확한 자료로서 책을 읽는 시간동안 그 작품들이 있던 시대로 돌아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관람의 시간을 제시한다. 책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역할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간접경험이라는 말처럼, 노아 차니가 소개하는 잃어버린 작품들을 소개하는 미술관을 통해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게 힘들어진 요즘, 예술작품이 거쳐온 시간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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