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가를 알면 작품이 보인다 - 방구석 미술관 2

글 입력 2021.01.01 17: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기 전, 박물관학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삼청동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해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를 관람했다.

 

관람하는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낯설다’는 것이었다. 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한 데 모아놓은 전시장에서,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라고는 고작 한두 점에 불과했다. 나름 미술에 관심이 많고 미술사나 화가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해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미술에 한한 것이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벽에 걸려 있는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고 전시 의도와 내용을 찬찬히 살펴봐도,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외에 작품에게서 다른 감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한국의 화가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반 고흐는 아는데 김환기는 왜 모를까?”로 시작하는 이 책 <방구석 미술관 2>는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책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이중섭과 나혜석, 백남준 정도를 제외하면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이우환과 같은 화가들은 나에게 이름 정도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들이었다.

 

미술관에서 이들의 작품을 마주쳤을 때 ‘아! 이게 김환기의 그림이구나!’ 하고 반가움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깊이 있는 감상을 하기엔 너무 낯선 이들이었다. 작품에는 화가의 인생과 가치관이 녹아 들어있기 마련인데, 가치관은 커녕 전반적인 삶의 궤적에 관해서도 알고 있지 못했으니 작품을 제대로 관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2020050703093612911127.jpg

김환기, <론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

 

 

이 책은 얼핏 화가의 이름은 들어본 것 같지만 작품도, 인생사도 잘 알지 못하는 한국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아주 편안한 톤으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해준다.

 

김환기가 ‘환기’로, 나혜석이 ‘혜석’으로 불리우는 이 책은 우리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이 유명한 예술가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란 가까운 삶이었음을 깨닫게 하고, 그만큼 그들이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이중섭이 정성을 들여 그려낸 수십 장의 ‘편지 그림’에서 가족을 자신의 인생의 전부로 여길 만큼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생계를 위해 두 차례나 꿈을 접고 생업에 뛰어들었던 유영국의 삶에서 꿈보다 현실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책을 읽다 보면 이들에게 친밀함을 느끼다 못해, 전쟁과 같은 시대 상황에 휩쓸리고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맞서면서,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본인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험난한 환경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며 그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이들의 열정이 절로 전해져 온다.

 

예술을 위해 삶의 기반이 되었던 것들을 전부 포기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김환기, 제대로 된 예술 교육을 받을 돈이 없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며 끝내 자신의 특색을 구축한 박수근, 일평생 시련 가득한 삶을 살았지만 그 시련을 도리어 예술로 승화해낸 천경자의 인생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다 보면 가슴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뜨거워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131.jpg

이응노, <군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

 

 

이토록 친밀하게 다가온 예술가들의 인생 이야기는 뜨겁게 남아,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각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 마디로, 그들의 작품에서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에 분명히 담겨져 있는 것들을 알아보고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책을 다 읽은 후,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에 걸려 있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보았다. 이 책에서 소개된 화가들의 작품들 중 다수가 있었고, 그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의 작품에서 그들의 일생과 세계관이 읽혔다.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여기 있다. ‘모르는 사람’이었던 예술가들을 ‘잘 아는 사람’ 으로 만들어, 작품을 작품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작품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게 되는 순간 미술관의 재미와 매력을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니, ‘방구석’ 밖의 진짜 미술관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방구석2_표1 띠지.jpg

 

 

 

최우영.jpg

 

 

[최우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