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을 긍정하게 만드는 그림 - 한가람미술관 로즈 와일리 전

글 입력 2020.12.3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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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난리법석이지만 여전히 예술의 가치는 건재하다. 이런 상황일수록 예술이 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로즈 와일리전>이 진행중이다.

 

<로즈 와일리전> 포스터에는 푸르고 분홍이 섞인 모호한 바탕을 뛰어다니는 알 수 없는 형체들이 있다. 바다 건너 저 멀리 영국에 이 그림으로 유명해진 할머니가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그림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난 노란 스마일 마스크가 펄쩍펄쩍 하늘을 뛰어다닌다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발레리나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그 말을 보고 나서는 팔다리를 펼치고 점프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여전히 노란 스마일 마스크의 춤을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림은 모두에게 해석의 여지를 열어 둔 자유로운 상상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각종 사조와 화풍, 기법이 얽힌 학술적이고도 복잡한 배경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한 작품을 대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긴장되는 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 그림의 구도와 색, 연출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작가의 의도를 잘 짚어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감상에 휩싸인다. 그런데 로즈 와일리와의 첫 만남은 어쩌다보니 발레리나가 아니라 노란 스마일 마스크였으니. 초면부터 망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사유로 모든 걸 내려놓고 제멋대로 편안하게 보기 시작한 전시는 의외로 마음 가는대로 시선을 던지고 자유롭게 생각을 굴리는 것이 정답이더라. 로즈 와일리의 한 마디가 인상적이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본인이 한 순간 느낀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니만큼, 감상할 때에도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라고.

 

흥미롭게도 오히려 그림을 해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힘들다. 있는 그대로의 형상을 느끼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되는 전시 <로즈 와일리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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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사로잡은 할머니 화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장은 로즈 와일리를 위한 말이다. 47세에 미술 학위를 받은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다 78세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지에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중 한 명으로 소개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21세까지 미술 대학에 다니던 그녀는 결혼 이후로 20여 년관 화가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45세가 되던 1979년에 영국왕립예술학교에 입학해 활동을 재개했으나 크게 조명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던 중 2013년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얻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영국 현대회화작가에게 주는 상 중 가장 높이 평가되는 '존무어 페인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그녀는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전속 작가로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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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와일리 작품 세계의 완성, <로즈 와일리전>

 

로즈 와일리가 유명해진 데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대중적인 소재와 천진난만한 표현력, 발랄한 컬러가 큰 몫을 했다. 특히 그녀의 작품은 실제로 마주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데, 최대 6m에 이르는 거대한 캔버스에 스쳐지나갈 법한 사소한 것들을 크게 그려 매력적인 개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초대형 원화 작품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아울러 회화, 드로잉, 설치미술뿐 아니라 다양한 최신작을 포함해 원화 150여 점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 대규모 개인전으로서 테이트 모던 미술관 VIP 룸에 전시됐던 작품도 공개돼 더욱 뜻깊다. 일반인은 관람할 수 없었던 작품들을 최초로 오픈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력을 증진하는 그림이니만큼 체험형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운영중이다. 관람객이 드문 시간대에 방문했음에도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아이들이 꽤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방역 수칙을 지키며 안전하게 관리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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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일상도 풍부한 영감의 원천

 

로즈 와일리는 사소한 일상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주제로 잡고 그림에 녹여 새로운 감각으로 탄생시키는 것이다.

 

대상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한 후 추상적인 터치를 더해 강렬하고 획기적인 결과물로 뒤바꿔낸다. 뉴스, 역사, 왕실, 만화, 스포츠, 유명인에 관한 이슈뿐 아니라 가족의 일상이나 아틀리에 창밖으로 펼쳐지는 평범한 풍경까지 그녀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이처럼 자기고백적인 작업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풍부한 공감을 끌어내게 만들어 몰입도를 높인다.

 

전시는 로즈 와일리를 둘러싼 일상을 아틀리에, 영화, 스포츠 등으로 소소하게 나누어 파트별로 구성했다. 위 사진에 펼쳐지는 파트는 '필름 노트'로, 영화에서 영감받아 완성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녀에게 필름 노트 작업은 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을 가져와 자르고, 클로즈업하며 새롭게 풀어낸다.

 

영화 프레임을 닮은 가로형 캔버스에 글자를 빼곡히 넘어 마치 스토리보드처럼 독특한 구성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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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하고 대중적인 이슈를 소화하다

 

작가는 역사 속 이야기나 뉴스, 심지어는 스쳐지나가는 광고에서도 영감을 주는 소재를 찾아낸다. 정치, 종교, 명성, 돈 등 어떻게 보면 딱딱하고 예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주제를 꾸밈 없이 천진한 뉘앙스로 화폭에 풀어낸다. 다양한 주제를 솔직담백하게 소화해 불편하기보다는 사회의 모습을 쉽고 친근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과거 인물을 현재 유명인의 얼굴로 대체한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다고.

 

위 두 사진 중 아래는 작가의 아뜰리에를 재현한 것이다. 영국의 작은 시골 도시 켄트에 위치한 그녀의 아틀리에는 물감 자국이 두껍게 굳어진 종이 뭉치나 페인트 통이 얽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주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꾸는 로즈 와일리다운 아틀리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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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그림

 

그녀의 그림은 늘 생기가 넘치며 움직이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여러 영감의 대상 중 그녀가 유달리 사랑하는 것은 '생명' 그 자체다. 주로 기억 속 이미지로 작업을 이어왔지만 욕실 안을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나 그녀와 함께 지내는 고양이의 발가락처럼 세밀하고 구체적인 대상에 영감을 받기도 한다.

 

세상을 가득 채운 수많은 동물과 곤충, 나무와 꽃들. 이런 자연 요소를 실제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극도로 단순화하거나 실루엣을 겹쳐 기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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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향한 열정을 표현하다

 

로즈 와일리는 열렬한 축구 팬이었던 남편의 영향을 받아 리버풀을 시작으로 첼시, 아스널, 토트넘 등 여러 팀을 아울러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과 대중적인 이슈를 주제로 작품을 전개하는 그녀에게 자신이 좋아하기까지 하는 축구는 훌륭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축구의 신들은 방송을 통해 매일 소개되는 대중적인 아이콘인 만큼, 경기 전체뿐 아니라 선수 한사람 한사람에게 집중해 작품을 구현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토트넘에서 활악중인 손흥민 선수를 그린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경기에 몰입한 표정이 제법 비슷하게 느껴져 재밌었다. 이 밖에도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 위에 완성된 스페셜 에디션을 공개해 전시를 특별하게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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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여성, 그리고 자화상

 

로즈 와일리는 소녀와 여성을 주제로 많은 주제를 남겼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것들만 봐도 그렇다. 단 얌전한 모습보다는 굴복하기를 거부하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침착한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사랑스러운 핑크 컬러를 입되 역동적인 동작으로 화폭을 채우거나, 자유분방하고 거친 붓터치와 어두운 톤을 섞어 사색적인 여성을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여성의 어떤 점을 긍정하고 싶은 것인지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자화상을 그려나가는 점에 좋은 자극을 받았다.

 

마지막 파트 이후 굿즈샵도 볼거리가 굉장히 많았다. 활기찬 색상과 붓 터치가 여러 문구류에 포인트로 잘 어울렸던 듯.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편안하지만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던 <로즈 와일리전>. 소박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원초적인 에너지를 만끽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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