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을 그림으로만 보는 것 - 로즈 와일리展

예술에는 나이도, 정답도 경계도 없다.
글 입력 2020.12.2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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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McGorty 2013 Rose Wylie 1.jpg

 

 

로즈 와일리의 그림을 보면 어린아이 같은 순순한 동심이 느껴진다.

 

틀려도 괜찮다. 선을 잘못 그어도 괜찮다. 다시 덧대어 그리면 된다. 그녀의 그림에는 순수한 위로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머리를 아프게 했던 고민은 사라지고 그림 그 자체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림의 색과 질감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그 그림에 담긴 어린아이 같은 유쾌함을 볼 수 있었다.

 

로즈 와일리는 45세에 영국 왕실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in London)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그림을 쉬었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86세에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쉬지 않았으며 활발한 전시 활동을 진행했다. 그러한 그녀의 열정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현재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황은 강박적일 정도의 꾸준함으로 이어질 수 있었죠."

 

 

그녀의 그림은 일상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담아낸다. 그날 보았던 풍경, 동물, 영화, 축구, 영국의 왕실 등 일상의 모든 것을 캔버스에 그려낸다. 그녀에게 캔버스란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도구가 아닌 자유를 표현하는 놀이터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그림에 한계란 없다. 대중적 소재, 자유분방한 표현력, 발랄한 색깔로 뒤덮인 그녀의 그림을 보면 어릴 적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Queen of Pansies (Dots) 2016 Oil on Canvas 183 x 331 cm Rose Wylie.jpg

Queen of Pansies (Dots) 2016 Oil on Canvas 183 x 331 cm Rose Wylie

Photo: Soon-Hak Kwon(권순학)

 

 

한 평론가가 “당신은 본인을 영국 작가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그녀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로즈 와일리는 “아뇨, 난 그저 작가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대답은 그녀의 예술관과 인생사를 관통하는 답변이다. 

 

 

"그림은 그저 그림이에요.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림은 그저, 그림이죠."

 

"예술가라면, 하라는 대로 할 필요가 없어요."

 

 

그녀는 어려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저 그림을 그림으로 보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그림을 감상하는 건 전공자가 아닌 이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림의 구도, 정체성, 역사, 작가의 예술관 등등 그림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평소 전시관에서 그림을 감상할 때는 도슨트를 듣거나 전시를 보고 나서 인터넷에 검색해서 추가로 조사를 하고 나야지 그림에 대한 이해가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는 도슨트를 따로 빌리지도 않았고 오로지 그림만 감상했다.

 

 

Black Frock, The Modest Corset (Malevitch) 2019 Oil on canvas 183 x 312 cm Rose Wylie.jpg

Black Frock, The Modest Corset (Malevitch) 2019 Oil on canvas 183 x 312 cm Rose Wylie

Photo: Jo Moon Price(문현주)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머릿속에서는 문화예술을 접할 때마다 무슨 의미일까? 무엇을 표현한 것일까? 라고 머리를 굴려 의미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로즈 와일리 전시회에서는 불필요한 과정이었다. 예술을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림을 그림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을 로즈 와일리 전시회를 보고 나서 체감하게 되었다.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라고 그림의 의미를 찾기 바빴다. 그러나 계속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다 보니 그림의 색깔이 눈에 들어왔고, 그림 속 가득 찬 붓질이 눈에 들어왔다.

 

완성한 그림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위에 캔버스 조각을 덮어 다른 그림을 그린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말풍선을 달듯이 그림에 텍스트를 써넣기도 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그녀의 작업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림에 정답은 없으니 틀려도 괜찮다.

 

 

Julieta (Film Notes), 2016, Oil on canvas, 205 x 500 cm Rose Wylie EDIT.jpg

Julieta (Film Notes), 2016, Oil on canvas, 205 x 500 cm Rose Wylie EDIT

Photo: Soon-Hak Kwon(권순학)

 

 

그녀의 작업실은 수많은 작업의 부산물들이 가득하다. 정신없이 어질러진 캔버스와 유화 물감, 그리고 스케치북들은 그녀의 작업 과정의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캔버스를 붓이 아닌 손을 통해 그리거나 거대한 캔버스를 과감한 붓 터치로 주저 없이 그려낸다. 그녀가 고령의 나이에도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예술에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에는 나이도, 정답도 경계도 없다.

 

 

예술이란 개념은 참 까다롭다. 꼭 작품이 예술처럼 보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볼펜과 복사 용지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고 굳이 ‘예술적’인 소재를 찾지 않는다. 나의 작업이 진지하다고 생각하지만 장난스러움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장난스러움’보다는 ‘불손함’이 더 마음에 든다. 작품의 소재가 장난스럽고 뒤죽박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항상 진지한 자세를 추구한다. 어쩌면 아주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물리학의 양자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하고 또 그 경계에서 생각한다.

 

 

나는 절대로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 날 도와주겠거니 기다리지 못해요.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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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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