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는 내 엄마여서 좋았을까 [사람]

글 입력 2020.12.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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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 엄마는 조화 만드는 일을 부업삼아 했다. 엄마는 안방 바닥에 주름진 종이를 펼쳐 놓고는 내 손톱 길이만큼 자르고 풀칠을 해서 철사에 둘둘 말았다. 그러면 그건 내가 이름도 모르는 예쁜 꽃이 되었다. 엄마의 손재주를 전혀 물려받지 못한 나는 늘 그것을 신기해하면서, 엄마 옆에 앉아 딱풀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외갓집이 있는 천호동에 가면 어느 아울렛 지하에 그런 조화 만드는 재료를 가득 쌓아 두고 파는 집이 있었다. 엄마는 그 집에 가서 야들야들하고 색이 고운 종이, 풀잎 색 테이프, 나무 바구니 같은 것들을 사곤 했다. 재료는 10분이면 사고도 남았지만, 엄마는 늘 그 집에 30분이고 1시간이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아울렛에는 팥 칼국수와 팥죽을 파는 식당도 있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조화 가게에 가서 달착지근한 공예용 풀 냄새를 맡고, 주먹만 한 수정구슬이 돌아가는 미니 분수를 구경하고, 책상에 딱딱하게 굳어 있는 글루건 심을 손톱으로 뜯어내며 놀았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팥 칼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엄마는 잠깐만, 잠깐만, 하면서 조화 가게 사장님과 깔깔 웃었다. 내가 은근하게 조르는 단계를 지나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엄마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팥 칼국수 가게에 가면 나와 내 동생은 꼭 칼국수에 설탕을 탔다. 외할머니는 우리더러 칼국수 먹을 줄 모른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엄마는 조화 만드는 일을 그만뒀다. 단칼에 그만둔 것은 아니고, 그냥 서서히 안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POP 글씨와 냅킨 아트를 배워와서 그걸 부업으로 삼았다. 반쯤 쓰고 남겨둔 내 스케치북, 낙서가 가득한 공책 등 남는 종이는 대부분 엄마의 연습장으로 쓰였다. 엄마는 글씨 쓰는 법을 다른 사람한테 가르치러 다니기도 했고, 때로는 교회 사람들한테 돈도 안 받고 메뉴판이나 감사 카드, 게임판 따위를 만들어줬다.

 

내 기억에 엄마는 항상 그렇게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오래된 선반이나 장식장을 떼어내서 하얀 젯소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하고, 그 위에 알맞게 오려 낸 냅킨을 붙이고, 예쁜 글씨를 쓰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을 때면 내가 방학 숙제로 내기 위해 만지작거리던 우유갑과 페트병을 보다가 아이고 답답해, 하면서 뚝딱 뭔가를 만들어 줬다. 방학이 끝나고 엄마가 만들어 준 숙제에 내 이름을 써서 내고 나면, 선생님들은 늘 다른 ‘잘’한 방학 숙제들과 함께 우리 엄마의 작품을 복도에 전시했다. 어설픈 아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숙제들 사이에서 엄마가 만든 필통이나 화병은 단연 눈에 띄었다. 우와 너 진짜 잘했다. 나는 친구의 칭찬에 머쓱하게 웃었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미술을 했다는 것을 그때쯤 알았다. 오래된 가족 앨범을 뒤지다가 누군가 정성스레 그려서 끼워 둔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고, 엄마는 미혼 시절에 직장 다니며 그렸던 그림이라고 대답했다. 하영이네 이모 있지, 엄마랑 같이 직장 다녔던 사람이야. 아빠가 옛날얘기를 할 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뒤로 엄마는 종종 자기가 직장 다니던 얘기를 했다. 엄마는 어린이용 학습지 뒤에 한 페이지 분량의 단편 만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 그리고 어린이용 잡지였는지, 백과사전이었는지에 삽화 그리는 일도 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 단편 만화와 삽화 페이지를 쭉 찢어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엄마는 통화하다가 손이 심심하면 아무 종이에나 그림을 그린다. 그때 그 어린이용 만화와 똑같은 모양으로 강아지나 사람 얼굴을 익살스럽게 그려 놓고는 통화가 끝나면 종이를 집 아무 데나 던져둔다.

 

지금의 엄마는 그림과는 영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우리 집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창의적이고, 손재주 좋은 사람이다. 엄마는 내가 재미 삼아 그리다가 버려둔 그림을 보고 과장되게 한숨을 쉬곤 한다. 그림 진짜 못 그린다며 나를 놀린다. 그러다 내 방학 숙제를 대신 하던 것처럼 그림을 이리저리 손봐서 다시 돌려준다. 이제는 이름을 써서 제출할 선생님도 없는데, 어디 액자에 끼워서 걸어 놓고 싶을 정도로 멋지게 그려서 준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냐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히 좋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연필과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에 익숙한 사람한테는 타블렛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리는 그림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엄마가 산후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다는 사실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몇 해는 지난 뒤에야 알았다. 엄마와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엄마와-그리고 아빠와-종종 술을 마시러 갔다. 나를 따라 폭탄주 몇 잔을 연달아 마신 엄마는 얼큰하게 취해서는 내가 생전 처음 듣는 얘기를 거침없이 풀어 놓았다. 엄마가 술에 취해 울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가 지속하지 못한 꿈의 부산물 틈에서 자란 것이다. 엄마가 공을 들여 칠한 가구와 장식품, 직접 재봉틀을 돌려 만든 필통과 파우치와 가방 같은 것들, 그리고 오래된 어린이용 만화를 닮은 작은 낙서가 우리 집 구석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엄마의 창작물은 그렇게 집 안으로만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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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를 미술 학원에 데려갔고, 겁에 질린 나는 내 또래의 어린 애들 틈바구니에서 쭈뼛대다가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그림이 재미없냐고 물었고 내가 그렇다고 하자 더는 묻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친구들을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자 엄마는 별 말 없이 피아노 학원을 끊어줬다. 한 번쯤 더 물어볼 법도 한데. 나였으면 내가 못한 미술, 너라도 실컷 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집을 부렸을 것 같은데.

 

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나는 엄마를 닮아 소설책을 좋아했고, 뭐든 만지작대기를 좋아했지만, 예술적 재능은 한 톨도 물려받지 못했다. 당신을 반쯤 닮은 딸내미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고집을 부릴 때면 이따금 후회가 치솟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도 지금의 나는 엄마가 종이 귀퉁이에 그린 낙서보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가 완성하지 못한 그림보다 가치 있는 사람일까? 곧 학교를 떠날 나이가 되는 요즘은 더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할 수 있었을 그 수많은 일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엄마의 꿈을 먹고 자란 인간치고는 내가 너무 별 볼 일 없는 어른이 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생각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생애의 20여 년을 온전히 다른 사람을 길러내는 데에 써야했다면 나는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니 엄마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키워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이 별 볼 일 없는 인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엄마에게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건 동정이 아닌데, 아무래도 동정처럼 보일 것 같아서다. 엄마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내가 함부로 진단하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엄마가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 고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온전히 당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그게 그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엄마가 그림 대신 피아노를 선택한 나를 존중해줬듯, 엄마가 무슨 선택을 하든 나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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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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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름
    • 따뜻하면서도 마음 아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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