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잔혹하고 이타적인 인간의 복잡한 진화사 -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글 입력 2020.12.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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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중 일부

 

 

<파리대왕>은 2차 세계대전의 잔혹함을 몸소 겪은 윌리엄 골딩의 작품이다. 전쟁 이전 골딩은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믿으며 인간이 스스로 도덕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 존재라 여겼으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인간 본성의 타락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썼다.


 

이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는 사회적 인간의 완전성을 믿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 나는 그럴 수 없기에 믿지 않았다.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발견했다. 나는 총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폭탄을 떨어뜨려 날려버리거나 어뢰로 격파시키는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수년에 걸쳐 계속되어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덕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파리대왕>을 포함해, 골딩은 독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는가, 악하게 태어났는가. 아니면 선악도 아닌 백지로 태어났는가?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에 익숙하다. 정규교육 과정에도 성선설, 성악설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교과서 외의 다양한 문화 매체에서도 이에 대한 논쟁을 지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지킬 앤 하이드>가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작품의 인기는 선악의 구분에 관한 관심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비극은 다시 사람들을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처럼 인간 선악의 문제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문제지만,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얻진 못한다. 이 문제가 특히 어려운 것은 기본적인 조작적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선과 도덕에 관한 조작적 정의는 가치 지향적일 뿐만 아니라 추상적이다.

 

인간의 본성을 추적하는 진화생물학은 논쟁의 모호함을 덜 수 있는 이론적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진화 생물학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적응'이다. 생명체의 복잡한 구조는 종의 진화적 환경에서 그 구조를 만든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에 잘 전파되게끔 자연 선택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적응주의적 원리를 따른다. 신체 기관의 발달뿐만 아니라, 행동양식과 심리적 적응도 진화적 기능을 반영한다. 오늘 소개할 책,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은 인간 본성이 발달해오면서 발달시켜온 공격성과 이타성을 진화생물학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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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판화 시리즈《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 변덕들)》중 43번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3부에 걸쳐 저자는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이중적 본성을 설명하고, 이중적 본성을 만들어낸 자기 길들이기라는 개념과 그 배경을 설명하며, 최종적으로는 실제 인간사에 대입하여 마무리한다. 1부와 2부가 다양한 생물 연구를 통해 밝혀진 공격성과 자기 길들이기의 개념을 설명한다면, 3부는 언어라는 무기를 통해 연합해온 인간의 독특한 진화과정을 설명한다.

 

책은 전반적으로 과학적 실험에 근거한 객관적인 언어로 기술되었지만, 책의 후반은 문학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3부의 후반 부분은 저자의 생각이 적극 드러나는 부분으로, 감상적인 언어로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소 낙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천천히 쌓아올린 논리를 문학적으로 마무리하는 솜씨는 독자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기기에는 충분했다.

 

좀 더 자세히 책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1부인 두 개의 문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 '악하다'라는 하나의 범주로 정의되는 것을 부정하면서 전개된다. 다른 생물과 비교해 인간은 역설적 존재로서, 낮은 수준의 폭력성을 보이지만, 전쟁으로 말미암은 사망률은 매우 높다. 다음 장에서 저자는 공격성을 반응적 공격과 주도적 공격으로 나누어 기술한다.

  

반응적 공격은 분노, 공포, 혹은 둘을 모두 포함하는 임박한 위협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이며, 주도적 공격은 신중한 계획이 따르며 공격할 당시 감정이 없는 특징을 갖는다. 두 공격은 상이한 신경회로에 의해 제어되며, 유전성 정도가 다르다. 따라서 상이한 생물학적 토대를 가지며, 독립적으로 진화한다. 인간은 반응적 공격성이 낮고 주도적 공격성이 높은데, 이는 '자기 길들이기'와 관련이 있다. 생물을 유순하게 만드는, 즉 반응적 공격을 낮추는 자기 길들이기를 통한 진화는 실제로 인간이 생존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길들이기'라는 단어 탓에 길들이는 주체가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지만, 자기길들이기 현상은 야생에서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자기 길들이기가 왜 인간한테서 나타났는가에 관해서 기술한다. 저자는 역사로 돌아가 자기길들이기의 징후를 탐색한다. 인류는 공격적인 인간을 제압하기 위하여 사형 제도를 도입하였다. 가장 공격적인 사람이 제거되는 사형제도는 인간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수치심, 조롱, 배척으로 서로를 지배한다는 에밀 뒤르켐의 핵심원칙과 연결되는 면이 있다. 이 속에서 일반적인 인류는 지배욕구를 억누르는 데 성공한다. 언어의 발달은 특정 개인을 계획적으로 죽이는 데 필요한 것으로, 3부에서 기술할 연합을 형성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처럼 높은 지능과 문화를 배우는 능력, 사형제도와 같은 자기 길들이기는 인류를 '도덕적'으로 만들었다.

  

3부는 앞서 기술했듯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개념을 인간이라는 종의 도덕성 발달에 초점을 맞춘다. 10장에서는 도덕성에 대한 흥미로운 재정의를 시도한다. 사람들은 그 어떤 도덕적 원칙도 따르지 않으며, 무의식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편견의 영향을 받는다. 저자는 도덕적 감수성이 왜 사람들로 하여금 비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였는지를 질문한다. 비판에 민감한 감수성이 자기길들이기의 원인이 된 한결같이 새로운 사회적 특징을 출현시킨 덕분에 진화적인 성공을 증진시킨 것이다. 이처럼 반응적 공격성이 진화적으로 억제됐으나, 주도적 공격성은 선택됐으며, 역사에서는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주도적 공격은 행위자들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길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을 때만 행해진다. 만약 비용이 들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주도적 공격은 일어나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진화된 인간, 보상과 상황에 따른 주도적 공격성이 미덕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본성을 가진 인간을 구성한다. 저자는 우리의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한 모순적인 도덕성을 받아들이고 조직적 폭력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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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책을 읽으면서 <이타적 유전자>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타적 유전자>는 본래 제목은 The Origins of Virtue로, <이기적 유전자>의 이론을 확장하여 사회적인 인간에 적용해 내용을 전개한다. <이타적 유전자>의 저자는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호혜적 관계를 넘어선 미덕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즉, 인간의 타고난 순수한 선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호혜적 관계나 간접적 보상에서 기인한 인간의 이타적 행동은 사회의 조화에 크게 이바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타적 유전자>와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은 모두 인간을 특별히 악하거나 선하지 않은, 두 가지가 섞인 역설적인 본성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특히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은 조너선 하이트와 같이 인간의 도덕적 직감을 보다 분명한 편견으로 정의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우리의 도덕은 진화의 결과이며, '자기 길들이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책 전반에 흐르는 논조에 따라, '무엇이 선한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할 수 없지만 분명 공격성을 줄임으로써 피해자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더 '관대한 인간이 되는 것'은 과연 앞으로 우리가 진화해나갈 방향이기도 하다.

 

저자의 결론은 다원주의 사회에 적절할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희망을 준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아직도 진화의 연장선에 서 있다. 교육 보급과 기술 보급으로 현대사회의 지식은 전례 없는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민의 교양 수준은 매우 증가하여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고, 윤리적 이슈는 사회의 중요한 대화거리가 되었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저자가 말한 '자기 길들이기'의 연장이라고 본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점점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 그를 위해 인류는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여야 한다는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지난 역사를 미화 없이 기술하고, 마지막에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이 책은, 윤리에 더욱 민감해진 사회에게 권하는 따뜻한 격려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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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인간본성의 역설

The Goodness Paradox

 

 

지은이

리처드 랭엄

 

옮긴이

이유

 

발행일

2020년 11월 30일

 

쪽수

480쪽

 

가격

22,000원

 

ISBN

978-89-324-7431-1 03400

 

출판사

을유문화사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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