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것이 '좋은 죽음'인데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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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안락사'라는 단어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다.
"안락한 죽음? 편안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란 할까?" - 낭만적인 어휘로 포장해봤자 죽음은 죽음일 뿐이라고. / "거기에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라니..." - 죽음이라는 무겁고도 중요한 순간을, 건조하게 분류한 듯한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안락사는 언제나 모두의 논쟁 거리가 된다. 그 대상이 동물이 아닌 인간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아는 찬반 이슈 중, 가장 오랫동안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종교적 영역이 개입되는 순간 그 토론의 끝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기에 영화 <미 비포 유>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이지만,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도록 만드는 영화이다. <미 비포 유>의 남자 주인공 '윌'은 오토바이 사고로 평생 전신마비 환자로 살게 된다. 그리고 연인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선택한다.
영화 중반까지는 그런 '윌'을 만류하고 싶었다, 사실 아무리 먼 사이의 지인이라 할 지라도, 자살에 찬성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이게 괜찮은 삶일 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내 인생이 아니에요.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 영화 <미 비포 유> 중 '윌'의 대사 -
그러나 '윌'의 진중한 눈빛을 보며, 더 이상 그의 손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판단은 확고했으며,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일구어낸 삶을, 온 마음 온 몸을 다해 사랑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세상은 '윌'에게서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빼앗아 갔다.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 파리의 한 거리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던 일상마저 그에겐 사치스러운 꿈이 될 뿐이었다. 손끝조차 움직이기 어려운 현실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삶을 장식하고 스스로 빛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윌'은,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처절하고 혹독한 자연사 대신, 과거 자신의 품위와 닮은 안락사를 택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윌'에겐 그것이 유일한 '좋은 죽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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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적극적 안락사를 제도적으로 허용하자고 주장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영화 <미 비포 유> 속 '윌'의 선택이 사회적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이 아니다. 사실 '윌'의 삶을 경험해 보지도 않고서, 그의 안락사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가리는 것은 조금 오만한 태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점은, '윌'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삶이란 단순한 생명 존속의 의미가 아니었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활기'로서의 삶을 그는 바랐다.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 역시도 '좋은 삶'과 '좋은 죽음'에 대해 열렬히 고민해 보시길 바란다.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정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사실 삶에는 답이 없지 않은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그저 계속 스스로에게 질문해 주시길 바란다.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살아가자.
[한지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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