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찢어지는 심장을 부둥켜 안고 - 고통을 받아들인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 [시각예술]

고통은 짧게, 명성은 길게
글 입력 2020.11.3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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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오는 동안 두 번의 큰 사고를 당했는데, 첫 번째 사고는 경전철과 충돌한 것이고, 두 번째 사고는 디에고와 만난 것이다.”
 

 

 

화가 프리다 칼로의 탄생


 

[포맷변환]그림 사고.jpg

과거 사고의 기억을 회상한 밑그림 <사고>, 1926

 

 

오른발 소아마비로 태어나, 한창 무럭 커야 할 나이인 여섯 살에 성장이 멈춘 프리다 칼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의사의 꿈을 가득 품에 안고 멕시코의 최고 명문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고통의 여왕’의 타이틀이 마치 프리다 칼로인 것 마냥 그녀를 벼랑 끝까지 무너지게 만드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경전철과 충돌하게 되어 모든 뼈가 으스러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슬픔과 고통이 얇아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나면서 프리다 칼로의 절망은 점점 두께가 굵어진다. 그러나 쉽사리 절망하지 않고, 그녀는 스스로 갈 길을 현명하게 찾는다. 의학의 꿈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와 흐름을 따라서 ‘그림’이라는 돌파구를 택하게 된다.

 

 

 

악연의 남과 여



131.jpg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

 

 

어둠으로 가득했던 프리다 칼로에게도 드디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나 절대 만나서는 안 될 사랑이 다가와 그녀의 가슴에, 온 정신에 못을 박기 시작한다. 어리고 여린 21살의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정치가이자,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나이 차이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삶을 그려나가고 있는 듯한 둘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진취적이고 무형의 형태는 서로를 빠르게 흡수시켰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과 정치의 동반자로서 죽이 척척 맞는 소울메이트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치와 예술로 멕시코에서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남편을 위해 프리다 칼로는 많은 것을 바꾼다. 대표적으로 프리다 칼로를 떠오르면 생각나는 멕시코 테우아나족 전통의상을 입기 시작했고, 돌파구로 찾았던 그림에 손을 떼고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삶에 깨끗한 공기로 환기를 시켜줬던 모든 종이와 연필들을 외면한 채, 조신하게 남편 활동을 도왔다. 그러나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라는 말처럼, 프리다 칼로에게 디에고 리베라는 씻지 못할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녀를 처참하게 만든 배신을 때리게 된다.

 

디에고는 고칠 수 없는 타고난 바람둥이 기질이 있었던 남자였고, 이 기질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전 부인의 친구와 불륜을 저지른 경력이 있는 디에고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대놓고 넘으며 그 선을 질근질근 밟아주는 경우 없는 행동을 한다. 프리다의 친여동생과 불륜을 지른 후, 그는 프리다 칼로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남긴다.

 

 

“나는 이상하게도 한 여인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많은 상처를 주고 싶다. 프리다는 이런 나의 역겨운 성격으로 인한 희생양 중에 가장 대표적인 여인일 뿐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숨만 쉬고 있을 뿐, 모든 감각이 증발되어버리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아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여자로서 모든 자존심을 잃는 최악의 말을 한 번에 들었다. 이런 처참한 말을 듣고 어느 누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녀는 말로 되받아 쳐 같은 상처를 심어주기보다는, 찢어지는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단지 몇 번 찔렸을 뿐>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디에고에게 보낸다.

 

 

[포맷변환]프리다칼로,_단지_몇_번_찔렀을_뿐.jpg

그저 <단지 몇 번 찔렸을 뿐>이라고 표현하며

죽어가는 프리다 칼로의 내면 상태, 1935

 

 

사방팔방에 건조하게 흩어져 있는 피 자국들, 생명력 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두 가슴, 현실을 외면하려는 듯이 두 눈 꼭 감고 있는 얼굴. 그리고 그 위에서는 손에 칼을 들고 서있는 남자가 일그러진 표정 한 번 보이지 않고 우뚝 서 있다. 또한 프리다 칼로의 극적인 상황을 뚜렷이 보여주듯이, 액자에도 붉은 피는 물들어 가고 있었다.

 

 

 

고통은 행운의 열쇠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프리다 칼로에게는 새 삶이 열리게 된다. 화가로서도 인정받고, 남편 디에고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멕시코시티에서 다른 화가들과 함께 그룹 전에 참여한다. 이곳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개인전까지 제안받게 되는 승승장구를 달리게 된다.

 

예상치 못한 신체 사고와 남(의) 편에게 수차례 밟혀왔던 내면의 사고를 그림으로 치유하고, 승화시켜 만든 진솔한 걸작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전업 예술가로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실마리를 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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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의 과거(오른쪽)와 현재(왼쪽)의 세계관, 1939

 

 

입고 있는 옷은 다르지만, 자아가 같은 두 명의 프리다 칼로가 앉아있다. 오른쪽 프리다 칼로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에고의 사진을 잡고 있는 것이 포착된다. 자신을 무자비하게 칼로 찌른 남편이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정과 아픈 사랑 때문에 놓지 못하고 있었다.

 

복수를 하면서도 늘 디에고를 생각했고, 애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조그맣게 투입시킨다. 그러나 왼쪽 프리다 칼로는 날카로운 은색 가위를 잡은 모습이 보인다. 더 이상 남편 디에고의 그늘 안에서 벗어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세계적인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위해 잘라버리겠다는 그녀의 포부가 담겨 있다.

 

 

 

한 획을 그은 화가들의 멘탈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세계적인 화가 <절규>의 에드바르트 뭉크, <해바라기>의 빈센트 반 고흐, <예배 뒤의 환상>,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의 폴 고갱. 이들의 삶을 들여다봐도 인생의 그래프가 참으로 굴곡진 파도를 정통으로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고통에는 죽음, 돈, 술, 영혼 등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되는 모든 것들이었다. 이들은 고통을 파고들어 숨을 조르기보다는, 고통에서 영감을 찾아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산소 호흡기를 그림으로 파악하여 그냥 집중했다.

 

이들과 우리는 시대만 다를 뿐, 같은 인간으로 주위 환경에 통솔되며 살아간다. 이번에도 예술을 통해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던 건, 창의적인 사람은 구속과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자신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토대는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는 ‘개성화’를 찾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성화는 외적으로 보이는 독창적인 센스가 아닌, 고통을 승화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에게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손톱만큼도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이 내 눈앞에 닥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예술가처럼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어떤’ 의미로 가다듬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며, 우리 모두 프리다 칼로의 정신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다.

 

 

[조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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