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폭력과 고통의 엇박자 [공연예술]

가스라이팅과 아동학대, 치유가 부족한 트라우마
글 입력 2020.11.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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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익히 알려진 ‘메리 포핀스’ 이야기를 재해석한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하늘에서 우산을 타고 내려온 유모가 아이들을 돌봐준다는 신비롭고도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메리 포핀스’와는 다르게,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슬픈 소재를 다룬다. 심지어 극 중에는 약자에게 자행되는 범죄 장면도 포함되어 있기에 이 뮤지컬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공연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블랙메리포핀스>는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올해 공연까지 총 5연을 올리는 성과를 이뤘다. 그만큼 수요가 있는 공연이자 ‘스릴러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2012년 초연 이후로 올해까지 대학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블랙메리포핀스>를 거쳐 갔으니, 마니아 관객에게는 이 작품이 단순히 만족스러운 공연을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1. 관객을 사로잡는 'Overture'의 매력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그라첸 박사’. 그는 4명의 고아를 거두어 길렀고 아이들은 ‘메리 슈미트’라는 유모의 돌봄을 받으며 자랐다. 1926년, 그라첸 박사의 대저택에 불이 났고 유모 메리는 불길 속에서 아이들을 구출해낸다. 화재로 인해 집은 전부 타버렸으며 박사는 죽었다. 화재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메리가 지목되었지만, 그녀는 종적을 감춘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는 화재 이후 아이들은 각자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고 12년의 세월이 흐른다.


이 뮤지컬의 매력은 위 문단의 내용을 담은 ‘Overture(서곡)’에서 드러난다.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들은 무대 앞쪽에 드리워진 흰 천을 이용해 그림자극을 펼친다. 동시에 음침하지만 강렬한 멜로디와 가사로 이루어진 음악이 흘러나온다. 관객은 이 과정을 통해 뮤지컬의 기본적인 줄거리를 이해한 후 단숨에 극에 몰입하게 된다. 이 극을 관람한 관객들이 입을 모아 극찬하는 ‘Overture’는 ‘잔혹 동화’를 표방하는 <블랙메리포핀스>를 상징하는 장면이자, 음악과 연출이 영민하게 합을 이루어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2. '블랙'의 이유



화재 사건이 일어난 지 12년 후, 아이들은 20대의 성인이 되었다. 첫째 ‘한스’는 변호사가 되었다. 한스는 과거 화재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로부터 수첩을 얻었는데, 그 수첩은 나치당의 비밀 일지였다. 한스는 수첩을 통해 과거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동생들을 한곳에 모은다. 화가가 된 둘째 ‘헤르만’, 교사가 된 셋째 ‘안나’, 출판사에서 교정 작업을 하는 막내 ‘요나스’까지, 화재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내기 위해 네 명의 인물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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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한스, 헤르만, 안나, 요나스는 서로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진실을 마주한다. 사실 그라첸 박사는 독일 나치당의 수하이자 괴벨스의 오른팔이었으며, 아이들을 정성으로 돌보던 유모 메리는 박사의 연구 조교였다. 그들은 아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다. 즉, 오갈 데 없는 고아 중에서도 지능이 높고 신체적으로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하여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어 트라우마를 만든 것이다. 아이들의 상처받은 기억을 제거하기 위해 메리는 최면요법을 사용했고, 아이들은 상처가 난 몸과 마음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살아갔다.


이 극은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뒤섞이며 진행된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꽤 복잡하므로 집중해서 공연을 보아야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소극장 공연의 특성상 복잡한 무대장치를 사용하기 어려우므로 연출 대부분은 사각형의 회전 무대를 통해 이루어진다. 소품을 많이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회전하는 무대를 이용한 동선과 안무가 적절히 맞춰져 있으며, 감정을 파고드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짜임새가 탄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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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과거, 네 명의 아이들은 수요일마다 기억을 잃는 자신들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고 최면에 걸려 하루 전체의 기억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다시 돌아온 수요일, 최면에서 벗어날 방법을 궁리한 아이들은 술을 마신 후 실험에 참여한다. 그날의 실험 대상은 셋째 안나였다. 박사의 실험은 안나를 강간하는 것이었고, 누나가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던 요나스는 박사를 밀쳐 살해한다.


아이들은 혼란에 빠지고, 헤르만은 아버지를 죽인 동생 요나스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박사의 시체를 칼로 찌른다. 이후 아이들은 시체에 불을 질러 증거를 인멸하기로 하지만, 그 순간 유모 메리가 들어와 이 모든 장면을 목격한다. 메리는 자신과 박사의 실험이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이 뒤집어쓰겠다고 다짐하고 아이들의 기억을 최면으로 지워낸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모든 기억을 되찾은 아이들은 ‘로먼 박사’의 방에 모인다. 로먼 박사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한스는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동행하겠다”라고 말하고, 다른 아이들도 이에 동감하며 극은 마무리된다.

 

 

 

#3. 블랙메리포핀스, 그녀 또한 범죄자일 뿐


 

이 뮤지컬은 그라첸 박사와 메리에 의해 학대당한 아이들이 진실을 마주하는 서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그라첸 박사’는 극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아픈 기억의 주축이 되는 인물이다. 박사가 진행한 ‘실험’의 과정이란 아이들의 육체와 정신에 상처를 남긴 후 메리의 최면으로 기억을 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비인간적인 실험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박사와 메리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라첸 박사는 아동 학대범이자 아동 성범죄자다. 그는 자신이 거둔 아이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저택에서 불타 죽는다. 메리 슈미트 또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사상을 믿으면서, 아이들을 실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 인물이다. 그녀는 성인이 된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라첸 박사는 극 중에서 완악한 범죄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기에 그의 죽음은 꽤 정당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메리의 죽음은 조금 다르다. 아이들은 그녀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믿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돌보았던 유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리의 자살은 ‘범죄자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왜곡된 사랑을 가진 유모의 죽음’과 같은 모습으로 포장되어 묘사된다. 그렇지만 정확히 판단하면 메리는 박사와 같은 끔찍한 범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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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박사를 방관했으며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최면을 걸어 고통의 굴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가스라이팅(Gas-lighting) 행위다. 아이들과 동화책을 읽으며 웃음 짓던 메리의 모습을 돌이켜보자. 마치 부모의 사랑과 같이 묘사되었지만, 그것은 절대 사랑이 아니다. 메리는 아이들의 고통을 묵인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했다. 전형적이고 끔찍한 아동학대다. 따라서 아이들은 어른이 된 후에 메리가 자신을 학대한 범죄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도 혼란스러워한다. 심지어 그녀는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진실을 밝히지 않고 무책임한 자살을 택한다.


이 극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메리의 행동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교묘하게 아이들을 속여온 범죄자다. 아이들의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진실을 숨겼다. 이렇게 치밀하고 무자비한 인물이 아이들이 최면에서 깨어날 경우를 대비하지 못했단 말인가? 게다가 박사를 죽인 아이들의 모습을 마주한 그녀가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급작스럽게 느껴진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나름의 죄책감을 담아 사과하는 모습도 다소 작위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다.


박사와 메리가 어떤 인물인지 고민해 보고, 메리의 서사에 개연성이 있는지 따져보기도 했지만 사실 관객이 범죄자에게 필요 이상의 서사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솔직히 나는 이 뮤지컬 속 메리 슈미트와 그라첸 박사에게 동정심이라는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공리주의적 사상에서 비롯된 실험’은 메리와 박사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심지어 메리는 성인이 된 한스를 만나 "멋지지 않니? 소수의 고통으로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이라는 말을 남긴다. 그녀는 그저 ‘멋있다’라는 이유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저버렸단 말인가.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것으로 보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메리의 회개의 여부를 떠나, 아이들을 학대한 범죄자인 그녀에게는 ‘블랙 메리 포핀스’라는 흥미로운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그라첸 박사와 같은 지질한 범죄자였을 뿐이다.

 

 

 

#4. 폭력과 고통의 엇박자



이 뮤지컬에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의 연령대는 낮은 편이다. 화재 사건 당시의 나이로 한스는 15살, 헤르만과 안나는 14살, 막내 요나스는 12살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그들이 겪는 학대는 심각한 수준에 속한다. 아이들은 입양된 이후로 어릴 적부터 수년 동안 정신적 학대, 육체적 학대, 성적 학대를 지속해서 받아온 것이다.


<블랙메리포핀스>에서 이 아이들이 상처를 씻고 치유하는 모습은 후반부에 짧게 드러난다. 모든 진실을 깨닫게 된 후에,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과 동행하겠다’라며 아픔을 안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전부다. 관객으로서는 이들이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아마 비참한 일을 겪은 등장인물들이 과거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전달하고자 의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다르다. 아동학대로 인한 상처는 단순한 결심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대를 당한 아동은 성인이 된 후에도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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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를 앓는 막내 요나스, 형제자매가 모두 모여야 한다는 이유로 요나스를 억지로 납치한 한스, 작품 활동에서 분노를 느끼는 화가 헤르만(그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앓는 것으로 추측된다), 아동 성폭력이라는 씻을 수 없는 학대를 당한 안나까지, 모든 인물에게 결핍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와 같이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는 지속적인 정신과 치료가 꼭 필요하다. 이들은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이기에 자신의 아픔을 지고 살겠다는 결심만으로는 행복하게 살기 힘들 것이다.

 

만약 작가가 어린아이들을 끔찍한 폭력의 피해자로 설정하여 성인이 된 후에도 고통받는 캐릭터가 되게끔 이야기를 구축했다면, 트라우마의 치유라는 섬세한 과정도 함께 다뤘어야 한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했어야 한다. 공연 내내 구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던 캐릭터가 ‘불행과 동행하여 행복해지겠다’라는 추상적인 대사를 던짐으로써 모든 내용이 마무리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 극에서 등장하는 ‘안나’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전형적인 ‘여린 여자’ 캐릭터다. 그녀는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고 상처받으며,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 사실 뮤지컬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법은 여러 번 지적되었던 문제다. 남자 주인공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또는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해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는 한없이 무너지고 고통받아왔다.


이 뮤지컬에서 안나라는 인물을 묘사하려면 ‘헤르만과 깊은 형제애가 있는 아이’, 또는 ‘양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한 아이’라는 설명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성인이 된 후 그녀가 가진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묘사도 없을뿐더러, 그녀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극적 장치도 부족하다. 다른 형제들처럼 외면적인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좋게 말하면 얌전하고 여린 캐릭터지만, 나쁘게 말하면 주체성 없이 특정 사건에 희생자로서 소모되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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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란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내는 범죄이기에, 매체에서 소재로 사용될 때도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그러나 이 극에서는 그런 조심스러움을 찾기 어렵다. 안나를 수식하는 ‘아동 성범죄에 노출된 여자아이’라는 자극적인 인물 설정은 극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관객이 흘리는 눈물은 그녀가 겪은 아픔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눈물이라기보다는 충격에서 비롯된 눈물일 뿐이다.


상술했듯이 성범죄의 아픔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려면 그에 상응하는 치료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 극에서 안나라는 인물이 치유를 받고 극복하여 성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프고 또 아플 뿐이다. 난 묻고 싶다. 치유 없는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블랙메리포핀스>에서는 ‘아이’와 ‘여성’이라는 약자를 희생자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이 겪는 폭력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것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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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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