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은 사람을 닮는다 [사람]

나의 첫 독립을 맞이하며
글 입력 2020.10.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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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을 닮는다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언니와 함께 살던 서울의 작은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됐다. 혈혈단신 지방에서 올라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독립은 아니었기에, 물 흐르듯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생애 처음 시작한 자취는 지금껏 겪지 못한 낯선 감정을 자주 느꼈다. 둘이 살며 묵혀둔 먼지를 직접 닦아내고,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추려내고, 바라기만 했던 편안하고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에 신이 나기도 했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 공간이 주 콘텐츠인 매거진에서 일하는 내가, 많은 이의 집을 보며 깨달은 사실이다. 이젠 나의 차례다. 나를 닮은 집, 작고 아담한 공간이지만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채워갈 수 있는 사실이 즐거웠다. 자취방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흔한 모습을 따를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필요한 것만 채우면 된다. 직사각형의 작은 집을 채우려면 내가 누구인지부터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사실이 오늘의 글을 쓰게 만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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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부터


 

나라는 사람을 잘 알아야만 어떤 곳에서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 수 있다. 집은 가장 민낯의 나를 온전히 보살피는 곳이 돼야 한다. ‘집 다운 집’은 어떤 공간일까? 오프라인 커뮤니티와 사교적인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홀로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는 시간에 행복을 느낀다. 특히 직업 특성상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책상과 의자는 가장 우선 순위로 선택하는 가구였다.


넓은 책상으로 집 안의 많은 면적을 채우는 대신, 늘 한 곳에 거대한 부피로 있어야만 하는 침대를 선택하지 않았다. 침대로 인해서 손에 닿지 않는 먼지가 쌓이는 게 싫었다. 잘 때를 제외하고 거의 쓰지 않는데, 집 안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게 꽤 신경 쓰였다. 무기력이라는 감정이 종종 올라오면, 할 일을 제쳐두고 눕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했다.


청소기를 자주 밀고, 집 안 곳곳의 먼지를 수시로 닦아내는 생활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나의 모습이다.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 중심이 되는 가구를 책상으로 선택하니 예전보다 쾌적한 일상이 시작됐다. 잠자리에 쓰인 이불은 정돈해 수납장에 넣고, 청소기로 곳곳의 먼지를 없앤다. 가장 편안하길 바라며 오랜 시간 고민한 원목 책상 위엔 조명과 노트북과 책이 놓인다. 마감 때마다 수시로 하게 되는 재택 근무도 이젠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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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이 필요할까?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선택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살아가며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은 무엇인가’였다. 언니와 짐을 분리하여, 지금껏 온전히 '내 것'으로 쓰고 있던 물건의 양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물론 모두 바닥에 늘어놓자면 ‘미니멀리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최소한으로 살고 있던 건 아니지만, 예상보다 꽤 적은 물건으로 지금까지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고향 집의 풍경 속에서, 내가 차지하던 영역과 물건이 얼마나 됐는지 한 번도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선 언니와 짐을 섞어 생활하니 얼마나 많은 물건으로 생활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상적으로 먹고, 자고, 꾸미는 행위에 어떤 종류의 물건이 쓰이는지도 깨닫지 못했고, 그저 사놨으니 썼던 것도 많았다.


백지에 가까운 상태의 환경에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자취생이 흔히 쓰는 에어 프라이어는 나의 식습관에 쓰이지 않는 물건이다. 그린 스무디를 자주 마시는 나에게 믹서기는 필수 가전이다. 음악으로 일상을 치유하는 나에겐 CD 플레이어는 오랜 친구다. 이렇게 자주 손이 가고, 없으면 어려움을 겪는 물건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고민하게 됐다.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걸 알면서도 욕심부린 물건은 장바구니에 오랜 시간 담아놓고, 나중으로 구매를 미뤄뒀다. 이렇게 하나씩 선택해 보니 ‘물질에 대한 욕심’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다. 혼자 살게 되며 시작한 이 고민은, 어떤 물건을 집 안에 들여놓더라도 그 필요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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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게 좋아



요즘은 집을 꾸밀 때 도움을 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참 많다. 해시태그 하나로 타인의 집은 어떤 물건으로, 어떻게 꾸몄는지 한눈에 볼 수 있고, ‘랜선 집들이’ 영상은 어떤 매체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하지만 남이 꾸며놓은 집은 단지 참고용일뿐이다. 새롭게 집을 꾸미며 원했던 인테리어는 ‘누구도 따라 하지 않는 정갈한 집’이다.


모든 가구를 제 자리에 배치하고, 내가 직접 꾸민 첫 집에 놀러와 언니가 말한 소감은 ‘그림 하나를 붙여도 너 같다’라는 말이었다. 제한된 예산과 아담한 공간이지만, 그 속에 놓인 물건 하나마다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는 말을 해줬다. 집에 대한 깊은 고민이 집 안의 기운으로 느껴진다는 확신이 들었다.


싼 제품도, 유행하는 스타일도 세상에 많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가구와 소품 중에서도 다른 물건과 조화를 이루는지, 매일 손이 가는지, 디자인이 과장되거나 지나치지 않는지를 몇 번이나 고민하고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몇 개 없는 가구로 집 안을 채워 넣어도 풍족하고 꽉 차있음을 느낀다.


진한 원목과 녹음의 자연, 무채색이 주는 단정함으로 채운 나만의 작은 집이 완성됐다. 매일 이 속에서 눈을 뜨고 생활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나를 닮은 집이 내뿜는 에너지는, 나를 더욱 나답게 한다는 것을. 앞으로 또 어떤 집에서, 어떤 형태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편안한 공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인생의 큰 기회였다. 소박하지만 가장 편안한 이 공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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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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