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빌딩과 리브랜딩 (실패 편) - 축구에서 브랜딩을 찾다 #3

글 입력 2020.09.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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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연전연패 중이다. 지난 시즌엔 간신히 강등권을 면했다.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를 밥 먹듯이 오가던 찬란한 시절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언론과 팬들은 연일 혹평을 쏟아낸다. 물론 팀의 추락을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던 건 아니다. 감독도 바꿨고, 코칭스태프들도 모두 교체했다. 구단주를 어렵게 설득해 비싼 선수들도 데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순위는 하위권이다. 아까운 돈만 날렸다. 감독을 또 바꿔야 하나 싶지만 이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다.

 

보통 이런 순간, 많은 구단들이 ‘리빌딩’ 카드를 꺼내든다. ‘리빌딩’은 팀의 구성원이나 시스템을 리셋하여 새롭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보통은 젊은 유망주들 위주로 팀을 개편하여 장기적인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으로 자주 쓰인다. 신체를 사용하는 스포츠 경기의 특성상, 선수들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기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단으로서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대교체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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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상황은 기업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잘 팔리던 제품의 판매량이 갑자기 떨어진다던가, 과거에 비해 마케팅 효과가 미미하다던가 등등. 이런 경우, 기업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빌딩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 기업의 리빌딩은 ‘리브랜딩’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모든 브랜딩 과정을 리셋시키는 것이다. 소비자와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느낌 덕분일까? 리빌딩과 리브랜딩은 부진을 겪고 있는 구단이나 기업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전에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리빌딩과 리브랜딩은 그렇게 쉽게 시도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리빌딩은 단순히 기존의 선수단을 교체하는 것에 의의가 있지 않다. 무작정 젊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중요한 건 새로 팀의 중심이 될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팀에 적응하고, 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있다. 새롭게 변화하는 팀의 축구를 보는 팬과 언론의 반응 역시 중요하다. 만약 이를 명심하지 않는다면 끊임없는 리빌딩의 늪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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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 밀란’이라는 팀이 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다. 이탈리아 축구 리그인 세리에 A를 18회나 우승 했고, 리그컵 우승도 5번이나 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우승컵을 7번 들어올렸다. 말그대로 강팀 중에 강팀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AC 밀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우승은 커녕 챔피언스 리그 진출도 벌써 몇 시즌 째 이루지 못하고 있다.

 

사실 AC 밀란의 실패는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06-07 시즌 AC 밀란은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지만 주축 선수 대부분이 축구선수로서는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적절한 영입을 통해 세대교체를 단행해야 했지만 AC 밀란의 보드진은 게을렀다. 거기다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도 이어졌다. 당연히 성적도 떨어졌다.

 

결국 AC 밀란은 12-13 시즌에 리빌딩을 단행했다. 인자기, 셰도르프, 가투소 등의 핵심 선수들을 내보내고 엘샤라위 등의 신예와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나갔다. 리빌딩 첫해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대했던 유망주들은 팀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했다. 구단주는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켰고, 보드진은 선수영입에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팀이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AC 밀란의 리빌딩은 실패했다. 거기에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AC 밀란이 부진한 데에는 선수단 뿐만 아니라 시스템의 책임도 크다. 애초에 선수들의 세대교체가 늦어진 것도,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도 무능한 시스템의 탓이었다. 하지만 AC 밀란은 이를 개선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선수단과 감독들만 손을 봤을 뿐이다(그나마도 성실하지 않았다). 그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옷만 갈아입었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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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리브랜딩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브랜드의 로고나 슬로건, 패키지 디자인 등을 바꾼다고 리브랜딩이 되는 게 아니다. 브랜드의 핵심은 그런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고나 슬로건 등은 브랜드를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실제로 미국의 ‘sign.com’에서 성인 남녀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의 결과를 살펴보면 애플, 아디다스, 스타벅스 등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정확하게 그린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만약 브랜드의 로고가 브랜드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정말 중요했다면 로고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핵심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해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에 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소비하면서 얻는 특별한 경험이야말로 브랜드의 정수다. 우리에게 스타벅스는 커피와 나무 책상, 들려오는 음악, 시험공부, 누군가와의 대화 등으로 기억된다. 이 경험을 기반으로 소비자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자신의 마음속에 각인한다. 로고는 그저 스타벅스를 떠올릴 때 필요한 매개체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리빌딩과 리브랜딩은 신중하게 시도되어야 한다. 로고나 슬로건처럼 겉모습을 바꾸는 것에 그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브랜드 자산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브랜드가 이제껏 쌓아 왔던 고객과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브랜드의 고객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지, 아니면 이제까지 쌓아온 추억에 대한 배신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장과 소비자의 상황이나 특성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는 변함없고 꾸준한 브랜드를 더 선호한다. 따라서 단순히 브랜드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이유로, 브랜드 네임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리브랜딩을 시도하려는 거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가 자꾸 말을 바꾸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듯이, 소비자 역시 브랜드의 가치가 자주 바뀌는 브랜드는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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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코카콜라’는 희대의 도전을 감행했다. 99년간 유지해왔던 코카콜라 레시피를 변경하여 ‘뉴코크’라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뉴코크 출시 당시 코카콜라의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경쟁사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에서의 영향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자 코카콜라 내부에서는 자칫하면 시장 내1위 자리를 넘겨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싹텄다.

 

코카콜라는 이 위기를 신제품 출시로 타개하고자 했다.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입맛과 취향을 고려하여 새로운 코카콜라 레시피를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1886년부터 쭉 이어져온 레시피를 바꾸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자신만만했다. 그만큼 시장조사에 힘을 쏟았고, 사전에 20만 명의 소비자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테스트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대부분의 테스트 참여자들이 다른 경쟁사의 제품보다 뉴코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1985년 4월 23일, 코카콜라는 ‘뉴코크’ 출시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경영진은 곧 자신들의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전역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가 났다. TV나 라디오 등에서 뉴코크 광고가 나올 때마다 야유를 했고, 급기야 항의 시위까지 벌였다. 당황한 경영진은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 해답은 바로 ‘이야기’에 있었다.

 

 

“코카콜라는 전통을 저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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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는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가 제품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신들의 제품이 시장에서 부진한 이유를 콜라의 맛에서 찾았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고, 신제품을 출시하여 브랜드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에게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99년간 이어져 내려온 역사에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마시며 저마다의 추억과 이야기를 쌓아왔다. 농장 일이 끝난 후 아버지와 함께 나눠 마시던 코카콜라가, 연인과 데이트를 하며 함께 마셨던 코카콜라가, 방과 후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친구가 건네 준 코카콜라가 얼마나 달콤했고 행복한 기억이었던가.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함께 한 시간과 추억의 더께가 거기 있었다. 반면 뉴코크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추억이 담긴 오리지널 코크를 돌려 달라며 야유와 항의를 했다. 코카콜라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소중한 것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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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카콜라는 출시 2달 만에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오리지널 코크의 재생산을 알렸다. 언론은 이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번 소동을 통해 코카콜라는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배웠다. 물론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아는 것은 덤이다.

 

한편 우리 역시 이번 사례를 보며 두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첫째, 브랜드의 주인은 소비자라는 것이다. 브랜드를 아끼고 애정 하는 소비자가 없다면, 브랜드 역시 존재할 수가 없다. 둘째, 소비자와의 소통이 배제되어 있는 리브랜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코카콜라가 리브랜딩 과정에서 오리지널 코크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을 조금만 생각했다면 이런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변하는 것과 변화하는 것.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트렌드에 맞춰 브랜드에 적절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과 모든 것을 싹 다 바꾸는 리브랜딩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리브랜딩을 고려하고 있다면 기업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브랜드가 변하는 것을 추구하는지, 변화하는 것을 추구하는지. 당신의 고객은 변하는 것을 원하는지, 변화하는 것을 원하는지. 말그대로 한 끗 차이지만 결과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만약 이를 들여다보려는 제대로 된 시도와 노력이 없다면 리브랜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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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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