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화길 '음복'과 알리 에스터의 '유전' 함께 보기 [문화 전반]

가부장제 속 '무지'의 권력에 대해서
글 입력 2020.09.1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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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관용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아주 오랫동안 지식과 앎은 권력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여겨져 왔고,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동시에 금기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았다. 무언가를 '아는 것'이 권력층이자 지배층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지배층은 피지배층이 자신들이 '아는 것'을 모르기 바랐던 것이다. '푸른 수염'의 정체를 알게 된 푸른 수염의 아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 역시 이러한 지배층의 욕구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외에도 '아는 것'에 대한 금기를 이용하여 문학, 영화, 게임 등 많은 작품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이를 통해 감상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2020년 젊은 작가상을 받은 강화길의 '음복'은 아는 것이 곧 힘, 아는 이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일반적 관념을 비틀어 긴장감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화자는 7년 연애한 남자와 결혼한 지 3개월 된 여성이다. 화자는 처음으로 남편 집안의 제사에 참석하게 되고, 소설은 이 제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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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진행되면서 화자는 남편의 집안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베트남전 참전 후, 남편의 할아버지는 일반적인 한식을 먹기 어려워했다는 것, 그래서 화자의 시어머니는 남편을 위해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토마토 고기찜'을 만들었다는 것, 그런데 남편의 할머니에게는 이 음식은 전쟁을 겪은 이후 달라진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아픈 음식이었다는 것, 남편과 동갑인 남편의 사촌은 집안에서의 차별 때문에 어느샌가 부 터 제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등이 남편 집안의 제사에서 화자가 알게 되는 것들이다.

 

반면 화자의 남편은 할머니가 '토마토 고기찜'에 가지고 있는 거부감을 모른다. 여성인 남편의 사촌이 받아온 차별을 모른다. 자신의 어머니가 왜 원하지도 않는 시댁의 제사를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 정원이 왜 어느 샌가부터 제사에 나오지 않는지 모른다.

 

강화길의 '음복'에서도 무지와 앎의 차이는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 경우, 무지한 사람은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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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남편은, 익숙하지 않음에도 시아버지를 위해 '토마토 고기찜'을 준비해야 하는, 시댁의 제사를 이어나가야 하는 어머니의 의무감을 몰라도 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토마토 고기찜'을 마냥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제사를 지내는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있었다. 차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화자는 남편 시댁의 제사에 첫 방문이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집안에 존재하는 의무감과 차별을 알 수밖에 없었다. 화자의 어머니 역시 비슷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차이는 '젠더'의 차이에서 온다. 화자의 시어머니처럼 제사의 음식을 도맡아 준비해야 하는 일, 화자 남편의 사촌처럼 남자 형제는 받지 않아도 되는 진학의 부담을 받는 것 모두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에게 주어진 차별이었다. 그리고 이 차별은 내부적으로도 다시 공고해진다. 소설의 내부에서 할머니는 엄마에게, 엄마는 딸에게, 즉, 여성은 여성에게 '네가 아니면 누가 이해해주겠니'라는 말을 꺼내며, 화자의 시어머니는 화자에게 아들이 '모르게 해'달라고 한다. 화자 역시 남편의 '모르는 얼굴', 즉 '걱정이 잠잠해지는 그늘이 완전히 사라진 얼굴'을 좋아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유전>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 관련하여 강화길의 <음복>과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찰리와 피터의 엄마 애니의 시점에서 전개가 되며, 강화길의 <음복>이 남편 집 안에 있는 권력 구조, 비밀에 대해서 알아가는 구조로 진행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애니가 자신의 가족에 존재하고 있는 비밀에 대해서 알아가는 구조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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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에서 중심이 되는 딸 찰리, 그의 엄마 애니, 그리고 찰리의 할머니이자 애니의 엄마인 엘런 리는 자신들의 가족 내에 존재하는 비밀을 확실하게 알거나,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거나,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알게 된다. 반면, 같은 가족일지라도 남성, 즉 애니의 남편 스티브, 고등학생 아들인 피터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족 내에 존재하는 비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알기 전에 파멸을 맞는다)

 

이 비밀은 중세 악마학에서 거론되는 악마 '파이몬'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파이몬은 지옥의 왕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남자라고 한다. 애니의 집안은 대대로 이 파이몬을 섬기는 집안이었다. 파이몬은 남성에게만 깃들기 때문에, 이 집안의 여성들은 자기 아들을 희생하여 파이몬을 현생으로 끌어들이고, 섬긴다. 애니의 엄마 역시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려고 했으나 아들, 즉 애니 형제의 몸에 파이몬이 깃들기 전에 그가 자살해 버려 엘런 리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손녀인 찰리를 임시 파이몬의 베슬(현생의 몸)로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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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인 엘런 리는 파이몬을 섬긴다는 가족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 찰리는 파이몬의 베슬로써, 가족의 비밀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파이몬을 적극적으로 섬기던 자신의 할머니 엘런 리가 사망하자 '이제 누가 나를 돌봐주냐'고 물으며 남성인 아빠나 오빠가 아닌 '엄마'만을 언급하며 질문을 한 것, 피터를 최종적인 파이몬의 숙주로 삼기 위해 머리가 잘려 사망하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듯이 머리가 잘린 동물들로 토템들을 만들던 것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애니는 찰리의 죽음 뒤 이웃 조안을 만나게 되면서 영적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된다. 처음 애니는 조안이 자신의 죽은 딸 찰리와 함께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조안 역시 파이몬왕을 섬기는 사람 중 한 명이며 조안이 어머니와 그리고 파이몬왕을 섬기는 단체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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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피터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에게 닥쳐오는 이상 현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피터와 찰리의 아버지 스티브 역시 자신 가족에게 벌어지는 이상 현상과, 파이몬의 정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급작스럽게 불타버린다.

 

따라서, 강화길의 <음복>에서 가족 내에서 남편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 의무를 겪으면서도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차별을 '아는 것'이 여성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리 애스터의 <유전>에서도 파이몬 왕을 섬긴다는 의무를 '아는 것'은 여성에게만 한정된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알리 에스터의 <유전>에서 집안의 여성들이 파이몬을 섬긴다는 것은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와 차별을 은유하고 있다고도 읽어 낼 수 있다.

 

<음복>에서도, <유전>에서도, 이 의무와 차별을 '아는 자'이든, '모르는 자'이든, 일단 가부장제에 굴레 속에 있는 이들은 나름의 불행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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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자'들은 그 무지에서 불행이 비롯된다. 강화길의 <음복>에서 화자는 화자 남편의 '걱정이 잠잠해지는 그늘이 완전히 사라진 얼굴'을 좋아하며, 미래 자신의 딸이 자신의 남편처럼 '아무것도 모르'기만을 바라지만, 이처럼 무지한 상태가 완벽히 행복한 상태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토마토 고기찜을 먹는 화자 남편의 얼굴이 할머니에게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겹치고, 남편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사촌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들을 고려하면, 무지는 곧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타인에게 가해를 입힐 가능성을 높인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차별주의자의 '몰라서 그랬다'가 더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금의 시대에서, 이들의 무지는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결국 이 권력을 통해 미련하고 우악스러운-무지의 속뜻-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 <음복>에서의 '모르는 자'의 불행이다.

 

아리에스터의 <유전>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들의 불행이 나타난다. 자신 가족이 겪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버지는 별안간 불에 타 죽고, 아들 피터는 공포에 시달리다가 죽게 된다.

 

반면, '아는 자'들에 대한 고통에 대해서는 강화길의 <음복>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아리에스터의 <유전>에서는 은유적으로 나타난다. 강화길의 <음복>에서는 변해버린 자신의 남편을 겪어야 하는 할머니, 자신의 시아버지를 위해, 또 시댁의 제사를 위해 노동해야 했던 어머니, 남편은 '모르게 해 줄 것'을 당부받은 나까지 여성들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다.

 

아리에스터의 <유전>에서는 일견 가족의 여성들이 파이몬을 섬기는 것, 파이몬이 되는 것이라는 목표에 성공함으로써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고통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할머니인 앨런 리는 파이몬을 섬긴다는 목표를 위해 자기 아들과 손녀 찰리를 희생시켰으며, 찰리 역시 결국 피터의 몸에 들어가 파이몬으로써 자리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목이 잘리고 자신의 몸을 잃는 등의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애니가 겪는 고통은 더욱 극심하다. 애니는 파이몬을 섬기길 거부한다. 파이몬을 섬기는 것이 가부장제 안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와 차별을 은유한다고 할 때, 애니는 가부장제의 질서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 결과 애니는 집안의 비밀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천장에 매달려 자신의 목을 자르는 형태로 파멸을 맞게 된다.

 

이처럼 강화길의 <음복>과 아리에스터의 <유전> 모두 화자, 혹은 주요 인물이 한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구조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분석해 보았을 때, 두 작품 모두 가부장제 내에서의 여성에게 주어지는 억압과 차별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고 읽어 낼 수 있으며, '모르는 것'이 곧 권력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가부장제 권력 하에 있는 인물들 모두 앎과 무지에 상관없이 고통을 겪게 된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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