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당신에게 [영화]

드류 고다드의 <캐빈 인 더 우즈>
글 입력 2020.09.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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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장르인 ‘공포영화’는 그 장르만이 가진 특별함 때문에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장르이기도 하다. 공포영화가 주는 쾌감/스릴을 극대화하기 위해 새벽에, 불을 전부 꺼놓고 홀로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TV에 공포영화 예고편만 나와도 눈을 질끈 사람도 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축에 속하는데, <겟 아웃>이나 <유전>, <미드소마> 등 스토리가 흥미로워 보이는 공포영화가 개봉하면 기대감을 안고 상영관으로 들어가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하면 눈을 감고 오직 청각으로만 스토리를 파악하는 편이다. 그러니 공포영화를 즐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공포영화를 볼 때만 느껴지는 쾌감은 분명히 있다.

 

그 쾌감이 공포영화의 중요한 셀링포인트로 여겨지다 보니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들을 집어넣는 것에만 집중해 이야기의 개연성과 완성도가 떨어지는 공포영화도 종종 볼 수 있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텐데, 그렇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드류 고다드 감독의 <캐빈 인 더 우즈>(2011)는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전형적인 장치들을 사용하기에 급급한 영화들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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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인 더 우즈>의 장르는 공포, 액션, 코미디, SF를 넘나든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하나는 연구 기관에서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는 듯한 실험이고, 하나는 다섯 명의 대학생들이 떠난 로드트립이다.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 그들의 목적지는 ‘숲 속의 오두막’이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가다 마주친 수상한 노인은 마치 그들에게 닥칠 위험을 암시하듯 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리고 마침내 도착한 캐빈의 분위기는 묘하게 음산하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도입부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연구 기관의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실험이 바로 학생들의 로드트립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 실험의 시나리오는 다섯 명의 비자발적인 참가자 모두가 죽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숲속의 캐빈은 일종의 무대인 셈이고, 참가자들이 캐빈 곳곳에 있는 문자 그대로의 ‘장치’들을 건드리면 그에 맞는 괴물들이 무대에 등장해 참가자들을 죽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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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영화가 공포영화의 클리셰, 이를테면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지하실의 문을 연다거나, 굳이 안전한 집을 놔두고 밖으로 나온 남녀 커플이 애정 행각을 벌이던 중 정체 모를 존재에게 습격받는다거나 하는 것들을 철저하게 연구 기관의 통제 속에 작동하는 장치의 일부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연구원들은 숲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커트(크리스 헴스워스)와 줄리(안나 허치슨)가 방심한 사이에 좀비의 습격을 받도록 페로몬을 분사하고, 커트가 가까스로 도망쳐 캐빈으로 돌아오자 캐빈 안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약’ 같은 것을 분사해 남아있는 네 명의 참가자가 흩어지도록 유도한다.

 

공포 영화를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단독 행동을 하다 변을 당하는 인물이 꼭 등장하곤 하는데, 이런 유형이 너무 많은 영화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이제는 한 캐릭터를 적당한 타이밍에 제거하기 위한 게으른 방법처럼 느껴진다.

 

<캐빈 인 더 우즈>가 재치 있게 비꼬고 있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왜 공포영화에서는 금발의 여성이 첫 번째로 죽고, 인물들은 자꾸 단독행동을 하고, (금발의 여성과는 대비되는, 차분하고 침착한) 여성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고통받는 모습이 나오는 것일까? <캐빈 인 더 우즈>는 이 질문에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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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후반부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마티(프란 크랜즈)와 데이나(크리스틴 코놀리)는 이 여행이 하나의 거대한 쇼였다는 것을 알아채고 좀비들이 등장했던 통로를 통해 이 실험을 지켜보고 있는 연구소로 향한다. 연구소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마치 감옥처럼 구획된 케이지들에 갇혀 있는 늑대인간, 드라큘라, 에일리언, 용을 비롯한 수많은 괴물이다. 다양한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괴물들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장면은 공포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구소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마티와 데이나는 연구소의 수장 격 되는 인물에게서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듣게 되는데, 이유는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하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에 대한 비판을 하는 영화다.

 

그러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쾌감을 기대하고 <캐빈 인 더 우즈>를 보면 실망하겠지만, 공포영화의 뻔한 전개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속 시원한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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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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