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테일러 스위프트의 목소리를 찾아서 [사람]

글 입력 2020.08.2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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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8집 앨범인 folklore가 발매되었다. 예고 없었던 갑작스러운 발매였다. 팬들은 당황스러웠지만 새 앨범에 환호했고, 나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지내는 기간 동안 앨범을 만들었다는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노래를 들었다.
 
테일러의 팬이냐고 묻는다면 조금 대답하기 어렵다. 팬이라면 응당 알 법한 그를 둘러싼 공개되거나 공개되지 않은 가십거리들을 알지 못한다. (해외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인내력과 영어 실력이 필요한 법이다. 해외 가수들의 노래를 듣기 시작할 무렵인 10년 전쯤 해외 연예인의 소식을 들을만한 통로도 잘 알지 못했고, 내 영어 실력은 영어로 가득한 정보들을 번역해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가수들의 음악만 들어와서 현재까지도 가십들엔 무딘 편이다.)
 
그렇다고 테일러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게,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앨범을 통째로 재생하며 행복해했던 추억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 대해선 이렇게 말해둘 수 있을 것 같다. ‘인간’ 테일러에 대해서는 모르는 테일러가 만든 ‘노래’만 열심히 듣는 사람.
 
8집 folklore은 그런 나에게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우선 팝(pop) 적인 느낌이 강했던 이전 앨범들 비해 좀 더 차분하고 잔잔하게 돌아온 테일러는 ‘folklore’이라는 앨범 제목과 같이 컨트리 장르로 음악을 시작했던 과거의 그의 모습을 다시금 상기시켰고, 코로나의 시대를 버티고 있는 우리를 어루만지며 위로해주는 멜로디로 앨범을 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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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었다면 완벽한 시기에 앨범을 발매하려 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걸 계속 상기시킨다며 자신의 직감은 사랑하는 무언가를 만들면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테일러 스위프트. 기타를 메고 연애에 관한 노래를 부르는 테일러의 이미지에 익숙한 나는 대단한 작업물과 단단한 메시지로 찾아온 그가 신기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노래 뒤에 가려진 ‘인간’ 테일러 스위프트를 궁금하게 했다. 나는 그 즉시 언젠가 볼 것이라 찜해둔 테일러 스위프트의 삶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아메리카나(Miss Americana, 2020)’를 틀었다.
 
 
 
1. 가십의 주인공, 테일러 스위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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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스위프트는 세계적인 스타 가수였고, 그를 둘러싼 가십은 끊이지 않았다. 가십에 둔감한 나조차도 테일러 스위프트 사생활은 종종 들려왔고, 그는 언제나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비난받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칸예 웨스트와의 악연은 굉장히 유명하다.
 
칸예 웨스트는 올해의 여성 비디오 상을 수상하는 테일러의 마이크를 빼앗아 비욘세가 제일 멋졌다고 무대에 난입한다. 이때 사람들은 칸예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는데 무대에 서 있던 테일러는 자신을 향한 야유라고 느껴졌다고 말한다. 비욘세마저 난감해했다는 칸예의 무례한 언행을 겪었을 때 테일러는 고작 17세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적으로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회고한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을 겪은 직후의 인터뷰에서도 어린 테일러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라며 칸예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데, 부당하고 무례한 대우를 받고도 화를 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칸예와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칸예가 자신의 새로운 곡에 테일러에 대한 가사를 썼는데 이는 테일러와 이미 합의된 부분이라고 했고, 테일러는 여성 혐오적인 단어(bitch)에 대해서는 동의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칸예와 킴 카다시안 부부는 테일러와의 통화 녹음파일까지 제시하며 테일러를 거짓말쟁이로 몰았고, 테일러는 완전히 궁지에 몰려 평판이 나락에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초에 녹음파일의 원본이 공개되며 당시의 파일은 테일러의 입지를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교묘하게 짜깁기된 녹음파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테일러의 sns에 교활함의 상징인 뱀 이모티콘이 도배될 만큼 그는 혹독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테일러는 1년 동안 활동을 쉬었다. 유독 여성 연예인을 향해 겨누어지는 가혹한 잣대는 테일러에게 많은 좌절과 혼란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good girl’이 되고자 했는데 그의 평판은 최악을 향했고, 당시 테일러는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 누구나 물고 뜯을 수 있는 연예인이 되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섭식 장애를 고백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그는 콘서트를 하는 도중에 쓰러질 듯한 기분을 받았는데, 밥을 먹으면 힘을 내어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항상 다다르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정의’에 자신을 혹사했던 과거를 뒤로 한 채, 마른 몸이 아닌 정상 체중이 된 자신의 몸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은 여성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비정상적인 아름다움에 질문을 던지는 듯 보였다.
 
 

2. 테일러 스위프트의 목소리를 찾아서

 

포토월에서 라디오 DJ가 테일러를 성추행한 사건을 기점으로,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왔던 테일러의 삶은 문득 전환점을 맞는다. 테일러는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임을 알렸고, 가해자였던 라디오 DJ는 오히려 테일러를 고소했다. 법정은 테일러에게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지, 왜 더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는지, 왜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지’와 같은 ‘피해자 다움’을 질문했다. 당시 성추행을 증명하는 사진과 사건을 목격한 증인도 일곱 명이나 있었는데, 테일러는 법정은 자신의 편이 아닌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성추행 사건에 대해 처음 들어 놀라기도 했거니와, 테일러처럼 아무리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타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성추행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는 끔찍한 사실이 더 놀랍게 다가왔다. 테일러 역시 충격적인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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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2년간 정치나 종교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던 자신의 금기를 깨고 정치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테일러의 고향인 테네시 주의 마샤 블랙번 후보는 성 평등 임금법과 여성폭력 방지법 재승인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주의자이며 공식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한다. 성추행 사건과 불법 주거 침입까지 경험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호소한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오히려 2년 전 대선 때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이다.
 
어머니를 제외한 아버지와 남자들은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컨트리 음악가의 불문율은 정치적 발언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컨트리 장르는 미국에서 백인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고, 이미 여성 그룹이 정치적 발언을 했다가 ‘배신자’, ‘딕시 창녀들’, ‘미국 매국노’라는 별명을 얻은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테일러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듯이 자신의 역할은 ‘good girl’로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투표의 중요성을 아는 개념 있는 여자이지만, 정치적 발언으로 남을 불편하게 하거나 기존 권력에 도전하지 않고, 연애와 전 남자친구에 대한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반짝거림’을 유지하되, 심기 불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그것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이 말하지 못하는 ‘인형’의 이미지로서의 숙명일 테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도 많이 울컥했다. 세계적인 스타와 내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착각일까? 여성을 향한 폭력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분노하는 나를 보며 ‘네가 겪은 일이 아니잖아.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화를 내.’라며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한 듯한 가족들의 악의 없고 무심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와 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여러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르지만, 여성이라는 유일한 공통점은 때로 비슷한 감정과 경험을 느끼게 한다.
 
 

 
 
테일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오직 다음 세대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Only the young’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노래는 ‘Only the young can run’이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테일러는 run의 의미를 두고 뛰어서 파시즘에서 벗어나라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정치적 스피커로서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한 그의 가사는 run에 담긴 다른 뜻인 ‘선거에 출마함’을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정치적 주체로서 나아가라는 메시지로 읽어내고 싶은 가사였다. 테일러는 자신이 가치를 두는 방향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3.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 여성 연예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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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는 섭식 장애를 고백하면서 ‘항상 다다르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정의’가 이젠 말이 안 되는 기준임을 알고 ‘아파 보이는 것보단 뚱뚱해 보이는 게 낫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본인이 보기에도 ‘과자 포장지’ 같은 꽉 끼는 옷을 입은 채, 혼자서 팔도 올리지 못하고 툴툴거린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고 분홍색 옷을 입고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테일러라는 사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 이미지를 파는 여성 연예인으로서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숙명을 떠안은 그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런 점에서 테일러는 신념과 실천 사이의 괴리감과 인지 부조화가 클 수도 있겠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든다.
 
테일러가 노래한 Only the young은 젊은 세대, 특히 다큐멘터리는 테일러의 삶에 집중하기에 나에게 ‘young’의 대상은 여성으로 치환해 확대 해석을 하게 했다. ‘Only the young can run’은 기존의 구시대적 질서에 저항적인 사람으로서 입마개를 벗고 인형이 아닌 사람으로서 함께 성장해나가자는 메시지이지, 기존의 여성 연예인이 가지는 이미지를 답습하며 그것을 주체적으로 수행하자고 하는 건 아닐 테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4. “Only the young can run”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여성 연예인을 향한 비정상적인 잣대는 테일러를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완벽하면 재수 없다, 조금만 살이 찌면 임신한 것 아니냐,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남자를 너무 자주 바꾼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문제가 얽힌 것도 아닌데 그는 항상 가십의 주인공으로 인신공격에 가까운 날선 비난들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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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가 공개된 후, 다큐멘터리에서 테일러를 두고 재수 없다며 조롱했던 자료화면으로 출연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니키 글레이저가 테일러에게 용서를 구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니키는 글에서 자신의 과거 행동을 후회하고 테일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긴 장문의 글에 테일러는 감사함으로 화답했고,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큐멘터리는 부당하고 이상한 잣대로 평가받으면서도 얼굴 모르는 대중들에게 ‘good girl’이라 인정받기 위해 부응하며 자신을 그 틀 안에 맞춰왔던 과거의 테일러부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피해자 다움’이 아닌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과 결국에는 정치적 스피커로서 목소리를 가진 여성으로 탄생하기까지 테일러의 성장을 직시한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테일러의 일대기를 보며 ‘인간’ 테일러 스위프트를 향한 동경과 사랑을 품게 되었다. 입마개를 벗고 자신의 몸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진 테일러처럼. 착하게 말하고 남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도덕적 코르셋을 몸에 익혀왔지만, good girl에서 벗어나고자 한 테일러처럼. 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의 시선과 자기 검열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테일러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옷을 주체적으로 입는다고 해서 저항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테다. 저항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테일러와 세계의 많은 여성들이 입마개를 벗어던지고 목소리를 내며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We can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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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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