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는 삶의 가운데서, '체리'

글 입력 2020.08.23 20: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체리_팩샷_앞표지_메인표지_도서출판잔.jpg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는 삶의 가운데서
'체리(CHERRY)'
 

 

검붉은 광택을 내뿜는 체리. 한입에 털어 넣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씨앗을 감추고 있다. 소설 <체리>는 이름 그대로 과일 체리를 닮은 작품이다. 단번에 삼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안에 단단한 씨앗은 결코 삼킬 수 없는 아이러니함을 설명한다. 그것은 바로 ‘인생’이다. 체리처럼 향긋한 내음과 탐스런 빛깔을 가진 삶, 그러나 그 속에는 단단한 씨앗이 숨겨져 있다.

 

소설 <체리>는 작가 니코 워커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란 걸 알게 되는 순간 모두들 놀라곤 한다. 별다를 것 없는 한 개인의 삶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산전수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앞서 <체리>에 대한 느낌은 책을 읽기 전 추론에 가까웠다면, 책을 접하고 난 뒤에는 <체리>가 의미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미국에서 ‘체리(Cherry)’라는 용어는 전쟁에 처음 투입된 군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2005년부터 2006년부터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는 퇴역군인으로 입대부터 퇴역이후의 삶을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이야기를 <체리>에 담았다.

 

영웅의 서사를 보면 그들은 마치 날 때부터 영웅의 당위성을 부여받는 것 같다. 전쟁을 이끄는 군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은 지극히 순리에 맞게 흘러간다. 주인공 ‘나’는 그저 그런 고등학교를 나와 등록금을 내는 것 만 못한 대학에 가게 되고, 그런 삶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학교는 수시로 결석하기 일쑤고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겨우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주변의 인물들이 해병대 자원 입대 하는 것을 보고, 그 또한 별 다른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입대를 자원하게 된다. 당시 에밀리와 사랑에 빠져있던 상태였기에, 입대하고 배치가 되면 에밀리가 사는 지역에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한 게 다였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상 밖의 경로로 항해한다.

 

제4보병사단. 포트후드를 지망했건만 그는 그해 가을 이라크로 파병되는 제4보병사단에 배치된다. 위생병이란 보직을 가지고 이라크 전장을 가게 된 것이다. 아무런 의미 없이 한 입대, 그럼에도 내심 기대했던 자대배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체리>의 묘미는 이라크 파병 이후부터다. 그는 이라크 전자에서 매일 같이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침공의 위험에 휩싸였고, 인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민간인을 향한 태도를 접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영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결국 ‘체리’에 불과했다. 매일 같이 폭력과 죽음을 마주하지만, 극복과 해결이란 방식 보다는 그 시간을 버텨나가는 데 집중했다. 파병 기간이 마무리되고,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1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그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가 뭘 한느지 깨달은 후에는 바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된다.’ 떠날 시기가 다가오면서 그는 전쟁으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지는 자신과 주변의 인물들을 인식하게 된다. 돌아오면 해결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서.

 

결국 영웅도 승리자도 그 무엇도 되지 못한 ‘나’는 ‘체리’가 되었다. 전쟁만 처음인 게 아니라, 아예 이생을 살아가는 것 마저도 처음이게 되어버렸다. 전쟁에서 돌아온 모든 군인이 곧 영웅은 아니다.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고, 돌아온 다수는 어떻게서든 다시 일상에 편입되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고 마약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약물중독자’로 전락하고 만다.

 

사실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전쟁이 기름을 부은 것이다. 나라를 위해 싸웠건만 퇴역군인이 된 뒤에는 장학금을 겨우 받아서 살아가야 하고, 그 마저도 충족하지 않으면 다시 뺏어가곤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너무 심해 정신병원 상담을 갔는데, 이라크 전쟁 후반에 파견된 주제에 무엇이 문제냐는 식의 답변을 받는다.

 

전쟁과 마약이 한 인간의 삶에 어떻게 침투하여 잠식시키는지 보여 준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체리’가 되어버린 그는 이라크 전쟁의 참상과 귀환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신의 삶에서 ‘나’가 제거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헤로인에 찌든 채 은행을 털고, 하루를 벌고 하루를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특별히 없다. 굳이 따지자면 ‘한 개인의 파멸 앞에서의 고백’이다. 실제로 그는 약물을 사기 위해 은행을 털어 수감되어 복역 중에 <체리>를 써 내려갔다. 영웅도 없고 전투도 없고, 결국엔 ‘나’도 없어졌다. 전쟁과 마약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노골적으로 그린 <체리>다. 그가 파병되었을 때는 겨우 스무 살이었고, 돌아와서 마약 중독자가 되었을 때도 겨우 스물세살이였다. 누군가가 인생을 잘못 살았어라고 지적을 하기에는 인생을 너무 모를 어린 나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 유일한 빛이라면 ‘에밀리’다. 그의 첫사랑 에밀리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도 그의 곁에 남아 있어 준 사람이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 에밀리를 생각했고, 에밀리는 그의 곁에 있음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고 나서는 함께 약물 중독에 빠지며 은행 털이라는 그의 비행을 묵인하기도 한다. 전쟁과 마약 때문에 사랑 마저도 찌들 대로 찌들어버리게 된다. 에밀리와의 사랑은 분명 삶의 유일한 의지가 되는 수단이지만, 그 마저도 너무 병들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표지에 눈길이 갔다. 표지는 붉은 빛깔에 별들이 무수히 많은데, 멀리서 보니 그 별은 해골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에밀리와의 사랑으로 행복했던 순간이 별처럼 빛나지만, 멀리서 보면 그의 삶은 전쟁과 마약이란 거대한 해골임을 암시하는 것만 같아 섬뜩했다. 대개 표지와 내용을 별개로 생각하여 표지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체리>의 여운은 해골을 나타내는 표지로 대신 될 것만 같다.

 

 




체리
- CHERRY -


지은이
니코 워커(Nico Walker)
 
옮긴이 : 정윤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32쪽

발행일
2020년 07월 27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07-8 (03840)





저역자 소개


니코 워커
 
1985년 클리블랜드 출생. 《체리》는 2018년 알프레드 A. 크노프에서 출간된 자전적 데뷔 소설이다.

 
정윤희
 
서울여대 영어영문학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천영화제, 서울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참여했다. 소니픽쳐스, 디즈니픽처스, 워너브러더스와 CJ엔터테인먼트 등에서 50여 편의 영화를 번역하고 KBS, EBS, 온스타일, MGM 등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200여 편의 영상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동국대, 세종대, 중앙대, 숭실사이버대, EBS, IMBC에서 영미 문학과 번역 그리고 통역을 강의했다. 현재 하노이국립인문사회대학에 재직하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고아 이야기》 《비밀의 정원》(1~2권),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거울 나라의 앨리스: 앨리스의 끝나지 않은 모험》 《월든》 《메리 포핀스》 《정글북》 《지킬 박사와 하이드》 《렛 잇 스노우》 《오즈의 마법사》 《힐 하우스의 수상한 여자들: 코트니 밀러 산토 장편소설》 《제로의 기적: 죽음과 삶의 최전선, 그 뜨거운 감동 스토리》 《앨리스와 앨리스: 같은 시간을 두 번 산 소녀의 이야기》 등을 번역했다.


 

 

컬쳐리스트 이다선.jpg

 

 

[이다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