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만화'니까 웃을 수 있다구요? [문화 전반]

기안84 <복학왕> 광어인간 에피소드
글 입력 2020.08.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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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의 <복학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지난 11일 공개된 <복학왕>의 광어인간 에피소드는 주인공 우기명의 전 여자친구 봉지은의 기안 그룹 아쿠아리움 사업부 인턴 입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복학왕> 광어인간 에피소드에서 봉지은은 독수리 타법으로 문서를 작성하거나, 바닥이 축축해질 때까지 가습기를 틀거나, 보고서를 메모장에 쓰거나, 사무실에서 딴 짓을 하는 등의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애교’로 상황을 무마하는 식으로 그려진다. 회사 사람들은 이를 보고 "회사 급이 떨어진다"는 말을 한다.

 

인턴 마지막 날 회식 자리에서 봉지은은 팀장에게 “안 뽑힐 건 알고 있나 봐~”, “누가 뽑아준대?! 우리 회사가 복지 시설인 줄 아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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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면에서 봉지은은 배 위에 조개를 올리고, 조개를 기다란 돌로 내리친다. 이후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벌이나 스펙, 노력... 그런 레벨의 것이 아닌...”이라는 문구가 삽입되고, 조개가 부서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40대 남성 팀장은 봉지은을 최종 인턴으로 채용하고 “뭐 그렇게 됐어~♡ 내가 나이가 40인데 아직 장가도 못 갔잖아~”라고 말한다. 이때 주인공 우기명은 팀장에게 “잤어요?”라고 되묻고, 팀장은 “ㅋ!!”이라고 답한다.

 

해당 에피소드 공개 이후, 네티즌은 업무 능력도 떨어지고 태도도 불량한 20대 여성 봉지은이 40대 남성 팀장과 성관계 후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 아니냐며 기안84의 젠더 감수성을 지적했다.

 

논란 이후, 기안84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가 되는 장면을 수정했다.

 

 

 

'만화'일 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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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이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만화일 뿐인데 무슨 문제냐. 표현의 자유를 지켜줘라.’라는 식의 입장과, ‘혐오는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맞다. 만화일 뿐인데, 무슨 문제란 말인가. 안 보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웹툰'은 일반적인 만화와 결이 다르다. 웹툰은 ‘web’과 ‘cartoon’의 합성어다. 웹툰은 기본적으로 만화지만, '웹'의 특성 때문에 출판 만화와는 다르다.

 

초기 포털 사이트들이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만화 섹션을 구축하고, 몇몇 웹툰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서 웹툰은 웹 서비스의 일부가 되었다. 포털 사이트의 접근성을 통해 웹툰은 대규모 산업이자 주류 오락 문화로 성장했고, 웹툰은 한국 만화의 '주류' 위치에 올랐다. 웹툰의 양적인 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소재가 시도되고 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기에 문화적 파급력 또한 빠르고 넓다.

 

이러한 성장이 가능했던 건, ‘웹’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기안84의 <복학왕>은 대형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무료로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15세 이용가지만 인증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다. 기안84는 대형 플랫폼을 업은 대표적인 스타 작가다.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을 통해 연예계에 진입했고, MBC의 대표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만큼 그 파급력이 크다. 그의 작품 <복학왕> 또한 네이버 웹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웹툰은 이러한 웹을 기반으로 하기에, ‘유저’ 중심적이다. 여기서 독자는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이용자다. 조회수, 평점, 댓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와 이용자가 소통하고, 이러한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안84는 수년간 혐오 문제와 마주했다. 여성 혐오, 장애인 비하, 이주노동자 차별 등 지속적인 논란이 있었고, 이때마다 이용자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사과했지만, 또다시 유사한 문제로 논란이 된다는 것이다. 실수라고 치부하기엔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사과'가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웃을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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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복학왕>의 문화적 텍스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웹툰이 그런 건 아니지만, 웹툰 주 향유층이 1020세대인 만큼 작품의 소재나 주제의식이 청소년 혹은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다.

 

<복학왕>은 지방대생을 소재로, 지방대생 청년들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기안대학교의 취업률 1위 타이틀이 교수가 소개해준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현 사회의 학벌 문제, 일자리 문제 등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이번에 논란이 된 에피소드 또한, 기안84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다. 사과문은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듯하다.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런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기안84가 마주한 사회와 내가 마주한 사회는 정말로 같은 세상이 맞는 걸까? 알고 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평행우주에 살고 있었던 걸까? 도대체 어떤 회사에서 무능력한 사람을 뽑으며, 어떤 여성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고 연애를 하는가? 회사 내 위력에 의한 성범죄나 성별로 인해 채용, 임금, 승진에서 불이익을 얻는 경우는 숱하게 봐왔지만 '봉지은' 같은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앞서 말했듯, 웹툰은 개방되어 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용인된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20대 여성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는 설정 자체가 웹툰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는 없다. 말 그대로, 작가들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의식’이 없다면 문제적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로 야기되는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기안 84는 ‘풍자’를 위해 해당 장면을 그렸다고 했다. 풍자는 일반적으로 권력과 권위를 가진 이를 향한다. 하지만 해당 에피소드에서 대상화가 된 건 봉지은이다. 만약 정말로 풍자를 하고 싶었다면, 그 대상은 봉지은이 아니라 40대 남성 팀장이어야 했다. 또한, 정말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에서 끝나지 말아야 한다. 대상화된 인물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주거나, 이에 대한 뚜렷한 문제의식이 서사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

 

<복학왕>이 완결된 웹툰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내용이 어떻게 풀어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기안84의 소수자 묘사에 대한 비판은 지속적으로 있어 왔고, 자정작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일까. 아니면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있을까? 현재 웹툰에 대한 규제는 업계 내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전적으로 작가와 플랫폼에게 달렸다. 바라건대, 다시는 이런 문제로 기안84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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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텍스트들이 ‘소수자 혐오’라고 비판받는 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태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혐오를 재생산하는데서 멈추기 때문이다. <복학왕> 광어인간 에피소드를 보고 많은 이들이 불쾌감을 느낀 건,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일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예민’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수도 있다. 만화니까, 그저 재미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해당 장면을 보며 웃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좁게는 20대 여성들, 넓게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 사람들.

 

토마스 홉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웃음이 나온다”라고 말하며, 이를 ‘우월성 이론’이라고 명했다. <복학왕>에서 봉지은이 40대 남성 팀장과 성관계, 연애를 하고 인턴 최종 합격을 한 장면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일단, 나는 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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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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