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 된 어린 왕자 [영화]

나도 어른이 되겠지만 당신들처럼 되진 않을래요
글 입력 2020.08.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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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를 하던 중 《어린 왕자》 동화책이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생 때 글쓰기 과외 선생님이 일 년에 한 번씩 《어린 왕자》 동화책을 읽는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선생님은 매년 읽을 때마다 《어린 왕자》가 새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사실 내가 이 동화책을 산 이유는 선생님처럼 매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겉표지가 예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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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학생 때만 해도 책을 거의 안 읽었다. 일 년에 책 읽은 횟수가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심지어 일 년에 세 권 읽으면 그것도 많이 읽은 거라 느껴질 정도였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동화책을 거의 읽지 않았으며, 학교에 들어가도 필독도서엔 손도 대지 않았다. 읽어보지 않은 도서 중엔 《로미오와 줄리엣》, 《샬롯의 거미줄》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읽지 않아도 워낙에 유명한 작품들이라 내용을 알았고, 그렇기에 꼭 읽은 거 같은 착각이 들어 더욱 손이 가지 않기도 했다. 《어린 왕자》도 그중 하나였다. 직접 읽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용은 알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었던 것. 이런 내가 제대로 그것을 읽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주위 사람들로부터 간간이 듣게 되는 내용만으로 마치 읽은 거 같은 착각이 들었을 때, 내가 《어린 왕자》에서 가장 집중한 부분은 어린 왕자가 이 별 저 별 여행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어린 왕자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깨달은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여행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이 신기했다. 상상력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제대로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땐 그의 외로움에 시선이 갔다. 또 대학생 새내기 초반에 한 번 더 읽고 영화로 나온 《어린 왕자》를 봤을 땐 그의 주변에서 서로 외롭다고 외쳐대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최근에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땐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곱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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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고 나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어린왕자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영화 《어린 왕자》는 기존의 동화 이후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자신의 별에 홀로 두고 온 장미에게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린 후의 어린 왕자 이야기. 자신의 별에 무사히 돌아갔는지, 혹 어디서 또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궁금했던 것들을 영화는 어린 왕자 또래인 한 소녀를 내세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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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였다. 모든 것에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은 분 단위로 나누어져 있었다. 위 이미지에 보이는 게 소녀의 엄마가 만든 인생 계획표이다. 엄마가 만든 계획표대로 살아가는 게 익숙했던 소녀. 그런 소녀에게 옆집에 사는 괴짜 할아버지는 신기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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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소녀는 창문으로 종이비행기를 받게 된다. 어린 왕자 이야기가 적힌 종이비행기였다. 처음에 소녀는 어떻게 별에 어린아이 혼자 살 수 있냐며, 그럼 그 아이는 공부는 어떡하고 학교는 어떻게 다니냐며 말이 안 된다고 따졌다. 그러다 점점 어린 왕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어린 왕자의 오랜 친구라는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가 세운 계획표대로 사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함께 놀면서 짜인 계획표대로 살지 않았다는 걸 엄마에게 들키게 되고, 소녀는 할아버지와 만나지 못하게 된다. 엄마의 감시 아래 또다시 계획표대로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 소녀. 설상가상으로 옆집 할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고, 소녀는 할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어린 왕자를 찾으려 그의 비행기에 올라타게 된다. 그렇게 소녀는 높은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온 어느 행성에 도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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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잔뜩 품은 채 도착한 행성. 행성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어른들밖에 없었다. 소녀는 행성에서 어린 왕자 이야기에 나왔던 허영심 가득한 사람과 왕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쫓기며 무사히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소녀는 실망하고 만다. 잔뜩 기대한 마음으로 만난 어린 왕자는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인물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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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만난 어른 왕자, 미스터 프린스는 여우와 만났던 일과 별에 있는 장미꽃에 대한 모든 일을 잊었다. 내쫓기지 않기 위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실망을 두려워하며, 어른이기에 울지 말아야 하는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이후의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말하지 않겠다.)

 

그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나이에 맞게 행동해, 언제쯤 철들래. 그런 말들을 들으면 언제나 의문이 생겼다. 나이에 맞게 행동한다는 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내 나이에 맞는 행동이 되는 것일까. 철이 든다는 건 무엇일까. 어떻게 생각해야 철이 든 것일까 등. 영화 속 소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을 다 잊고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 왕자에게 큰 실망을 느낀다.

 

그러나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건 슬프게도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 좌절감 앞에 할아버지와 어린 왕자는 말하고 있다. 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아이였고,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각박한 삶에서 어릴 때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건 참 힘들다.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호구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기장처럼 기록을 하는 건 어쩐지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같아 쓸쓸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내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나 혼자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기억하는 것이 되니 쓸쓸하지 않다. 즉, 어린 왕자에게 있는 사막 여우나 지켜주고 싶은 장미꽃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런 친구가 있다면 내 과거를 그대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친구를 만나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있었던 추억을 곱씹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는 기댈 수 있는 사막 여우와 같은 친구가 있는가. 아니면 지켜 주고 싶은 장미꽃 같은 사람이 있는가. 나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게 해주는 그런 친구. 그 친구들을 떠올리며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또는 '내'가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을 잊지 않게 해주는 그런 사람인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긴 시간 장미꽃을 잊었지만 결국엔 다시 돌아오게 된 어린 왕자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인지, 내겐 그런 서툰 관계였던 사람이 있었는지 떠올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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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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