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화 중심지'를 떠나니 보이는 것들 [문화 전반]

문화자본에 따른 공간의 위계
글 입력 2020.08.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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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잠깐 내려왔다. 내 고향은 빽빽이 들어선 회색조의 건물보다는 녹색이 짙은 공간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지만,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다소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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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가고 싶어요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했던 이유는 딱 하나다.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인 서울’을 간절히 원했던 건, 더 많은 ‘문화자본’을 누리고 싶어서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는 꿈도 꿀 수 없었다. 학업, 금전의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거리’였다. 경상남도에 사는 중고등학생이 혼자 서울로 콘서트를 갔다 오는 건, 나름 ‘큰일’이다.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갈 확률이 몇 배로 높아지지 않았을까?

 

‘왜 콘서트는 서울에서 열리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너무나 당연하다. ‘공연장이 서울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공연장은 왜 서울에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답도 쉽다. ‘서울이 수도라서, 서울에 사람이 많으니까,’ 서울은 전체 인구 오분의 일이 밀집되어 있는 수도이다. 문화 기반 시설, 인프라가 서울로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아이돌 콘서트보다 보편적인 문화 향유 맥락에서도 이러한 기저가 적용되는지 살펴보자. 일상화된 문화 소비 방식에는 과연 차별 요소가 존재할까?

 

 

 

다 똑같은 극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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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문화향수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문화예술행사 관람률, 관람 횟수, 관람 의향, 지출, 지출 희망 항목에서 ‘영화’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화된 문화 향유 방식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전국의 영화 상영관은 569개다. 영화 상영관과 스크린 수, 좌석 수의 지역별 분포 또한 인구 대비 납득이 간다. 지방에 살더라도 우리는 영화관을 쉽게 방문해 흥행 영화들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상영의 양적인 면이 아니라, 질적인 면을 바라볼 때, 과연 ‘영화 관람에는 공간적인 차별 요소, 위계가 없다.’라고 진단할 수 있을까?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나는 ‘B’라는 영화가 보고 싶은데, 내가 사는 지역에는 영화 ‘B’를 상영하지 않고 영화 ‘A’만 상영한다.

 

이는 영화 산업 내의 독과점, 스크린 독점과도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건 공간에 따른 지역별 영화관의 위계다. 위 상황에서, 영화 ‘B’를 보려면 주변 광역시나, 수도권 쪽으로 가야 한다. 물론 내가 광역시나 수도권에 산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별 수 없다. 차를 타고 멀리 나가야 한다. 특정 영화관에서 제공하는 특별관 또한 같은 맥락이다.

 

고등학생 때, 시내에 있는 영화관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야 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었다. 시험이 끝난 날 시내에 나가 영화를 보거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나가 영화를 보곤 했다. 다양성 영화에 관심이 많아 관련 영화가 개봉해서 보려고 하면, 지역 내 극장에는 아예 상영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영화들을 보려면 가까운 광역시인 부산까지 가야 했다.

 

대학 진학 덕분에 서울로 올라가 경험한 것들은 신세계였다.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영화들, 독립, 예술 영화관, 특별관, 무대인사, GV, 각종 이벤트, 굿즈, 다양하게 열리는 소규모의 영화제 등.

 

우리가 가장 많이 향유하는 문화 양식 '영화 관람'을 예로 들었을 뿐, 이외에 다른 문화에 대한 지역 격차는 이보다 심하고 극명하다. 학창 시절 영화를 그렇게 좋아했던 이유도, 내가 영화'만' 볼 수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문화자본은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 문화자본들이 집합해 문화 중심지가 탄생하고, 문화 중심지에는 더 많은 문화자본이 몰릴 수밖에 없다.

 

 

 

문화자본의 지역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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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가 주창한 ‘문화자본’이란, 문화라는 개념 속에 넓은 의미의 예술뿐 아니라 개개인의 생활양식 및 일상의 구조, 사회적으로 상용화되고 관습화된 사유와 행동의 체계까지 포함한다. 이는 자본이나 계급 혹은 계층과 일련의 관계를 형성한다. 부르디외는 자본의 교환적 가치 위에 이를 초월한 상징적 가치까지 포괄해 경제적 자본과 함께 존재하는 문화자본을 상정했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의 형태를 세 가지로 표현했다.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전수되어 신체와 정신에 오래 지속되는 성향의 형태인 ‘체화된 자본’, 문화상품의 형태로 존재하는 ‘객체화된 자본’, 개인이 교육과정을 통해 획득한 문화자본 형태인 ‘제도화된 자본’이다.

 

문화자본과 사회가 떨어질 수 없듯, 사회와 공간 또한 떨어질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자 공간적 존재이며, 사회는 공간적으로 생산되고, 공간은 사회적으로 생산된다. 문화자본과 공간 또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문화 지역 격차는 문화자본의 구별 짓기를 강화하고, 문화자본의 구별 짓기는 문화 지역 격차를 심화시킨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살펴보자. 서울은 한국에서 객체화된 자본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이다. 또한 한국 내에서 좀 더 높은 교육적 경험, 제도화된 자본을 얻기 위해서는 서울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인 서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체화된 문화자본이 풍부할 가능성은 어떤 공간에서 가장 클까? 의심의 여지없이 서울이다.

 

문화자본의 쏠림 현상 속에서 상업적으로 특화된 공간들이 있다. 간단하게는 영화, 쇼핑, 식사 등을 한 건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다. 물론 멀티플렉스 공간은 어떤 지역이든 시내에 가면 한 개쯤은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대안적 문화에 대한 선택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몇 년 사이, 영화 관람료가 올랐다. 좌석 및 시간 차등제까지 고려하면 가격 인상의 체감은 크다. 한국에서 가장 보편화된 문화 향유 방식인 영화 관람의 비용 부담이 커졌다. 우리는 충분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가격을 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바에, 다른 걸 하겠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은 멀티플렉스가 아닌 다른 영화관을 찾아간다거나, 더 다양한 문화 향유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살 때, 그 선택권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지 않을까?

 

문화향수실태조사(2018)에 따르면, 수도권 및 광역시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경우 ‘거주하고 있는 광역시도’ 내에서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하는 비율이 94.9%이나, 읍면지역 거주자의 경우 83.7%만이 ‘거주하고 있는 광역시도’ 내에서 관람하고 있어 지역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에 따른 문화 접근도와 문화 이용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다시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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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와 ‘심심하다’는 감정이 이런저런 생각들로 이어졌다. ‘문화자본’이 공고화된 사회, 이에 따라 공간의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 점점 심화되는 양극화와 그 속에서 공고화되는 계층론. 더 나아가 문화 약탈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 우울해진다.

 

얼마 후면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그냥 편하게 총천연색의 풍경을 눈에 꼭꼭 눌러 담고, 이 고요함을 견디지 못할 때쯤 고향을 떠나면 될 텐데.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것들에 너무 익숙해져 하루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나 보다.

 

이런 상황을 내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최소한 생각은 해봐야 할 것 같아서 글을 썼다. 우리는 언제쯤 진짜 '취향'을 찾을 수 있을까? 만들어진 취향이 아니라, 정말 오롯이 나를 위한 취향 말이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도전해보려 한다. 일종의 취향 찾기 프로젝트랄까. 이것마저 서울에서 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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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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